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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RM 프로세서들의 '영역 확장' 이 무서울 정도의 기세다. 임베디드 영역을 벗어나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모바일 컴퓨팅 시장을 제대로 열어제치더니, 이제는 마이크로서버 정도지만 엔터프라이즈 시장으로 진입하려고도 하고 있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면 ARM 기반 프로세서들을 쓰는 디바이스를 누구나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급속한 영역 확장에 따라 어느 정도는 시장에서 기존 제품들과 '충돌'의 여지가 생겼다. 대부분 이 충돌의 대상은 x86 프로세서이며, 다른 말로는 '인텔'과 충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분야에 따라 공수 위치가 바뀌기는 하지만, 현재 최신 세대의 ARM 프로세서는 현 세대의 인텔 아톰 프로세서와 비슷한 시장을 보고 있으며, 서로의 영역을 뚫어내기 위한 치열함을 볼 수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과연 x86 프로세서가 공고한 위치를 가진 데이터센터를 ARM 기반 프로세서가 뚫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한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ARM 기반 프로세서가 데이터센터에서 활용되는 사례들도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예전 x86이 RISC 기반 프로세서를 뚫고 데이터센터를 점령했던 것처럼,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 현재 인터넷 서비스의 대부분은 x86 서버로 서비스되고 있다.
현재 데이터센터 등에서 x86 기반 서버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 하다. 한 해 출고되는 서버 중 x86의 비중은 유닛 수로 따질 때 90%를 훌쩍 넘어 거의 100%에 근접할 정도다. 그리고 이런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비용 대비 가치' 때문으로, RISC 기반 서버들과 비교해 몇 가지 부분에서 현실과 타협하면, 비슷한 성능을 몇 배 싼 가격으로 얻을 수 있다는 면이 컸다.
서버 시장에서 x86의 성공 요인으로는 역시 적당한 성능과 비용 효율의 훌륭한 밸런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서비스 구성을 위한 최소한의 성능은 보장되어야 하고, 아무리 스케일아웃 확장이 가능한 서비스라 해도 전력 소비나 상면 면적, 네트워킹 등의 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시장에서 이 밸런스를 가장 잘 맞춘 서버는 2소켓, 2U 정도의 서버로, 실제로 x86 서버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x86이 서버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소프트웨어'가 꼽힌다. 여기서 소프트웨어의 의미는 '훌륭한' 이나 '혁신적인' 이 아니라, '기존에 쓰던 것과 비슷하게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이라는 최소 기준의 의미가 더 강하다. 지금 필요한 것을 더 저렴한 하드웨어에서도 비슷한 성능에 얻을 수 있다는, 강력한 비용 경쟁력은 인터넷의 빠른 확산이라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실질적인 '표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x86이 서버 시장에 진입할 때 사용했던 무기는 현재 ARM 진영이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아직까지 ARM 기반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솔루션은 그 선택지가 넓지 않지만, 어떻게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굳이 플랫폼을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건 서비스 제공을 위한 검증된 기본 능력과 가격 경쟁력인데, 이 가격 경쟁력은 서버 가격이 아닌 총소유비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 쯤 되면, ARM 기반 프로세서가 과연 서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수도 있다. RISC 기반 유닉스 시스템을 x86이 십수년에 걸쳐 밀어낸 것처럼, 언젠가는 ARM 기반의 프로세서를 이용한 시스템도 x86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있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너무도 많기만 하지만 말이다.
▲ 여기에 ARM을 대입하면 그 격차는 더 극단적으로 변할 뿐이다.
당연하게도, ARM 기반 프로세서로도 지금 당장 서버를 운영할 수 있다. 상당수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ARM 기반 프로세서에서도 구동할 수 있도록 포팅되고 있고, 운영체제도 기존 리눅스의 ARM 기반 버전을 그대로 활용하면 된다. 아직은 대단히 제한적인 활용이지만, 아예 못쓴다고 단언하기는 힘든 것이 지금의 ARM 기반 서버인 셈이다. 사실 서비스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 제공할 수 있다면, 그 밑에 있는 플랫폼은 크게 상관없는 게 웹 서비스의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먼저, 절대 성능 측면에서 아직 ARM 기반 프로세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현재 상용화된 가장 최신 코어라는 Cortex-A15의 코어당 성능은 이제서야 x86 기반에서 가장 낮은 성능을 가지는 아톰 프로세서와 비견될 정도이며, 메인스트림의 제온 프로세서와는 그 차이가 너무 벌어진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도 지금 상황에서 쉽게 이용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코어당 성능이 떨어지면 멀티 코어 디자인을 사용하고, 프로세서당 성능이 떨어지면 이를 극복하는 멀티 프로세서나 멀티 노드 디자인을 채택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멀티 코어 디자인은 단순히 코어 수를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프로세서의 전반적인 아키텍처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다. 또한 멀티 프로세서와 멀티 노드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각 프로세서나 노드를 연결하는 고속 연결 기술로, 이 기술의 완성도에 따라 전체 성능과 효율이 좌우된다.
