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서의 집적도가 높아지고, 성능이 높아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은 제품의 ‘크기’이고, 이 문제는 공정의 개선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의 개선은 꼭 공정의 미세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웨이퍼를 사용하는 등 공정 전반의 개선을 말한다.

또 다른 문제는 ‘발열’이다. 프로세서의 클럭이 높아질수록 프로세서의 발열이 문제가 되었으며, 프로세서 업체들은 이 발열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발열을 줄이기 위해 근본적인 방법으로는 소재의 개선이나 공정의 변화를 통해 발열량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이는 기술적인 문제나 물리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는 쿨러를 사용한 방법이 있다. 소재의 개선이나 공정의 변화에 비해 쿨러를 사용해 발열을 해결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물론 컴퓨터 안의 공간 문제나 소음 문제, 쿨러의 물리적 한계 등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제품의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쿨러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로세서가 가진 필연적인 문제 ‘발열’

▲ 프로세서는 ‘트랜지스터’의 집합이며, 또한 ‘스위치’의 집합.

현재 프로세서들은 ‘클럭’과 ‘발열’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능을 높이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은 동작 속도를 높이는 것이며, 동작 속도가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발열도 높아진다. 프로세서의 논리 구조를 바꾸거나, 고도의 병렬화를 통해 성능을 향상시킬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적인 면이나 시간을 생각할 때 자주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프로세서가 동작하면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컴퓨터가 0과 1, 두 가지 상태를 번갈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트랜지스터는 주어진 신호에 따라 0 혹은 1, 두 가지 상태 중 하나를 표현하게 되며 때에 따라서는 기존의 상태를 바꾸기도, 혹은 유지하기도 한다. 이런 동작 방식은 프로세서뿐 아니라 많은 전기 회로가 가지는 구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상태를 바꾸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엄밀히 말해 동작 중인 반도체의 상태는 안정 상태가 아니며, 그 상태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가 계속 들어가야 한다. 전원이 들어가는 상태에서는 트랜지스터의 상태가 0이든 1이든 간에 전원이 꺼지고 동작이 멈춘 상황인 ‘안정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안정 상태에서 불안정 상태, 혹은 준안정 상태까지 전자를 움직이는 데는 상당히 큰 에너지가 소비된다. 반도체에서 인위적으로 별도의 ‘이물질’을 넣는 이유는 전자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특정 이물질을 극소량 첨가함에 따라 전자의 움직임은 첨가한 이물질의 영향을 받아 극적으로 달라지며, 이를 흔히 ‘도핑(Doping)’ 이라 한다. 이 도핑이 없다면 반도체의 성질은 완전히 나오지 않는다.

많은 프로세서 제조사들은 공정을 미세화하고, 반도체의 조성을 변경하여 반도체의 0과 1의 변경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공정을 미세화할 경우 생산성의 향상도 있지만, 물리적으로도 더 작은 트랜지스터가 들어가므로 상태 변화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감소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하나의 트랜지스터가 소비하는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보다, 집적되는 양이 더 크게 늘어나 제품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이렇게 에너지를 투입해서 반도체의 상태를 바꾸면 전자는 준안정 상태에 들어간다. 준안정 상태는 안정 상태에 준하는, 다소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의 안정 상태인데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이면서도 상태 변화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전자가 어떤 에너지 장벽을 넘어 에너지 준위가 바뀌게 되면, 에너지 장벽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장벽의 높이와 준안정 상태의 에너지 높이의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열’로 방출되게 된다.

사실 이 에너지의 절대 단위는 밀리볼트(mV) 단위를 써도 소수점 몇 단위까지 갈 만큼 작은 단위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수억 개가 모이고, 초당 수십억 번이 반복된다 하면 방출되는 에너지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같은 아키텍처의 프로세서가 클럭이 높아질수록 발열이 늘어나는 이유는 이런 물리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 높아지는 클럭과 미세화되는 공정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냈다.

