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길어요 읽어보시고 이 여자의 입장와 그 상대방의 남자 입장을
자기 주관적으로 표현해주세요 .. 제가본 관점에서는 전 그냥 여자가 이기적이다 기다려 주는 남자도 슬프고 힘들구 아니냐..그런 생각했거든요..한편으론 여자가 애정결핍에 불상해 보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나는, 솔직히 말하면 꽤 자주 나라는 사람은 어째서 쾌락주의자가 될 수는 없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살면서 여러 종류의 이성과의 만남을 가져 봤지만, 오늘 처음만난 생면부지의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그 행위만은 내겐 도무지 간단히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왜 나는 그저 동물적인 욕망에 몰입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한 올의 아무런 감정 없이 그 행위에만 충실할 수는 없는 걸까. 처음 만난 남자와 살을 섞는 누군가에겐 야릇하고 흥분될 그 순간에도, 나는 지금 내 앞에 맨 살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남자가 다른데도 아닌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그 중요한? 순간에 기껏 손이라니.
많진 않지만 내가 그 일을 했던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대개가 어떤 도피의 방편이었다. 사랑과 관계에 데인 마음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결국엔 그 오래고 지겨운 터널을 지난 어느 날, 낯선 사람과 살을 맞대게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울었다. 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체온도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게 분해서. 이런 따뜻함을 처음만난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당황스럽고 이해되지 않아서. 정말이지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와 수백 번 동침하고 수 없는 날들을 같이 밥 먹고 대화하고 싸우고 여행 다니며 셀 수 없는 순간을 공유한 사람은 어느새 이렇게 혐오와 권태의 대상이 되어 그 존재 자체가 소멸해가고 있는데, 그 어느 것도 공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털 올 만큼의 애정이나 교감도 없는 사람이 나를 만지는 손길은, 단지 처음이고 낯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자극과 심지어 어떨 땐 위로까지 주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인간의 육체는 이런 것에 반응하도록 만들어 졌을까.
그런 내가 변했던 건 내 나이 서른 둘. 결혼해 함께 살던 이 때문에 마음을 너무나도 크게 데여 도저히 새로운 사랑을 할 자신이 없던 때였다. 그렇다면 죽을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사람이 두려우면서도 너무도 외로웠고, 외로웠으나 시작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만나게 된 어떤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했드랬다. 우리 사귀지 말고 잠만 자자고. 절대로 서로 좋아하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말자고.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남자들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흔한 수작 아니냐고해도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나로선 다시 그 일을 반복할 용기가 없었다. 다시 누군가가 좋아지고 또 할퀴고 피가 나고.. 그 짓을 더 했다가는 정말이지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상처투성이가 되어 극한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그 황당한 제안에 뜻밖에도 상대가 오케이를 하더라. 마흔 둘.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그 이상하고도 간편한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는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둘 사이에 불필요한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도록, 거리에서 팔짱을 끼려는 그를 매몰차게 밀어내고, 극장을 가자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아, 그러나 시작을 하지 않으면 끝도 없을 거라던 기대는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던가. 마음이라는 게 억누른다고 해서 눌러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기대는 또 얼마나 미련했었고. 실제로 어떤 상처나 불편함도 없는 평온한 관계가 반 년 쯤 지속이 되기는 했다. 과연 그가 상처 받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심 우리가 이렇게 오년이고 십년이고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정말이지 너무 편하고 좋았으니까. 번거롭고 괴로운 관계의 단점들은 피한채 달콤하고 편한 장점들만 취할 수 있던 이상적인 시간들. 하지만 세상의 좋은 것들이 어디 오래가는 법이 있던가? 어느 날, 남자는 긴 휴가를 내고는 한 달 간의 먼 여행길을 떠났는데 그를 떠나보내던 날 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두 번 째 여행이었다. 이미 지난 계절에도 보름쯤 떨어져 있었지만 문자 한통 없이도 아무렇지 않던 나였기에 그래서 안심하고, 연락해도 되냐는 그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잘 놀다 오라고, 다른 여자도 좀 만나라고 웃으며 돌아선 터였다. 그렇게, 서로 절대로 좋아하지도, 보고 싶다는 말 같은 것 하지 말자고 부탁하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끝끝내 시작 을 하지 않으려 애썼건만.. 끝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그의 말투를 따라하고 있었고, 우린 서로의 취향과 안목 또한 깊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을, 단지 팔짱을 끼지 않았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키스하지 않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왜 난 알지 못했을까.