또 다른 문제는 성능과 전력 밀도다. 프로세서나 시스템이 복잡, 비대해지면 그 만큼 전력 소비량도 늘어난다. 당장 현재 ARM 기반 프로세서가 인텔 제온 프로세서를 잡겠다고 수십 개의 코어와 수십 개의 노드로 무장해 나온다면 당장 걸리는 게 시스템 수준에서의 전력 소비량과 성능 효율이다. 당연하지만 멀티 코어, 멀티 노드화되면 시스템 레벨에서 전력 소비량은 기존 서버들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지언데, 이에 걸맞는 성능이 나올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직접 비교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이를 예측할 수 있는 게 인텔의 아톰 S1200과 제온 서버의 성격 비교인데, 같은 랙을 채웠을 때 성능은 제온이 두 배, 하지만 노드 수는 아톰이 5배였다. 코어 수나 노드 수는 아톰이 압도적이지만, 트랜잭션 처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제온 프로세서가 압도적이고, 이는 아톰 프로세서와 비교해도 다소 열세로 보이는 ARM에는 더 큰 벽으로 보일 것이다.
▲ ARM에게 기회가 있다면 그 첫 기회는 마이크로서버 시장에서 온다.
하지만 ARM에도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는 마이크로서버 시장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독특한 서비스 특징에 맞춘 이 마이크로서버는 최소화된 구성으로 패키징된 다수의 노드를 집적해, 이 노드를 독립적으로 구동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형태의 시스템이다. 더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존의 '블레이드 서버' 개념을 더 극단적으로 구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공유해 공간 효율과 비용 효율을 높이는 형태다.
마이크로서버는 프로세서 성능보다 I/O 성능쪽이 더 필요한 단순한 작업들을 대량으로 서비스하는 데 효과적인 구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단순히 웹 호스팅을 제공하는 데 있어, 수행 시간 전체를 따져 보면 프로세서 사용 시간보다 스토리지나 네트워크 등 I/O 사용 시간이 훨씬 길다. 그리고 만약 이런 서비스를 가상화해서 서비스한다고 하면, 서버의 프로세서 성능 이전에 I/O 부분에서 먼저 병목 현상을 겪게 된다.
하지만 노드별로 완전히 독립된 I/O를 가진 마이크로서버는 서비스에 필요한 최소한의 프로세서와 I/O 수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되며, 병목 현상의 원인 자체를 피해갈 수 있다. 물론 노드별로 스토리지를 할당하는 부분에서 인프라 활용률이나, 수많은 노드를 구성하면서도 고급 관리 기능을 어느 정도 생략하는 마이크로서버의 특징을 감안해야 하지만, 이 마이크로서버는 '물량 공세'가 필요한 특정 워크로드에 있어 최적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서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노드를 얼마나 작고,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SoC 구성으로 귀결된다. 덕분에 이 시장을 위한 인텔 아톰 S1200도 SoC 형태이며, ARM 기반 프로세서들은 이미 임베디드 등에서 SoC 구성이 익숙한 상태다. 여기에, 노드별로 전력 소비량을 어느 정도까지 줄여낼 수 있는지도 과제인데, 이 부분에서도 비슷한 성능을 내고자 한다면 아톰과 ARM 기반 프로세서는 노드 수준에서 따지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에 왔다.
이 부분에서 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모델은 HP의 마이크로서버, ‘프로젝트 문샷’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ARM과 x86 모델 모두가 존재하며, 컴퓨팅 모듈은 섀시 전면이 아닌 내부 공간에 위치한다. 핫 스왑 모듈의 편의성을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써 더 높은 집적 밀도를 만들어 낸 셈이다. 그리고 이들 모델의 개별 모듈 크기는 ARM과 x86 모두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 '아톰 S1200'의 중요 세일즈 포인트는 ECC, 64비트, 그리고 VT-x 지원이다.