클럭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전자를 이동시키기 위한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전자의 움직임은 확률로 표현 가능하며, 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밀어 주는 방법이 있다. 이에 필요한 추가 에너지를 측정하기는 대단히 힘들며, 하물며 수 억 개의 트랜지스터에 있는 전자들을 한 번에 바꾸기 위한 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클럭이 높아질수록, 이 확률을 완전하게 만들 정도의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며, 필요 이상으로 투입된 에너지는 당연히 열 에너지 형태로 방출된다. 이것이 클럭 상승에 비해 발열이 더 크게 늘어나는 이유이며,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클럭을 높이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각 트랜지스터를 연결하는 미세한 ‘배선’을 지나가면서 생기는 강한 전기 저항이나, 물리적인 크기의 한계로 인한 유전체에서의 누설 전류 등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프로세서 제조 업체들은 구리 배선과 High-k 게이트, 혹은 변형된 실리콘 조성 등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현재도 별도의 쿨러가 필요 없는 프로세서들의 특징은 비교적 트랜지스터의 수가 적고, 클럭이 낮으며, 물리적인 크기도 작은 프로세서들이다. 물론 십수년전, 별도의 방열판조차 없이도 훌륭히 동작했던 프로세서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프로세서에서 방출하는 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적어서 적당한 크기의 패키징만으로도 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쿨러의 필요성에 대한 물리적 고찰

▲ 쿨러가 필요한 이유는 프로세서가 '작기' 때문

오늘날의 고성능 프로세서들은 쿨러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 왔다. 초저전력의 모바일용 프로세서, 예를 들면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ARM 계열 SoC들은 패키징만으로도 별다른 열 문제를 겪지 않지만, 이 프로세서들의 성능은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x86 계열의 프로세서들과 비교했을 때 연산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트랜지스터 집적 수에서는 크게는 수십 배 이상의 차이가 벌어진다.

그러면, 왜 고성능 프로세서들에는 쿨러가 필요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프로세서의 소형화 때문이다. 성능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프로세서의 크기를 줄이고, 클럭을 끌어올린 것이 쿨러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의 프로세서들은 하루가 다르게 집적도가 높아지고 있다. 손톱만한 웨이퍼 조각 하나에 들어간 트랜지스터는 수억 개에 이르고, 동작 속도는 이제 GHz 단위에 접어들었다. 이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으며, 프로세서의 에너지 효율이 100%가 아닌 이상 자연히 발열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발열에 비해 프로세서의 ‘물리적 크기’는 되려 더 줄어든다는 게 문제다. 현재의 프로세서 패키지의 크기는 프로세서 코어가 내뿜는 발열 수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프로세서 패키지를 크게 하는 것은 생산 공정의 난이도를 높일 뿐 아니라, 생산 단가에 있어서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물리적인 면적’이 필요하다.

▲ 최근 프로세서 코어들이 내는 면적당 발열량은 상당한 수준.

발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전기적인 문제이지만, 발열 현상 자체는 물리적인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에야 ‘물리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프로세서 코어가 내부적으로는 나노 단위에서 수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거시적인 물리적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는 단지 ‘두께가 거의 없는’ 칩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발열은 내부의 나노 단위 층과 상관 없이, 하나의 물체가 내는 균일한 수준의 열 정도로 접근이 가능하다.

이 작은 열원에서 나오는 열량은 엄청난 수준이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x86 계열 쿼드 코어 프로세서들의 코어 넓이는 기껏 해야 수 제곱 센티미터 수준이지만, 여기서 나오는 발열량은 수십 와트(W)에서 많게는 수백 와트에 이른다. 이런 열량을 프로세서가 동작 가능한 상온 수준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프로세서 코어에서 공기 중으로 이동시키기에는 프로세서 코어의 크기가 너무 작다.

공기의 단위 면적당 열전도율은 대단히 작다. 즉, 현재의 프로세서들이 내뿜는 열기는 프로세서 코어는 물론이고, 프로세서 패키지로도 완전히 공기 중으로 이동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프로세서에서 공기 중, 혹은 다른 매체로 열을 이동시켜서 프로세서에서 열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프로세서는 작동 한계 온도를 넘기고, 동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공기 중으로 프로세서가 내는 열량을 완전히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아주 간단한데, 공기와 닿는 ‘면적’을 충분히 늘리면 된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쿨러다. 쿨러는 프로세서 패키지에서 열을 전달받아, 공기와 접촉되는 넓은 면적을 통해 열을 공기 중으로 ‘이동’시킨다.

공기의 열전도도에 비해 금속의 열전도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쿨러가 제대로 장착된다면 프로세서에서 발생하는 열의 대부분이 쿨러로 이동하고, 성공적으로 공기 중으로 전달되어 프로세서 쪽의 열이 제거된다. 대부분의 쿨러가 가진 방열 핀들은 공기와의 접촉 면적을 크게 늘려 주며, 장착된 팬은 인위적인 대류를 만들어 열 교환 효율을 높인다.

‘히트 스프레더’의 역할은?

