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먹는 것들은 어디에서 오는지 잘 알 수 없다.
들어가는 재료를 만지는 사람도 정재된 무언가를 만지며 먹는 것을 만들겠지.
옛날에 키우던 토끼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 토끼는 크고 사나운 토끼였다.
애완용 토끼라고 했는데 사료를 먹지 않고 시골의 풀밭에서 자라니 점차 거대해진 토끼.
잘 자라던 토끼는 어느날 점심 식사로 토끼탕이 되어있었다.
사실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간 누릿내가 나는 느낌의 닭도리탕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27살이 된 지금도 가끔 난 그 토끼 이야기를 한다. 그 토끼 참 성질이 사나운 토끼였다고.
그래도 그 토끼는 아마 내가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내가 먹은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늘 저녁으로 먹은 오리고기는 내년에 기억이나 날까.
소설 속에서 죽음의 과정은 꿈에 또렷이 다가온다. 고기가 뭉텅이지며 서늘하게 죽어가는 감정에 이입되면 나도 역겨워 진다.
이 과정을 아는 옛 사람들은 식사한켠에 역겨움을 함께 느꼈을까.
그 느낌에 서글픈 마음이 들어 동물님께 제사를 지낸건 아닐까.
요즘의 나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것들을 먹고 입고 바르고 집에 들이고 있다. 출신을 모르는 손님들이 나를 관통해간다.
내가 이사갈 연신내라는 동내는 내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모를 것이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사람들이 동네에 모여 살고 있다.
우리층 옆집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4년이 넘는도록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모르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몇몇 것들은 내게 따뜻하고 소중하다.
9살때 키우던 토끼가 그래서 소중하다.
부모님, 고향, 은행나무, 감나무.
이런것들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꿈을 꾸는 것이라 느낀다. 소중한 것을 잊지말라고 깊숙히서 새어나온다.
소설에서는 세상이 내 입속에 질퍽한 탕수육을 들이밀어도 채식주의자로서 저항하라고 한다.
책을 읽고 잠시 옛날생각을 했다.
편안하고 기분좋은 바람이 부는 평상에 앉아있었던 때.
비가 오면 물이 떨어진 자리로 자갈들이 올라오던 지붕 밑.
천천히 걸어 오르면 시원한 바람을 뿜던 참나무숲.
고구마 줄기. 누에. 잉어가 사는 빨래터. 거북이들.
기분좋게 잠들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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