성능 측면에서, 마이크로서버의 기준은 서비스 목표에 필요한 최소한의 성능 달성이다. 그리고 기존의 x86 소프트웨어와 각종 SIMD 명령어 지원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는 아톰 쪽이 조금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ARM쪽도 각종 SIMD 명령어가 추가되고 있어 이 부분의 성능은 개선을 기대할 수 있으며, 특정 워크로드만을 위한 요구에서는 비교적 유연한 구조가 가능한 만큼 아예 실리콘 레벨에서 액셀레이터를 구성해 넣을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물론 SIMD나 엑셀레이터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수정이 필요할 수 있고, 프로세서 구조의 비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라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성격이 있다. 그리고 아톰 프로세서와 ARM 기반 프로세서를 이용하는 마이크로서버에서 중요한 요인인 가격 측면에서는 아톰 쪽이 좀 더 불리하지만,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총소유비용 수준이 되면 ARM 계열이 그 때도 더 저렴할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현재 마이크로서버의 노드 집적도는 랙 당 1,000 노드 이상까지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고집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로는 전력 공급 측면이 있다. 아톰 프로세서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노드당 8~9W 정도를 소비한다고 할 때 랙 수준에서의 소비 전력은 거의 10,000W 수준이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랙에 공급이 가능한, 혹은 허용되는 기준을 넘어서 밀도의 의미가 반감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ARM 기반 프로세서가 넘어야 할 벽으로는 데이터센터 환경에 필요한 '신뢰성' 측면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ECC 메모리 지원이다. 그리고 당장 현실이 된 64비트 환경 지원과 가상화 지원 측면에서도 현재는 아톰 프로세서가 앞서가는 모습이다. 프로세서 부하가 특히 낮은 워크로드라면 마이크로서버에 가상화를 부분적으로 접목해, 더 높은 서비스 수용 밀도도 기대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ARM 진영도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다. 차세대 ARM 코어에서는 64비트 지원이 예정되어 있으며, 프로세서 제작사에 따라 메모리 컨트롤러에 ECC 지원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만으로도 데이터센터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기는 힘들지라도 현재 ARM 기반 프로세서가 사용되는 부분에서 대부분의 요구는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서버는 아키텍처에 관계 없이도 다양한 형태의 이용을 기대할 수 있다. ARM 기반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해도 APM 패키지 정도만을 이용하는 간단한 웹 서비스라면 충분한 기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애초에 신뢰성과는 다소 타협한 형태인 마이크로서버인 만큼, 노드 한두 개쯤 이상이 생겨도 서비스 전체에 무리가 없는 스케일아웃 구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실제 대량의 웹 쿼리를 마이크로서버로 처리하는 경우, 이를 활용하는 이유는 많은 노드를 통한 리스크 분산이라는 목적도 있다.
▲ 개별 노드 모듈 크기는 이미 산업용 등에서 훌륭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마이크로서버는 ARM과 x86이 격돌하는 수많은 전장 중 하나일 뿐이다. 당장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그리고 하이엔드 임베디드 시장과 자동차용 IVI 시장에서도 어김없이 x86 프로세서와 ARM 프로세서가 격돌했으며, 그 관전 포인트도 대부분 비슷한 모습으로 요약되고 있다. 그리고 x86 프로세서로 이 시장을 노리는 업체가 인텔 정도 뿐이라 결국 인텔과 ARM 진영의 싸움처럼 보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마이크로서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정말 삼성에서 서버용 프로세서를 낼까요?' 라는 질문인데, 언제나 답은 '나올 수도 있고, 충분히 준비도 되어 있다고 본다' 는 것이다. 어디선가는 실제로 현실적인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ARM 기반의 서버용 프로세서가 나온다면 그 대상은 현실적으로 마이크로서버가 될 것이고, 제시된 여러 가지 당면 과제를 해결해 최소한의 '클래스'를 달성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물론 그동안 x86도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2013년에는 22nm 공정을 이용한 아톰 프로세서가 나오는데, 저전력 저클럭의 프로세서에서 22nm 공정이 적용되면 비슷한 전력 수준에서 30% 이상의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있고, 차세대 아톰 프로세서는 그 수혜를 제대로 활용할 것이다. 즉, ARM 쪽이 새로운 고성능 아키텍처를 준비하지 않으면 차이는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엔드유저 레벨의 '서비스'만 생각하면 하드웨어 아키텍처는 부수적인 문제다. 그리고 ARM 계열의 서버 프로세서가 실제로 등장했을 때 가장 큰 파급력이 오는 시점은, 삼성이 프로세서를 선보일 때가 아니라 중국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가 아니겠는가 싶다. 단지 삼성만이 경쟁이 가능하다고 보기에는 ARM 생태계가 너무 넓고, 기이한 시도를 할 인재들이 너무 많다.
실제로 하이엔드 임베디드 분야 등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둘이 비슷한 수준이 되면 어떤 쪽을 쓸 것이냐’ 라는 질문에는 ‘시장에서 많이 찾는 쪽을 쓸 것이다’ 라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이크로서버도 당장 ARM과 x86의 대결이라 흥미진진해 보이지만, 내년에 본격적으로 이 시장이 움직인다 해도 당분간은 말 그대로 ‘틈새 시장’ 이고, 잘 쳐줘야 전체 서버 시장에서 10% 미만의 변방의 싸움이며, 당분간은 주도권을 뒤집을 힘도 능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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