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세가지가 있어요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이죠
그런데 사랑은 숨길수록 더 드러나요
- 시월애 中 -
<그 남자>
비가 내립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비가.
오늘,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비가 내려요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으려나?
미팅.
대학에 들어와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죠.
원래 나는 예정에 없던 사람이었어요.
흔히 말하는 대타.
" 우정아, 한 번만. 아, 그 자식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못 나온대잖아.
이거 정말 힘들게 마련한 자리야. 뷰티쪽 애들이라 너도 마음에 들 거야."
뷰티면 어떻고, 더티면 어때. 미팅이라는데.
미팅이다 미팅!
은근히 이 자식들 미팅 얘기를 할 때 신경 쓰이고 있었는데
마침 나에게도 기회가 왔어요.
이제 영화관 혼자 가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남들처럼 커플티 맞추고, 야구장 커플석에 앉아서 관람하고,
같이 다니며 히히덕거릴 수 있는 그녀가 생기는 거야.
‥‥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좋았어요.
비가 내려 분위기에 젖은 우리는
1차로 카페에서 자기소개를 나누고,
2차로 술집에서 간단한 게임을 하며 친해지기 시작했죠.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며 3차를 제안하는 친구 녀석이
그날만큼은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듯했습니다.
그 순간이 기회였어요.
비가 내리는 지금이 나에겐 기회였어요.
미팅에 나온 세 명 중
미소가 예뻤던 그녀를 찜해두고 있었죠.
비에 용기를 얻어 살며시 말을 걸어봅니다.
"우산 같이 쓸래?"
으아악‥‥ 이 멋대가리 없는 말투라니.
이미 앞에는 친구 놈 두 녀석이 터벅터벅 걸어가고
그녀의 친구 둘은, 같은 우산을 쓰고 그 뒤를 쫓아갑니다.
남은 건 우리 둘뿐.
그 순간은 너무 길었어요.
그녀가 말없이 수줍게
내 옆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그 순간은요.
비가 오던 날,
아침에 밟았던 똥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여자>
비는 참 이상하죠,
누군가에게는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사랑을 꿈꾸게 하죠
비 오는 날,
남자친구와 한 우산을 쓰고 걷는 그 장면
생각만해도 짜릿하지 않아요?
꿈꾸던 그 순간이 나에게도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팅이 있다는 말에 소정이를 아침부터 닦달했어요
나도 좀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매번 주말마다 방콕 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며
친구 좋다는 거 이럴 때 보여달라고
미팅 자리를 꼭 부탁했어요.
안 데려가면 며칠 안 보려고 했더니
지지배, 예쁘게 입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학교 가는 것도 아니고
어련히 예쁘게 입을 건데 걱정은‥‥ 히히
연애인 같이 살랑거리는 걸 입어볼까나?
새내기 여대생의 로망!
훈남 선배 오빠와의 썸씽이라던지
동아리 선배의 자상한 학교생활 지도라던지
미팅에서 만난 왕자님과 행복한 CC 생활 아니겠어요?
물론 현실은 아니란 걸 알지만서도
꿈꾸는 건 내 자유잖아요. 안 그래요?
‥‥아, 일단 내 꼬라지부터 봐야겠구나. 이히히
미팅에 나온 세 명은 다 첫인상이 좋았어요
그 중 유별나게 나와 눈 맞춤이 잦은 그가 있었죠.
쳐다보는 느낌이 계속 든다고 해야 하나?
딴짓하다가 잠시 그를 힐끗 보면 어김없이 나를 보고 있어요
난 멋쩍어서 환하게 웃죠
예쁘게 보이고 있나 모르겠어요, 잘 보여야 하는데.
나 웃는 게 별로 안 예쁜데 조금 걱정이네요.
비가 오는 거리, 우리는 3차에 나서기로 했답니다.
1차와 2차의 술자리는 나쁘지 않았어요.
술도 적당히 먹어 아직은 괜찮았고, 시간도 그리 늦지 않았죠
그리고‥‥ 그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고요.
달달한 소주를 먹어서 그런지 내 마음도 달달해져 있었어요.
그 순간, 그가 그러네요.
"우산 같이 쓸래?"
상상만 했던 그 순간이 알딸딸하게 눈앞을 스쳐가요.
어쩌면 좋죠? 이럴 땐 어떻게 대꾸해야 하는 건가요‥‥
걷는 발걸음에 내 마음을 담아
그의 곁에서 살포시 우산을 같이 씁니다.
아, 부끄러워요.
'구름' 이라도 타고 도망가고 싶은데
기분은 좋네요.
참 이상하죠?
- 도서/자작글 메뉴가 따로 있었군요
- 앞으로는 여기에 써야겠어요
- 논픽션 & 픽션 여러가지 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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