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달곰탕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번에 사진 한 장 없는 서울 브레베 400k 후기에 이어 서울 600k 후기를 씁니다.
이유는... 저번과 같이 정말 사진 한 장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제한시간을 30분 정도 남기고 들어와서...;;;
브레베를 하면서 정말 이 생각이 들더군요. "무너져 간다. 내 자신이...씨x...(욕이 절로 나는 상황이 장난 아니게 많았습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서울 600k에서 있었던 일을 한 번 뽐뿌 자포인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
chapter 1. 새벽에 모인 100명의 비정상인들.
이번 서울 600은 특별하게 새벽 4시 30분부터 출발했습니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져서 두 그룹으로 나눈거죠.
소문을 듣자하니 악명높은 서울 600에 참가하는 사람이 100명이랍니다. 100명. 허허허.
이 고생을 돈주고 사서하는 특이취향(?)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오늘도 혼자 솔로잉이지만 이렇게 취향맞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니 외롭지가 않습니다. ㅎㅎㅎ
chapter 2. 포천까지 가는 포풍열차.
중랑천을 끼고 포천으로 가면 서울 600의 프롤로그(?)가 끝나고 스테이지 1인 산정호수와 백운계곡이 나타납니다.
아니 근데 사람들이 저의 기준으로 엄청난 페이스로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헐... 역시 세상에 고수는 많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600km인데 벌써부터 저런 하이페이스라니... ㅠㅠ 안녕 난 이 페이스를 견딜수 없어 ㅠㅠ
chapter 3. 해산령
해산령을 시작하면 평화의 댐까지 22km였나? 그렇게 적혀져 있죠. 다운힐까지 포함이지만 여기 정말 멘탈깨집니다.
시라소니님의 그룹과 함께라서 간신히 무정차로 해산령 터널 도착!
살이 익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맨살이 노출된 부분은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변해가는 중... ㅠㅠ
이 때 날씨가 장난 아니었죠.
chapter 4. 돌산령
아오 미친 서울 브레베 코스 에디터 ㅠㅠ (제이슨 형 미안... 근데 제이슨의 코스는 정말 미친거 같아요)
돌산령 초반 헤어핀은 뭐 그려러니 합니다. 막판 직선으로 죽죽 뻗은 업힐 3군데는 정말...
이 때까지 페이스가 너무 느려서 저녁을 원통에서 먹겠다는 원래 계획은 철저히 파괴되고 돌산령 다운힐하고 밑에 있는 군부대 근처에서 잡채밥 곱배기를 먹고 힘을 내어 갑니다.
그 때 화면에서 많이 뵙던 분이 계시네요. 오오 빨간 헬멧과 콜냐고. 나기사 카오루님이시군요. 제 페이스에 맞지 않게 빠르게 타고 계셔서 또 떠나 보내드립니다. ㅠㅠ 와 엄청 빠르심... 흐르는게 창피해서 인사 안드리길 잘 했어요. ㅎㅎㅎ
chapter 5. 암흑의 7번 국도와 노숙의 불가항력
완만한 진부령을 넘고 따뜻한 휀현상에 땀을 말리며 고성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어둠의 7번 국도를 내달려 양양에 도착합니다.
양양에 모텔이 엄청 많더군요. 근데 다 만실입니다. 덜덜덜
터미널 근처 장급 여관도 여지없이 만실입니다. ㅠㅠ
숙소에서 쉬고싶어 여기저기 다 뒤져봤는데 한 시간 공으로 날리고 어쩔 수 없이 밤샘 라이딩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하더군요. ㅠㅠ 구룡령 올라가기 전 마을의 버스정류장에 지쳐서 누워보니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나무 벤치가 에이스 침대보다 편안해지는건 함정 ㄷㄷㄷ
휀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바람이 미친듯이 부는 데 주변 쓰레기장을 뒤져보니 깨끗한 신문을 발견. 덮고 한 시간 눈을 붙입니다.
4시 되기 전에 나만의 여관이 되어준 버스 정류장을 나와 조침령을 향해 꾸역꾸역 페달링을 해봅니다.
chapter 6. 조침령은 미쳤다.
새도 자고 간다니 덜덜덜. 이름부터 살벌한 조침령. 역시 시작부터 와리가리를 하지 않으면 올라가지지가 않습니다. ㅠㅠ
새벽을 꼴딱 새고 달리니 온 몸에 힘도 없고 먹은거라곤 비상식으로 챙긴 양갱뿐. 죽겠다죽겠다하면서 중간에 2번 쉬고 조침령 정상에 도착.