▲ 한 때 프로세서 코어가 외부로 노출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때, 프로세서들의 코어가 노출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인텔은 ‘코퍼마인(Coppermine)’ 코어의 펜티엄 3에서, AMD는 ‘썬더버드(Thunderbird)’ 코어의 애슬론 이후로 ‘바톤(Barton)’ 코어의 애슬론XP까지 코어가 드러나 있는 프로세서 패키지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후 두 업체 모두 코어를 ‘히트 스프레더(Heat spreader)’로 덮은 형태의 패키지로 바꾸었다.

히트 스프레더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코어에서 발생하는 열을 히트 스프레더 전체로 균일하게 확산시켜 쿨러와 프로세서 간의 접촉 면적을 늘리기 위함이다. 제조 단계에서부터 확실하게 코어와 밀착되어 나오는 만큼, 사용자가 따로 쿨러를 코어에 바로 장착하는 경우에 비해 효율이 좋다.

금속의 열 전도율이 대단히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열원과의 접촉 면적이 좁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게다가 실제 쿨러와의 접촉 면적은 미세한 요철이나 고정 상태 등의 외부 환경으로 인해 더욱 줄어드는 만큼 코어에 직접 접촉한다고 해서 꼭 쿨러의 효율이 높아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효율이 감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히트 스프레더를 사용할 경우 코어와 히트 스프레더는 거의 완전히 밀착되고, 쿨러와의 접촉 면적을 넓힐 수 있으며 쿨러의 장착 상태 또한 더욱 안정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코어의 보호’이다. 실제로 코어가 노출되어 있었던 시절, 사용자가 겪었던 ‘최악의 상황’은 쿨러를 장착하는 도중 일어나는 코어의 파손 문제였다. 쿨러를 장착하면서 조금이라도 쿨러가 기울면서 모서리에 힘이 집중될 경우, 모서리에 부분적으로 가해지는 힘은 단순히 배수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집중되며, 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코어가 부분적으로 파손되는 경우가 흔했다.

히트 스프레더를 사용할 경우, 이런 식으로 코어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히트 스프레더의 면적이 프로세서 패키지와 거의 일치하는 만큼, 쿨러 장착시 다소 쿨러가 기울더라도 모서리에 가해지는 힘도 코어가 노출되어 있을 때보다 크게 줄어든다. 사용자가 직접 쿨러를 장착하게 되어 있는 현재의 프로세서 패키지에서, 히트 스프레더는 프로세서의 기계적인 위험성을 크게 낮추고, 더 손쉬운 프로세서의 설치를 이루어내고 있다.

▲ 프로세서를 덮은 은색 구리판이 바로 ‘히트 스프레더’

일반적으로 히트 스프레더는 구리 재질을 많이 사용한다. 구리는 높은 열 전도도를 가지고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고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열 전도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가장 전도도가 높은 순구리 재질을 사용하며, 산화와 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니켈 도금을 곁들인다. 현재 프로세서들이 쓰는 히트 스프레더가 은색인 이유는 바로 니켈 도금 때문이다.

간혹, 일부 사용자들이 프로세서의 표면을 연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행위는 아니다. 니켈 도금이 벗겨져 나갈 경우, 높은 순도의 구리는 공기 중에서 빠른 속도로 산화되기 시작하며, 산화층이 표면에 생성되기 시작하면 니켈 도금이 되어 있는 상태에 비해 각종 전도성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가능하면 니켈 도금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한편, 또 하나의 프로세서인 ‘그래픽 프로세서’에는 히트 스프레더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최근의 그래픽 프로세서는 범용 프로세서 못지 않은 전력 소비량을 자랑하지만 히트 스프레더를 사용하는 그래픽 프로세서는 흔하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코어 파손을 대비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래픽 프로세서는 범용 프로세서처럼 단품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카드’라는 완제품 형태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래픽 카드는 기본적으로 그래픽 프로세서를 교환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쿨러 등이 완전히 장착된 하나의 완제품 형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그래픽 카드의 쿨러를 사용자가 교환하는 것은 ‘개조’에 해당되는 것이고, 칩 제조사가 보증할 필요가 없다.

그래픽 카드에서 쿨러를 교환하는 행위에 대해 보증할 필요가 없는 만큼, 그래픽 프로세서의 제조사들은 굳이 그래픽 프로세서에 쿨러 교환을 위한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이 완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준의 강도만으로 충분하다. 또한 제조시 쿨러는 완전히 최적화된 장착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므로 굳이 접촉 면적을 넓힐 필요도 없다. 덕분에 그래픽 프로세서들에서는 히트 스프레더를 찾기 힘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