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 이기호.문학동네 )

 영화 <건축학 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형용 모순의 카피를 내걸어

사람들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흥행이 성공한 건 '싱숭생숭함'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의 조급증 덕분일 것이다.

 당시 나도 잠시나마 '정말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라는 비현실적 물음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만이 앙포르멜 회화속의 여인 모습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을 뿐,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극장으로 갔다.

영화는 '현실의 부재'를 조작해 보여주는 '대안 공간'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된 건 뜻밖에도 영화를 보고 난 후 술자리에서였다.

한 친구가 으스대며 말했다.

"내가 교회에 다닐 때 인기가 많았지.여자얘들이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보러 교회에 다녔다니까.그때

내가 첫사랑이었던 얘들이 분명 있었을거야."

맞아.나도 교회에 다녔었지.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비록 일년도 채우진 못했지만 제법 열성적으로 다녔었다.

여러 얼굴들이 소주잔 속에서 춤을 추듯 너울거렸다.

성탄절을 앞두고 연극 연습할 때 이름도 모르는 미국 과자를 슬쩍 건네 주던 은정이,일요일 날 교회 도착할 때 쯤이면

꼭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옆에서 불쑥 나타나곤 했던 희연이 등등.

'교회 오빠'였던 시절 혹시 내가 그네들의 첫사랑은 아니었을까.

 상상은 허술한 뼈대에 살점을 붙여가며 제멋대로 퍼져 나갔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술자리를 파하고 지하철에 올라 탔을 때,나는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등을 생각하며 얼마간 짜증난 얼굴로 잠을 청했다.

그것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부질없음을 간파해 현실에 중심을 세우는 건 세월의 위대한 공덕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처음 봤을 때 유독 눈길이 갔던 건 그 잘난 '교회 오빠'시절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생각났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과거와/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하략)

<총,균,쇠>나 <사피엔스>같은 두꺼운 '빅히스토리'를 기를 쓰고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격절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물큰함이 느껴졌다.

디지탈 시대에도 소설이 생존할 수 있는 덕목이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맨 뒷부분엔 '이기호의 말'이라는 특별한 작가후기가 실려 있다.

잠깐만,

자네에게 아직 할말이 조금 남아 있다네.

별건 아니고......

로 시작되는,바로 앞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에게 하는 말로 들리는 후기는 한편의 짧은 소설처럼

여운을 남긴다.

 차로 사람을 다치게 한 작가가 사건을 수습하면서 직업마저 부정하는 비겁함을 보이는 과정을 이 소설의 출판과

연계시켜 담담히 토로한다.마지막에 묻는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작가뿐이겠는가.후기부터 먼저 읽었는데,본편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를 일찍 만나지 못해 누구보다도 내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