그렇지만 나는 결국 시작하지 못했다. 내 상처는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깊었고... 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감정이 생겨버린 것을 알게된 순간 그토록 편안하고 깔끔했던 사이가 천국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 때를. 너를 사랑한다고 인정한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외로워지더라. 너를 그리워하게 된 댓가로 어렵사리 유지해온 내 마음의 평화는 사정없이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 내 작은 가슴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네 앞에서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제끼던 난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내게 넌, 더는 편한 사람이 아니라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너는 이제 언젠가 나를 떠나거나 전 남편처럼 돌변 할까봐, 어떻게든 내게 상처 주고 해를 끼칠까봐 그저 두렵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 마음의 평화는 그렇게 헝클어져 갔다. 한 없이. 정말 대책 없이.
그래. 이래서 내가 그렇게 몸부림 쳤었지. 시작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물었었지. 왜 나는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는 잠을 잘 수 없는 거냐고. 그랬으면 인생이 훨씬 더 간편했을 텐데. 그럴 수만 있었다면 다시 이런 고통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렇게 갖고 싶은 너의 목소리와 눈도 그저 그리움이 아닌 욕구의 대상으로만 삼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여 결국 회복될 수 없는 희생자가 되어 도피하듯 이 땅을 떠나던 날, 너는 친절하게도 내 갑작스런 부름에 응해 그 먼곳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지.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했던 너를 보면서 나는 도리어 더욱 슬퍼진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저 이 모든 일들이 아파서, 그저 너무 아프기만 해서. 그런데 얼른 이 괴로운 순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비행기 좌석에 몸을 묻고는 별 생각없이 튼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에서 하필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 극중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자긴 지금 사랑에 빠져서 너무 아파 죽을 것 같다고 호소를 하자 이야기를 들어주던 시인이 그러는 거다. 다 치료약이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사랑 그거 그렇게 심각한 병 아니라면서.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나는 유치하게도 정말 그런 약이 있나 싶어 그때부터 비로소 영화에 몰입을 하려는데 정작 극심한 사랑의 통증으로 괴로워 몸부림치던 주인공은 무슨 까닭에선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뇨. 그런 약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전 계속 아프고 싶으니까요."
모르겠다. 그저 영화 한편일 뿐인데 왜 그토록 그 장면이 나를 흔들었던 건지. 어쩜 내가 이토록 아프고 또 아픈 것은 사랑하라고, 아무리 아프고 무서워도 사랑하라고, 애초부터 넌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잠을 잘 수 없는 인간이니 그리 알라고. 그러니 너에게 끝의 두려움과 슬픔과 책임감이 따르지 않는 밤 같은 건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 테니 받아들이라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날 계속 이렇게 아프게 하는 것일까.
이윽고, 긴 시간이 지나 비행기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낯선 곳, 낯선 땅에 발을 디딘 후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니 아마도 내가 떠나기전 그가 보냈을 문자가 신호음을 울리며 화면에 떴다.
여전히 예쁘고 아름다운 선생님.
당신의 삶은 당신의 모습만큼이나 우아하답니다.
아무것도 걱정 마시고
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아.. 만약 내가.. 당신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기 전에 이 상처를 딛고 다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땐 이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신과 지옥불길이 됐든 꽃길이 됐든 한번 걸어보고 싶다. 내 옆에, 나를 이토록 좋아하고, 나만큼이나 연약한 자아와 상처와 영혼을 가진 당신과 함께. 비록 그 길이 세상 모든 꽃이 시들듯, 세상의 모든 역이 그렇듯, 결국엔 끝이 있는 길이라해도, 우리가 걷는 동안만큼은 온갖 꽃들이 만발한 꽃길로 만들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 그리하여 온전한 쾌락주의자가 되지 못한 죄로,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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뀽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