터키에서 다녀온 직후 페이스북으로 메세지가 왔다.

"슬슬 벚꽃이 피고 있는데 나고야 안올꺼야?"

일본에 있는 여사친이다. 원래 일본 게스트하우스 알바였는데 일본에 놀러갔을때 무척 친해져서 그뒤로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다. 

이름은 아사코인데 1년전에 결혼을 했고 남편도 실없는 농담을 자주해서 그렇지 괜찮은 놈이라 우리 셋은 쉽게 친구가 되었다. 

5년전부터 매년 3월말부터 4월초까지는 일본도 벚꽃시즌에 돌입하기때문에 매년 봄만 되면 나고야에 가서 벚꽃을 보며 아사코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외국인들과 나까지 포함해서 늘어지게 술을 먹는게 일종의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터키에서 귀국한지 채 4시간도 되지 않았던터라 피로도도 높았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었던 터라.

"미안 올해는 힘들겠어~~ 비행기는 찾아보겠지만 아마 저렴한 티켓은 없을꺼야"

라고 답장을 보내고 계속 멍때리며 누워있는데..

페이스북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아사코부부.. 귀찮았지만 그래도 받아야 할꺼 같아서 받았더니.. 왠 모르는 처자한명이 더있다.

다짜고짜

야 그러지 말고 와.. 새멤버가 생겼어 인사해~~

안뇽하시므니까~~ 하며 꽤 이쁜처자가 손을 흔든다. 나이는 20대후반처럼 보였고 얼굴은 일본사람 답지 않게 이목구비가 꽤 뚜렷해보였는데 회갈색 단발 머리가 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거기에 일본여자 특유의 빨간 볼터치까지.. 그래 이뻤던거다. 내 기준에서는..

아 안녕하세요... 나도 조금 놀라서 인사를 했다. 

야.. 아무리 장거리 여행을 다녀왔어도 벚꽃놀이에 빠지면 섭섭하지. 그러지말고 와라~~!! 아사코남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 한다.. 

아 비행기표 찾아볼께~ 근데 옆에 누구야?

아 미카? 이번에 우리회사 입사한 직원인데 지금 같이 술먹고 있는중이야. 그러다가 너 이야기가 나와서 전화한거야. 올해는 다른사람말고 넷이서 놀기로 했으니까 꼭 와야한다!!

솔직히 세명이면 안갈라고 했는데.. 화상통화속 일본처자가 꽤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술때문인지 화장때문인지 빨간 볼터치도 귀염귀염해 보여서.. 

전화를 끊지 않은채로 바로 제주항공에 접속한다.

인천 나고야 왕복 14만원짜리 티켓이 있더라..

바로 결제했다.

내일모레 오후 5시에 나고야 도착한다 라고 말하니까

아사코커플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와 진짜 이럴땐 한국인 같다니까 밀어붙이는거 ㅋㅋㅋ 오오 박력있어 좋아!! 그럼 내일 모레 오후 7시 반에 꼬치구이집에서 보자.

오후 7시 반 히사야오도리역 4B출구 꼬치구이집. 예전부터 아사코커플과 만날때면 항상 가던곳인데 꼬치도 꼬치지만 생맥주가 정말 기가막하기 맛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였다. 

뭐 큰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화상전화로 얼굴을 확인한탓에 나름 기대감도 있었고 뭐 굳이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나고야성과 츠루마이 공원의 벚꽃이 워낙 이쁘기도 하고 비행기값도 왕복 14만원이면 그냥 진해에 벚꽃놀이 왔다고 생각해도 될일이라 굳이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계산이 있었다. 

우선 바로 세탁소에가서 소개팅당일날 입을 옷을 드라이를 맡겼다. 내일모레 오전까지 부탁드린다고 하니 조금 곤란해 하시다가 이내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출발 당일 세탁소에서 옷을 찾고 세면도구외에는 거의 텅 비어버린 캐리어에 구김이 가지 않게 잘 넣었다. 그래도 소개팅이니 최선은 다해야 한다. 예전 여자친구도 일본인이였었고 결과론적으론 헤어졌지만 사귈때에도 정말 괜찮은 여자였었다. 결국 결혼해서 어디에서 살껀지에 대한 고민으로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귀는 태도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상당히 괜찮아서 인지 일본여자와 소개팅에 대한 기대가 어마어마하긴 했다. 

공항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발권을 한다. 

발권담당직원에게.. 

혹시 좋은자리가...있을까요? 하니..

혹시 어디 불편하시거나 아프신곳은 없으시죠?

네~!

음 그럼 비상구쪽 좌석으로 드릴께요~!

ㅎㅎㅎㅎㅎ 성공이다. 좁디좁은 저가항공에서 비상구좌석업글!! 나름 시작이 괜찮다.

후다닥 입국장으로 들어가서 부탁받은 담배한보루를 사고 바로 라운지에가서 배 찢어지게 먹기로 한다. 라운지에 도착하니 오늘 메뉴는 소고기불고기와 잡채 그리고 비빔밥 ㅎㅎㅎ 맥주에 커피에 먹을 수 있는대로 먹어두고 비행기를 탄다. 

