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에 있었던 랜도너스 광주->부산 300K 참가하여 중도포기한 후기입니다 ㅠ
서울 센트럴에서 20일 01:30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3시간 30분 걸린다는 고속버스가 너무 일찍 내려가서 04:40 정도에 도착해서 터미널에서 시간을 좀 죽였네요.
새벽에는 진짜 춥더군요. 바람막이 안챙겨갔으면 그대로 터미널에서 얌전히 서울로 바로 올라갔을 정도로 추웠습니다.
05:20 정도에 시작 장소인 운암 MTB로 출발하였습니다. 터미널에서 3km 남짓한 거리인데
길을 헤매는 바람에 접수 마감 시간에 조금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처음 참여하는 사람의 어리숙한, 그리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일단 광주 고속터미널에서 내린 이후 따로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출발 접수하고 자유롭게 달리면 되는거라 생각하고 접수 후 아침을 먹자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6시가 되니 광주 시내에서 벗어나는 구간은 그룹 라이딩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6시가 되니 사진처럼 일렬로 그룹을 생성하고 땅! 출발을 하였습니다.
...속도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비경쟁 레이스 란도너스의 첫 출발은 샤방샤방한 라이딩이 되지 않을까 상상했던 미숙함을
단박에 날릴 정도의 속도로 30km/h는 기본이고 40km/h도 그냥 넘더군요.
마치 신호등에 걸리는 사람은 그룹에서 정리된다는 느낌으로 엄청 빠른 그룹 주행이었습니다.
아침 기온은 10도 근처고, 30km/h 넘게 쌩쌩 달리고, 아침은 안먹은 공복 상태고...
사실 여기서 그냥 그룹에서 빠져나왔어야 했습니다만 정신나갔는지 한번 따라가보자 마음먹고 죽어라 페달링하였습니다.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광주 시내 벗어나고 첫 CP인 장성을 향하고 있는데 주위가 허허벌판입니다.
편의점은 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급할 곳이 없습니다.
춥고 배는 고프고 아까 광주 시내 고속 탈출하면서 스쳐지나간 24시간 맥도날드가 계속 아른거리더군요.
그때 그냥 그룹 라이딩 때려치고 드라이브인해서 따뜻한 햄버거나 먹을걸 ㅠㅠ
첫 CP인 장성에서 도장 찍고, 춥고 배고프지만 라이딩은 계속합니다.
담양까지 가서야 간신히 아침을 먹을 수 있었네요.
아침 라이딩 경치는 정말 장난 아니게 황홀했습니다. 햇살은 막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고 저 멀리엔 새벽 안개도 은은하게 깔려있고
이게 랜도너스 코스 철학이구나 싶을 정도로 멋진 정경이 계속해서 펼쳐졌습니다.
아침을 안먹은 채로 무리하여 그룹 라이딩을 따라간게 가장 큰 실수였다면,
출발 전에 목표 평속을 20~22km/h로 잡고 달린게 두번째 실수였습니다.
막연하게 300km를 20시간 안에 달리면 되니까 평속 20km/h만 넘으면 무난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네, 확실히 무난할겁니다. 운동 평속이 아니라 실제 평속이 20km/h라면요 -_
지리산 부근에 다다라서야 운동 평속과 실제 평속 사이의 아주 큰 차이를 눈치챕니다.
가민의 오토 포즈 때문에 멈춰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먹는 시간 모두 빠진 시간으로 평속이 계산되어
가민에서의 평속은 21km/h로 아주 완벽하게 달리고 있는걸로 찍혀나오지만, 이건 쓸모가 없는 수치였어요.
어라? 출발한지 6시간 지났고 평속 21km/h로 달렸는데 왜 아직 100km 밖에 못 온거지?
..아주 바보같은 판단 착오였죠.
아까 점심으로 남원에서 느긋하게 국밥 말아먹으며 40분 가량 보내면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라면으로 떼우시는 분을 보며 저렇게 드시곤 못 달릴텐데 혀를 찼던 제가 한없이 바보 같아지는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마음이 조급한 감이 들어 살짝 페이스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게 3번째 실수가 되죠.
광주->부산 300K 코스상에 존재하는 2개의 커다란 업힐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로드 입문 초보로 라이딩 자세가 바른 편이 아닙니다.
허리 유연성도 떨어져서 후드 잡고 달리는게 불편해 거의 대부분의 라이딩은 두번째 사진처럼 달립니다.
(에어로 같은거 필요없습니다 ㅠㅠ 다음 기변할때는 핸들바 높은 엔듀런스 모델로 살거에요)
추울 거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훨씬 두꺼운 양말을 신고 안장 피팅을 바꾸지 않은 것 때문인지
평소에는 장거리를 타도 느끼지 못하던 안장통이 살살 오기 시작합니다.
업힐 구간에서 파워를 올린 것과 평소에 없던 안장통이 오면서 슬슬 총체적 난국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첫번째 업힐 여원재는 빡세지만 햄스트링을 이용하여 꾸역꾸역 올랐습니다.
(다음 기변할때는 가장 큰 스프라켓이 25t인 자전거는 쳐다도 안볼거에요 ㅠ)
여원재를 지나니 바로 급격한 다운힐이 아니라 해발고도 400m에서 지리산 풍경을 즐기며
완만하게 내려오는 코스가 이어지더군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 맛에 란도너스 뛰는구나 싶을 정도로 즐겁게 탔습니다.
