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본 백석 시집 ( 백석 지음,고형진 엮음.문학동네)

 "돈 1000억이 백석의 시 한줄만도 못하다"

백석의 연인 자야가 싯가 1000억원의 대원각(요정)을 법정스님에게 기부하면서 한말이다.

못받는다며 10년을 버티던 법정스님은 결국 그곳에 길상사를 지었다.

 자야는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실제 주인공이다.

이시의 도입부는 눈오는 날,수많은 문청들의 연서에 도용됐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은 평안도에서 태어나 서울 등에서 거주하며 시작활동을 했고,만주를 거쳐 해방이후

북으로 돌아갔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 문단에 본격 소개가 됐지만,이후 백석의 시를 빼놓고는 우리 시단의

격을 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을 사는 젊은 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안도현 시인은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백석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백석평전>을 펴내기도 했다.

 이 추운 날에 다시 백석을 꺼내 읽는다.

2014년 무렵부터 해마다 12월이면 동지죽 챙겨먹듯 꼬박꼬박 찾았던 것같다.

문자와 언어들의 광포함은 늘상 반복됐고,위로가 필요했던 나는 '구원의 메시아'로 백석을 집어들곤 했다.

백석이 주는 위로가 뭐길래 그에게 의지했냐고 묻는다면 내 깜냥으론 콕 집어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노자가 '말로 형상화된 도는 이미 도가 아니다(도가도 비상도)'라고 말했듯이 이것 또한 마찬가지이지 싶다.

의지의 대상은 필연적으로 절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그건 말로 규정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말로써 해체된다면 절대성 또한 내려 놓아야할 터.신앙의 대상이 신성을 잃는 것과 매한가지다.

 다만 백석의 시에서 느끼는 감각의 변별성은 얼추 짐작해볼 수 있을 것같다.

무엇보다도 백석의 시는 읽을 때 날리지 않는다.

감정의 과잉으로 인한 의식의 혼란스러움,상형문자을 읽는 듯한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어는 생활언어다.

읽을수록 진득하고 찰지게 감겨드는 게 마치 가슴 한켠에 씨줄 날줄로 새겨지는 듯하다.

 어렵고 낯선 평안도 방언들의 사용,토속적 삶과 민속에 밀착된 소재는 우리로 하여금 근원에 다가가게 하고

잊어버렸거나,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정한을 자극한다.

또 그의 시는 현재의 삶을 과거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을 부여해 주는 데,이는 퇴행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변하지 말아야할 것들이 변해버린 상황을 변하지 않은 시대에서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불편한 진실과

대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의 태두 고유섭이 말한 '무기교의 기교'는 백석의 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잊혀진 고유어로 빚어낸 '교태없는 자연스러움'이다.

 식민지 조국의 청년 시인으로서 평탄치 않은 삶을 살다간 그의 자화상같은 모습을 '흰 바람벽이 있어'의 종반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

 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정본 백석 시집>은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백석이 발표한 모든 작품을 검토해 방언과 고어

맞춤법,오탈자등을 검토해 정본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평안도 방언과 고어가 낯설어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낱말풀이를 봐가며 읽다보면 적응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론,풀이를 봐가며 두번 읽은 다음 다 이해한 상태에서 다시 한번 읽으면 백석 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시 한수당 세번 읽는 것을 일독으로 치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