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포럼이 있는 것을 보고 오! 하는 마음에 초보 뽐뿌 잉여가 잠시 들러 봤습니다.
살짝 맛뵈기를 하는 중에 밑에 인문 관련 책 추천 요청 글을 보고 독서평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이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하는 작은 이벤트에 당첨이 되서 영광스럽게도 학교 도서관장 님에게 직접 상품을 받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작지만 고가인 전자기기 관련 상품을 받으면서 도서관장님이시자 모 학과의 학과장 님이신 그 분께서 상품을 타는 이들에게 물어
보신 말이 있습니다.
"학생들, 책 좋아하나?"
좋아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서평 관련 이벤트였으니 혹시나 책 잡힐까 하는 소인배적인 걱정도 섞여 있긴 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무슨 책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 하셨고 흔히들 그러하듯 경제, 경영 관련 서적을 좋아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살짝 안색이 흐려지시더군요. 나름 눈치가 있어서 실망하신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옆의 이도 그걸 느꼈는지 전공서적을
주로 본다는 나름의 모범적인 답변을 했지만 그 사람의 학과장이시기도 한 도서관장 님의 반응은 제가 말할 때와 같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자리를 마무리하자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저에게 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었을 땐 나도 경영, 경제 책이 최고인 줄 알았어. 그리고 세상에 진리는 내가 아는 기술과 과학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나이 먹으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짐작이 갔습니다. 왜 인문, 문학 관련 책을 잘 안 보냐는 질문에 저는 보면 졸려서 잘 안 본다는 무례한 답변을
했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살짝 뜨끔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인문, 문학 책에 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중,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에 대한 느낌이나 어떤 시의 구절에 대한 감상을 말하면 언제나 지적 받던 학생이었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떤 느낌을 강요 받고 구절에 대한 감상을 딱 그것이다, 라고 외워야만 하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인문 관련 책을 점차 멀리 했습니다.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책을 완전히 분석하면서 봐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다시 책들을 가까이 하고 문학 관련 책도 찔끔찔끔 보기 시작한 시기가 군대 가기 1년 전부터 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한심하기도 했고
가장 어두웠으며 스스로 힘들었던 시기였었죠. 많이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학 관련 책의 읽는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는
일병 5호봉 즈음에 우연찮게도 제가 지휘부 행정병으로 뽑혀 가면서 부터였습니다. 주말에도 지휘관이 나오면 사무실에서 대기해야 했던
그 때 제가 주로 한 것은 책 읽기였었습니다. 그리고 인문과 문학에 관련된 책들에 흥미를 붙여 가다가 인문에 확실히 관심이 늘게 된
것은 스치듯이 보면서 지나간 유명한 군수업체에서 핵심 연구원으로 일하는 한국계 과학자의 인터뷰 때문이었습니다.
완전히 상극인 것처럼 보이던 두 분야이지만, 글 속의 그 분의 인터뷰 내용은 인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다들 잘 아시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일으킨 엄청난 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분석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덩달아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계속 늘어나게 되었고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흥미 위주의 것들, 단순 재미와 자극을 위한 책이 아니면 그저 자격증이나 전공 관련 책만 보던 제가 학교
도서관의 신착 도서 서재에 꽂혀 있던 '인문강의'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두껍던 그 책을 본 순간, 왜 끌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래 집었던 책을 빼고 그 책을
빌려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책의 두께 때문인지 한 3일 간은 보지도 않고 방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동네 도서관에 가려고
책들을 챙기던 중에 즉흥적으로 눈에 띈 인문 강의를 보고 그래도 빌린 건데 한 번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읽어 보았습니다.
목차를 쭉 훑어 보니 여러 옛날 책을 바탕으로 강의한 것들을 책으로 옮겨 담은 것들이었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그만큼
보이는 것도 적다고, 저는 별 기대 안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틀 동안 6시간 걸려 책을 단숨에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책을 쉬지 않고 읽는 것은 만화, 판타지, 무협 빼고는 없는데... 내용이 저를 확 잡아 끄는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책 내용이 두서없어 보이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 보면 처음부터 시작되었던 내용들이, 비빔밥의 야채와 밥과 양념들처럼
한데 버무려져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을 떨궈 맛의 완성을 찍는 것처럼 모두 잘 섞여집니다.
저자 분께서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는 내용과 스스로 평소에 막연히 알고 있던 어떠한 것들이, 왜 그런 식으로 사고가 되고
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개운하게 정리되는 마지막에는 인문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늘어나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분명 인문 강의의 저자 분은 어떤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각은 어떤 이론에 대한 믿음, 어떤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겐 불편한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 저자는 인문 강의를 통해 중간에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이더라도 책을 끝까지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일리아스에서 시작해서 논어로 끝나는 인문강의는 평소 가지고 계셨던 사람들의 어떠한 의식에 대해, 막연히 느끼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왜 그런지 정리가 안 되었던 것이 머리 속에서 슬금슬금 줄을 맞춰가며 정리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치열하게 사람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알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글로 남긴 것들이
현대에 와서도 우리들의 생활 속의 어떤 사건들에 대해 왜 그런지 설명이 되어주는 기본 지식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도 느끼실
겁니다. 그리고 때론 사람에 따라 좌절감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좌절감은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증명한 모습으로서 좌절한 이들에게 말해주는 무언가로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전, 군에서 제가 맡던 보직 특성상 읽게 되었던,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교육하는 것 중 한 만화가 생각이 납니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정신적으로 위기가 올 때가 있고 심신이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오는데 그럴 때 사람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있지만 철학과 인문을 많이 읽고 배우면, 정신적인 강함이 길러지고 힘든 고난이 그 사람에게
닥쳐도 부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인문강의 책도 그러할 것입니다. 고전을 읽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저자 분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은
어떤 현상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한층 깊고 튼튼해 지는 자신의 정신적인 뿌리를 느끼실 수 있어지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문이 전공이시며 많이 아시는 분들은 안 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서평은 마치 화폐전쟁을 읽은 경영, 경제학 전공 이들이 화폐전쟁에 대해 으르렁거리듯이 안 좋은 평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공이 공과 계통이고 평소 인문 관련 지식이나 앎도 아주 얉은 교양 수준에 겨우 닿는 저에게 이 책은 인문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준 책이자 생각을 많이 하게 뇌를 자극해 준 매우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 서평을 적으면서도 살짝 부끄러운 게 경제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화폐전쟁이나 제 1 권력을 보면 그것하고 똑같은 소리를 한다는
글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만...그것을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 인문에 대한 소양이 많이 쌓이게 된 후일 것이라
스스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당장 닥쳐 올 개강과 무자비한 전공들의 러쉬를 대비해야 하는 잉여로운 대학생 한 명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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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