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권 선수까지 챙기고 나선 PGA…한국도 도입 필요 지적

'1231만7974달러(약 166억 원).'

한국 남자 골프의 대표주자인 임성재(24)가 올 시즌 벌어들인 상금·보너스 총액이다.
2019년 처음 미국 프로골프(PGA) 무대에 진출한 지 4년 만에 부와 명성을 거머쥔 셈이다.
그는 특히 PGA 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준우승으로만 575만 달러의 목돈을 챙겼다.
그가 PO에서 챙긴 보너스 금액만 따져도 미국 메이저리그야구(MLB)에서 활약 중인 김하성 선수의 연봉 600만 달러와 맞먹는다.

하지만 지속적인 저변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부분 프로 골프 선수들의 삶은 만만치 않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2부 투어에서 활동 중인 A씨는 “후원은 언감생심이고, 생계 때문에 부업을 하는 선수도 많다”고 말한다.
A 선수 역시 투잡족이다.
그는 특히 "국내에서는 미국과 달리 오히려 여자 대회의 인기가 더 높다 보니 남자 선수들은 후원을 받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PGA 측은 최근 지난달 말 대대적인 선수 처우 개선책을 담은 2022~2023년 시즌 투어 변경안을 내놓았다.

다음 시즌부터 특급 선수 20명을 추려 1억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메이저 대회의 상금을 LIV 인비테이셔널 대회 수준으로 증액하는 등 최상위권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에 대항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개편안에는 재정적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하위권 선수들에 대한 지원책이 함께 담겼다는 점이다.

변경안에 따르면 PGA투어는 내년부터 시드를 가진 선수들의 연간 상금액이 50만달러에 못 미치면 시즌이 끝난 후 차액만큼 협회가 이를 보전해 준다.
이전 시즌 투어에 참여하지 않은 신인 및 복귀 선수들은 선불로 돈을 받고, 다른 프로들은 연말에 차액을 보전받는다.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는 “(변경안이)도전적인 역동성을 충족시키고 다른 리그가 선수 보상에 접근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믿는다”며 "신인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에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더 나은 위치에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씨드가 없더라도 PGA 투어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라면 컷오프(예선탈락)되더라도 토너먼트 상금에 영향 없이 5000달러가 지급된다.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이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더라도 최소한의 경비는 지원하자는 목적이다.

국내 프로골프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KPGA 측에 따르면 선수들은 한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300만원 안팎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대회 참가금 외에 캐디피, 숙박비는 물론이고 식사도 자체 해결해야 한다.

막상 큰돈을 들여 대회에 참가했지만 컷오프되면 선수는 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KPGA 관계자는 “참가 선수 중 절반이 컷오프당하는 것을 고려하면 하위권 선수들에게는 절대 작지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박노승 전 대한골프협회 국제심판은 “국내 하위권 선수들은 정말 어렵고 불쌍하기까지 하다"며 "하위권 선수들에 대한 지원 대책은 꼭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정은 여자 선수보다 남자 선수들이 더 어렵다.
남자 대회의 인기가 높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여자프로골프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더 높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KPGA 대회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대회의 방송 시청률은 유의미한 수준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스포츠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스포츠에서 후원 규모는 선수와 대회의 인지도와 관심도 등과 비례한다"며 "이는 수익성에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의 경우 박세리 선수 이후 꾸준히 세계 톱 랭커들이 배출되며 미국과 함께 세계 여자 골프계를 양분하고 있다 보니 후원사들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마케팅 효과까지 누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상금 규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 시즌 반환점을 돈 KLPGA 정규 투어는 34개 대회로 총상금 규모는 322억원이다.
평균 상금 규모는 9억4700만원. 반면 KPGA 총상금은 불과 60% 수준인 192억원에 그친다.
대회 수 역시 22개로 KLPGA에 훨씬 못 미친다.
평균 상금으로 따져봐도 8억7200만원으로 KLPGA와 비교해 7500만원이 적다.

이재필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는 “1회 대회 참가비용이 300만원을 넘으니 하위권 선수들은 허리가 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하위권 선수 지원 대책은 국내 골프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논의해봄 직한 아주 좋은 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최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