다운힐을 하는데, 아... 갑자기 한 겨울을 만납니다. 온몸이 떨리고 턱에 진동온 것처럼 이빨에서 현란한 캐스터네츠 소리가 납니다. -_-;
아직 해가 온전히 뜨지 않아 산의 응달 지역에 가면 정말 머리통 깨지게 추워집니다. ㅠㅠ
내려가다 중간에 버스정류장을 보니 김장비닐 봉투 하나와 버려진 전기담요가 보입니다? 오오 이게 왠거야 하고 자전거를 팽겨치고 뛰어들어가
비닐을 몸에 뒤집어 쓰고 담여를 덮고 몸을 녹입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분명히 이건 나같은 사람이 이거 뒤집어쓰고 자다 버리고 간 모양입니다. ㅋㅋㅋ 역시 사람은 별 수 없습니다.
한 10분 쉬었다가 현리에서 dnf를 하던 뭐하던 빨리 가서 뜨건 물에 몸을 담그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라이딩을 계속합니다.
chapter 7. 낮잠의 인터스텔라.
횡성까지 가는 데 미친듯이 졸음이 옵니다. 업힐과 다운힐은 그나마 긴장해서 괜찮은데, 다운힐 후 평지에선 여지없이 졸음이 쏟아집니다.
평지에서 페달링하다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도 해봅니다.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다시 라이딩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네. 졸음운전입니다. ㅠㅠ 안되겠다 싶어 서석면 버스정류장(또냐...)에서 쪽잠을 청하는데, 세상에 벤치에 매트가 깔려있습니다!!!
5분 눈 감은것 같은데 눕자마자 한 시간이 사라지는 상대성원리를 인터스텔라에 이어 이번 라이딩에서 다시 한번 공부합니다.
이름없는 면과 리를 넘어가는 곳엔 언제나 산이 있지요. 이름없는 수많은 고개와 '재'급을 3번 넘으니 드디어 횡성 도착.
횡성에서 팥빙수를 보급하고 다시 갈 길을 갑니다. 시간 계산해보니 제 인생 최고의 라이딩을 펼치면 제한시간 1시간 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500km를 제대로 못자고 달려온 저로서 최고의 레이스가 될리 없죠. 빨리 빨리 서두릅니다.
chapter 8. 역시 넌 날 쉽게 보내주지 않는구나.
횡성을 지나고 타들어갈 듯 뜨거운 국도를 벗어나니 업힐의 향연입니다.
체력이 없으니 짧은 업힐도 500m급처럼 느껴집니다. ㅠㅠ
이제 손은 핸들을 쥘 수 없이 아프고 새끼 발가락도 아픕니다.
왼쪽 장경인대염이 와서 찌릿찌릿하고 엉덩이는 이미 300km 넘은 시점에서 허물이 벗겨져 진물이 흥건한 느낌이고 안장 위에 페달링할 때마다 고통입니다.
도덕고개만 넘으면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도덕고개 전 3개였나? 이름없는 고개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ㅋㅋㅋ
그래도 어찌저찌 다 넘기고 양평 자전거도로에 도착.
친구가 너무 고맙게 마중을 나와있네요.
하지만 그룹라이딩을 해 본적이 없는 친구라 끌어줄때 자꾸 페달링을 놓쳐서 그냥 제가 끌기로 결정.
시간이 이제 간당간당합니다. 마지막 남은 촛불 하나에 불을 켭니다. 퐈이야!!!
그리고 익숙한 팔당대교가 나오자 제 촛불은 다 타버리고 저는 앵꼬가 됩니다. ㅎㅎㅎ
그래도 친구가 미리 콜라를 사서 중간에 보급시켜주고 졸지 않게 뒤에서 말을 계속 걸어줘서 사고없이 헬강을 뚫고 피니쉬를 합니다.
chapter 9. 서울 브레베 600k는 미친 짓이야. 그랜드 란도니는 얼마나 더 돌+아이인거야???
드디어 올해 목표인 수퍼 란도너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30분 남기고 가까스로 피니쉬... ㅋㅋㅋ 와 간당간당했습니다.
이제 이 후기를 마지막으로 이번 주는 자전거 생각도 안하고 살겁니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도 솔로잉으로 무사하게 란도링을 마쳐서 그래도 만족스럽고 뿌듯합니다.
600k 시작하기 전엔 겉으로는 '에이 1200을 어떻게 타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그랜드 란도니 될거야'라고 생각했던 저.
지금으로서는 싹 비웠습니다. 못해요. 못해. ㅋㅋㅋ
---
이번 브레베로 제 자전거에 대한 경험, 자존심이 모두 파괴되고 붕괴되는 진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란 인간 자체도 무너질 뻔 했구요.
이런 귀한 경험시켜준 제이슨 햄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네요.
그리고 주말을 저 혼자만의 취미를 위해 희생해준 여자친구와, 제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 길 위에서 많은 도움을 준 친구 빛나에게 고맙다는 말로 이번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텍스트만 있는 후기를 읽어주신 당신께도 감사합니다!
 | |
|
등록안내
등록안내
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