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4

"선생님 만약 치료받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보통 1년 이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고통이 크기 때문에 빠른 치유를 권하는 편입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오늘 바로 수술 날짜를 잡으셔야 됩니다."

"그렇군요. 후...... 선생님 저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기 얼마 안남은 몸이라도 내 몸의 상태를 아는데는 돈이 얼마 안들자나요. 그러면서도 저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결국 저한테는 이 병을 치료할 정도의 돈은 없거든요."

"선생님 사람 목숨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빚을 지셔서라도 일단 살고 봐야지요."

"선생님 저는 지금 배 속에 든 장기보다도 머리 속에 들어있는 장기가 더 아픈 사람입니다. 1년 남았다라는 말을 듣고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죽을 수 있겠구나. 저는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스스로 죽지않을수 있겠구나. 저는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죽음을 가난이라는 핑계로 돌릴 수 있겠구나."

"선생님 지금부터라도 치료하면 죽을 확률보다 살 확률이 더 큽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시고 약해지시면 안됩니다. 저를 믿고 현대 의학을 믿으세요. 의사로써는 위험한 말이지만 제가 반드시 고쳐드리겠습니다. 희망을 가지시죠."

"선생님 저는 오늘 절망적인 말을 들은건지 희망적인 말을 들은건지 알 수가 없네요. 마음의 병을 얻은 이후로 저는 눈 오는 날을 항상 싫어했습니다. 오늘도 눈이 오는데 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싫어했던 날씨가 이젠 아름답게 보이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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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선생님 다음 환자분 불러주세요."

"네. 선생님. 선생님 그런데 다음 환자분 모시기 전에요..."

"네? 왜요? 무슨일 있어요?"

"아까 그 이상한 말 하신 환자분 있자나요. 말기 환자분이요."

"네. 김서준 환자분요. 그 분이 왜요? 혹시 소란이라도 피우셨나요?"

"아니요... 그 분 장기기증 신청하시고 가셨더라구요..."

"아.... 음.... 후... 알겠습니다. 일단 다음 환자분 불러주세요. 진료 끝나고 제가 전화 한 번 다시 드려볼게요."

새벽부터 내린 눈이 기어코 세상을 뒤덮은 날이었다. 새하얀 눈은 절망을 덮어버리고 이젠 공포스럽게도 희망마저 덮어버렸다. 김서준이 눈 오는날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하얗게 뒤덮여버린 세상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김서준은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마음이 하얗게 뒤덮여버려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잃었던 김서준에게 죽음이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죽음은 길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