좁은 좌석에 비하면 넓디넓은 비상구좌석! 다리도 쭈욱 뻗을 수 있고 저가항공비행기에서는 나름 1등석.

근데... 비행기가 출발을 안한다..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이윽고 방송이 나온다. 미탑승 손님이 있어서 조금 늦어진단다.. 

오후 3시반 비행기라 나고야에 도착해도 오후 5시반.. 그시간에 전력으로 질주해서 씻고 옷갈아 입으면 오후 7시반도 빠듯한데.. 점점 늦어지니 초조해진다..

이미 출발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났다.. 그리고 들어오는 씨발 욕나오게 만드는 미친 아줌마 2명이서 깔깔웃으면서 한가득 면세쇼핑백을 들고 당당하게 입장한다.

주위사람들 시선은 찔리지도 않는지 큰소리로 에휴 비행기 시간도 모르고 쇼핑해버렸네 늙었나봐..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담배곽 모서리로 머리를 찍고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하아. .그래 오늘 소개팅인데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컨트롤.. 

아주매미들 도착하자마자 비행기가 이동하고 이내 이륙하고 예상시간보다 늦은 6시에 나고야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출입국 심사대 줄을 서니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내뒤로 줄을 선다. 

아 진짜 다행..

5분만 늦었어도 아마 출입국심사에서만 최소 30분 이상 걸렸을꺼다..

어쨌든 바로 전철을 타고 예약해놓은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후 잽싸게 샤워하고 옷갈아 입고 드라이 한다. 이미 시간은 7시 반 히사야 오도리까지는 도보까지 총 20분정도 걸린다.

비행기가 연착해서 조금 늦었다고 미리 문자를 보내놓고 최대한 빨리 드라이를 시작한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머리도 빨리 마르지 않는거 같고 왜이렇게 오늘따라 왁스질은 안되는건지;;;

마음이 급하니까 더 안된다.. 마음같아서는 머리 한번 더감고 다시 드라이부터 하고 싶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터라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히사야 오도리역으로 이동..

입장전에 핸드폰 카메라로 다시한번 머리와 옷상태 체크하고.. 사타구니도 한번 두드려서 혹시 바지 지퍼가 열리지 않았는지 체크한다.

심호흡 한번하고...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여유있게.. 맘에 든다고 너무 촐랑거리지도 말고 나이에 맞게 여유있게 컨셉잡고 가자..하며 다시한번 마인드 컨트롤..

문을 열고 꼬치구이집 안으로 들어간다. 

안쪽에 아사코부부와 미카가 보인다.. 6인석에 넓게 자리를 잡고 이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오~~!! 오랫만이야 잘 지냈어?!! 1년만이지? 내가 자리쪽에 다가가며 말하자

아사코 부부와 미카도 일어서고선 아사코가 와 진짜 1년만이네!! ㅎㅎㅎ 여전하구나!!! 빨리 앉아! 배고프지?

어!! 일단 맥주부터 한잔.. 여기 맥주 진짜 먹고 싶었어.. 라며 맥주를 한잔 주문하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아사코부부가 앉아 있고 내 오른쪽에 미카로 보여지는 여자가 앉았다..

근데.. 뭔가... 화상통화할때 그 예쁜여자가 아니다.. 

분명 머리스타일이나 뭐 그런건 비슷한데.. 화상때보다 훨씬 살집이 있었고.. 거기에 붙인 속눈썹이 엄청 어색한 처자가 앉아있다.. 

하지메마시테... ^^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넸다.

하지메마시테.. 사카모토 미카데스..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런 우리를 보고서는 아사코 부부는 흐뭇하게 웃고있다.. ㅠㅠ

솔직히 화상통화때와 너무 큰 갭차이가 있어서 마음속에서 실망한건 사실이다. 뭐 직장도 없는 백수주제에 뭐 고를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에서 실물이 기대치보다 낮을때에 상실감은 다들 아리라 믿는다. 

그래도 아사코부부도 있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대화를 리드하려고 했고 같이 건배도 몇번하며 최대한 분위기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아 같은 직장 다니신다구요?

예~ 아사코부부에게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본어를 할 줄 아시네요?

네 일본노래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씩 배웠어요. 

일본 가수 좋아하세요?

네 Aiko하고 나카시마 미카.. 그리고 최근에는.. 딱히 없네요. 아이돌을 좋아하는건 아니여서 ㅎㅎ 혹시 한국가수 아는 사람 있어요?

빅뱅하고 동방신기 정도요? 

뭐 그렇게 서로 공통의 관심사를 찾다가 우연히 둘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공통사를 찾았다.

마침 몇일전에 유튜브에서 고시엔(갑자원)관련된 영상을보고 꽤 감동을 받았던 터라 고시엔 관련된 이야기를 한참이나 했다.