제가 120km 정도 갔을 때 역방향 코스 부산->광주 뛰시는 굇수분들을 마주치기 시작합니다.
같은 시간에 출발했는데 저와 60km 차이, 거기다 광주-부산 코스에서 가장 높은 업힐까지 정복하시고 오신 분들이니..
제 앞에 놓인 수많은 레벨 차이가 느껴지는 의미있는 조우였습니다 ㅎㅎ
여원재 다운힐 중에 조우한 가장 기억에 남는 굇수분은 빨간색 윌리어 타시는 분이었는데,
앞바퀴 펑크가 난 걸 미니펌프로 채우시느라 공기압이 60 정도 밖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타이어 만져봐도 말랑말랑한 수준이던데, 이런 기자재 트러블을 가지고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오시다니;;
가지고 있던 co2 한캔 따서 바람 채워드렸습니다.
전체 코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600m 업힐을 만나자, 이제까지 누적된 피로와 무리한 것이 함께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여원재 업힐에서는 34-25 풀이너로 넣고도 낮은 케이던스지만 햄스트링 힘으로 꾸역꾸역 꾸준히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제 햄스트링은 완전 침묵하더군요. 모든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고 힘은 들어가지 않고 무릎까지 살살 아파옵니다.
10% 경사가 나오면 그냥 내려서 끌바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계속 끌바만 하며 올라가고 있더군요.
황매산 즈음에서 다른 참가자 분들도 만나서 함께 올라갑니다. 여기만 지나면 부산까지 쉬우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더군요 ㅠㅠ
해가 뉘역뉘역 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 정상을 찍고, 제법 쌀쌀해져서 바람막이 챙겨입고 다운힐을 시작합니다.
(표지판에 절대감속이라고 적혀있는게 이해되는 다운힐이었습니다. 끝에는 비상 제동 장치 같은 시설도 있더군요.)
손이 아플 정도로 브레이크 잡으면서 내려오고 나니, 저를 기다리고 있는건 완전히 맛이 간 왼쪽 무릎입니다.
이제 안장에 앉는 것도 고통스럽고 페달을 돌리기만 해도 무릎이 아파옵니다.
제 랜도너스는 분하고 아쉽지만 여기서 끝났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그냥 거기서 정말 끝나서 서울로 쓩하고 이동했더라면 좋았을거 같아요.
복귀 버스를 타려고 해도 합천까지는 가야하더군요. 가는길은 지옥이었습니다.
무릎 통증이 더 심해져서 평지에서도 페달링이 힘든 수준이 되어 내리막에서만 자전거를 타고
평지와 오르막에서는 끌바를 해서 느릿느릿하게 갑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졌습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니 랜도너스의 다른 면이 보이더군요. 전 여지껏 도심지에서만 야간 라이딩을 해보았습니다.
분원리 갔다가 늦게 돌아오는 길에도 가로등 불빛은 있고 멀리 서울 도심의 환한 불빛도 보이고..
시골 국도에서의 야간 라이딩은 차원이 다르더군요. 도심 불빛은 커녕 가로등도 없고,
차량 통행량도 적어서 제 전조등, 후미등 불빛과 여기에 반사되는 반사판들만이 제 세상의 전부가 됩니다.
아마 제 평속이 높아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여길 왔다면 끝내주게 아름다운 랜도너스 코스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낮과 밤의 랜도너스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레이스라는걸 완벽한 어둠 속에서 무서울 정도로 느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거진 패닉 상태라 사진 찍을 경황도 없었네요.
마지막으로 구글링 했을 때 합천에서 서울 가는 버스는 진작에 끊겼고, 대구가는 막차가 8시까지라기에
도저히 끌바로는 답이 없을거 같아서 오른발만 이용하여 아픈걸 억지로 참고 페달링을 시작합니다.
몇 키로를 달려도 불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무리 달려도 불빛이 보이지 않길레, 사실 저는 진작에 아까 죽었고 랜도너스에 한이 맺혀
자전거 타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참을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무릎이 아픈건 교통사고로 죽을 때 무릎이 나가서 귀신이어도 아픈거다며 스스로 이상한 이야기를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ㅋㅋ)
모텔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 있을지 미처 몰랐습니다. 저 멀리 모텔처럼 생긴게 보이니까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려고 하더군요.
다행히 합천 CP는 합천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서 도장 찍는 것에 무릎을 지불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네요.
대구 가는 마지막 버스 타기 전에 한 5초 정도 오른발만 써서 반쪽짜리 페달링으로 부산까지 남은 코스 도전해볼까 생각했습니다.
정말 5초만요. 아까 같은 어둠 속을 120km 거리로 거진 7시간 동안 달려야한다는 생각만 해도 오금이 지리더군요.
깔끔하게 합천에서 포기하고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서 밥먹고 뒹굴뒹굴하고만 있네요.
완주하신 분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ㅠ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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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숀블루
읽기만해도 어떤 심정이었을지....
제가 국종하면서 느꼈던 경험으로 비슷한 환경이었는데 그것이 공포로 다가올수도 있었겠네요 잘읽었습니다
수고 추!!!
수고추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