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는 상태에요. 

제가 먼저 좋아한다고 얼결에 말을 하게 되었고 상대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다시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은 없습니다.
딱히 뭐 다른 걸 한 것도 없고요, 둘이 따로 외부에서 만난 적도 없고요.
뭔가 건네다가 손끝이 스치는 정도의 스킨십조차도 일절 없습니다.

다만 그 이전에도 원래 많이 붙어 다녔지만 이후로는 하루종일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카톡을 하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 계속 통화를 합니다.
퇴근할 때도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거나 산책 혹은 운동을 하며 몇 시간씩이고 통화를 합니다.

주말에도 매일 평균적으로 10시간 정도는 통화 및 카톡 하고요..

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좋아한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하는 대화를 한 적은 일절 없어요.

통화로든 카톡으로든
그냥 영화, 드라마, 감독, 배우, 책, 음악, 정치, 종교, 주식, 부동산, 운동, 건강, 부모님 및 형제,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친구, 언어, 과학, 사회 이슈, 노후, 버킷 리스트, 여행.. 그런 것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만 끊임없이 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그러면 보통 대화가 끊기거나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매순간 대화가 막힘이 없었고 늘 즐겁더라고요.

심지어 서로 대화를 멈추고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손 안엔 따뜻한 차가 있고 바람은 시원하고

맞은 편에 그 사람이 앉아 있으니 그 순간이 마냥 즐겁고 좋아서

계속 그렇게 웃기만 하면서 앉아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상대도 하는 게 없는데 좋다며 웃더라고요. 

가정에 문제 없고 친인척분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십니다.

부모님들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인품도 좋으세요.

주변에서도 많이 부러워했고 저도 정말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자라면서 교우 관계에 문제 있던 적 없고 발도 넓고 대인 관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연애할 때도 문제나 어려움을 겪었던 적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서 매일 하교/퇴근하면 헬스하고 한강 달렸습니다.

제가 무언가 불만족스럽거나 결핍이 있었다면

차라리 내가 심정적으로 약해져서 그렇구나 하겠는데

저조차 제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동안 서로 연락을 차단도 해보고,

믿지도 않던 성당에 나가도 보고, 상담도 받아 보고,

운동 시간을 늘려도 보고, 다른 남자를 소개 받아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미친듯이 놀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은 마음이 들고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네요.

내가 상대와 따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하라는 것도 아니며

좋아한다 보고 싶다는 말은 커녕

대화 외에는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합리화를 하다가도

양심과 남에게 부끄러울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살아오신 부모님 밑에서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 현타도 오고 죄책감도 들어 무척 괴롭습니다.

대화조차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저도 상대방도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초췌해지는 모습을 보면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그러다가 서로 인사라도 하면 그 한마디에 서로 하루 종일

싱글벙글 한 모습에 행복하면서도 현타가 옵니다.

우울증이 있는 친구가 있어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멍하고 만사가 부옇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차라리 저도 약을 먹는 게 나은가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심정이 너무 괴로워서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