아사코 남편은 기무라인데 한국에 대해 꽤 관심이 많은편이다. 역사나 지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언제나 새로 업데이트된 한국소식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어쩔땐 집요할정도여서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설명하기 힘들때가 있는데 그땐 다시 영어로 전환하고 내가 모르는 일본어 단어는 영어로 설명해도 곧잘 알아듣는다.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것보다 북한과의 전쟁가능성에 대해서 많이 물어본거 같다.

뭐 그렇게 술을 마시고나니 4시간이 훌쩍넘어 이미 11시로 가고 있었고 가게도 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것 같아 우리도 정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히사야오도리역은 나고야 TV타워가 바로 보이는데 조명이 이뻐서인지 별거아닌 첨탑이 예뻐보인다.

잠깐이지만 생각을 해보니 뭔가 내가 접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커서인지 피곤하기도 하고.. 빨리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데..

내일! 같이 벚꽃놀이하다가 볼링 치러가자!! 아사코가 제의 해서.. 나와 미카도 뭐 당연히 같이가는걸로 정해져 버렸다. 

에휴.. 내일도 접대해야겠구나.. 

그렇게 헤어지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오니 조용하다. 나도 조용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도미토리 침대에 몸을 눕힌다.. 

아무래도 내 앞뒤에 양키가 있는게 분명하다. 이 간장버터냄새는 양키냄새가 확실하다.. 거기에 코까지곤다.. ㅠㅠ 진짜 환장할꺼 같다... 어쨌든 억지로 억지로 새벽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오전 11시.. 나고야시청역에서 만나기로한게 오후 3시니까 나름 여유가 있다. 넉넉히 씻고 옷갈아 입고 씻고 나오자..

어떤 아가씨가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아.. 어제 체크인하셨나요? 라며 영어로 묻는다.

아 예.. 어제 체크인 했어요. 

아~!! 전 여기 헬퍼로있는 신디에요. 하며 인사한다. 약간 까무잡잡한피부에 눈이 굉장히 큰데 또 얼굴은 말도안되게 작다. 키는 대략 165정도? 그래도 몸이 늘씬한편이여서 입고있는 옅은색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가 꽤 잘어울린다. 

뭐 가볍게 인사하고 다시 드라이하고 왁스칠하고 간단히 크로스백에 보조배터리와 지갑만 넣고 길을 나선다.. 

점심을 뭘먹어야하려나... 편의점이나 갈까???? 하고 생각하던차에 앞을보니.. 신디가 가고있다.

신디? 하고 말하자 신디가 뒤를 본다

아~~ 어디가세요? 신디가 묻는다.

그냥 점심 뭐먹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ㅎ

나도 점심먹으러 편의점 갈껀데 같이 갈래요? 하고 신디가 제안하길래..

네!! 그래요!! ㅎㅎ 하고 따라나선다. 어차피 이쪽 지리는 나도 다 알고 있어서 편의점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쭈욱 가다가 오른쪽으로 꺽으면 바로 편의점 나와요!

여기 자주오셨어요? 

네~ 아마 15번정도 온것같네요. ㅎㅎㅎ

그렇게나 많이요? 일때문에?

아니요 전 여친이 여기 살았었어요. 그래서 자주온거고 이번엔 친구들이랑 벚꽃놀이하러 왔어요. 매년 봄되면 와요. 신디는 여기서 일한지 몇일 됐어요?

전 이제 10일이요 3개월동안은 여기서 일하면서 어학교 다닐꺼에요. 

일본어학교? 

네

그럼 일본어 할 줄 알아요?

네 조금(하이 すこし！）라고 대답하길래..

그럼 일본어로 이야기할래요? 영어보단 일본어가 더 쉬워서요.. 

그래요!!

뭐 편의점까지는 10분남짓인데 걸으며 이야기를 듣기로는 멕시코 칸쿤에서 왔다고 한다. 상당히 성격도 발랄하고 외모도 이쁘장하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메뉴를 골랐고 신디는 ATM기에서 돈을 인출하고 있었다. 

아.. 맞다.. 일본편의점 내에서는 취식이 안되는데가 많은데.. 하며 직원에게 물어보니 매장내 취식은 불가하단다。

신디. 여기는 매장내 취식이 안되는 편의점이에요.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하는데 그럼 길거리에서 먹어야하니까 차라리 다른거 먹을래요?

아 정말요? 뭐요? 

음 제가 좋아하는 곳인데 가격도 엄청 저렴하고 맛있어요. 신디씨 돼지고기 먹을 수 있죠?

네. 문제 없어요. 

마침 그 편의점에서 3분거리에 마츠야가 있어서 거기로 데리고 간다.  마츠야는 한국으로 따지면 김밥천국정도 되는 음식점인데 주로 소고기덮밥(규동)을파는곳이다. 보통 3~500엔대면 한끼를 때울 수 있고 음식 나오는 속도도 빠르고 꽤 맛도있어서 일본에 오면 한끼정도는 규동으로때운다. 

같이 자판기에서 규동 티켓을 뽑고 같이 규동을 먹으며 대화도 해가면서 재미있게 식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