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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필자가 연재한 칼럼들을 살펴보니 자전거를 잘 모르는 분들이 읽고 공감하기엔 난감한 전문적인 소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되도록 전문적인 지식은 빼고 글을 써보려고 하지만,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자전거 이야기지만, 한국인들의 심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전거 업계도 일하다 보면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현상의 발생에 대해 합리적인 배경이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건데, 풀 서스펜션 자전거 시장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국내의 MTB 코스를 살펴보면 대부분 XC(Cross Country, 크로스 컨트리)나 트레일(Trail) 코스에 가깝고 일부가 올마운틴(All Mountain), 다운힐(Down Hill) 코스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곁들이면 XC는 서스펜션 트래블이 80~120mm 내외인 자전거, 트레일은 130~140mm, 올마운틴은 150~160mm, 다운힐은 200mm 이상의 서스펜션 트래블을 가진 자전거다. 어렵다면 이렇게 이해하시라. 험한 길로 다닐수록 서스펜션 트래블도 길어야 한다. 즉, XC는 한강이나 자전거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MTB나 트래블이 가장 작은 수준의 풀 서스펜션 자전거, 다운힐은 말도 안 되는 내리막을 내려오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자전거이다.
국내 MTB 라이더들은 XC와 올마운틴 자전거를 선호한다. 이 점은 필자의 생각이 아닌 국내의 전문 MTB 숍과 MTB 업체의 판매 데이터로 증명된 사실이다. XC는 MTB 입문자들의 접근이 쉽고 주행에도 부담이 없기에 그 인기의 이유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도대체 올마운틴이 인기가 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올마운틴을 타는 몇몇 분들과 MTB 숍에 물어보니 150mm 트래블 이상이 되어야 산을 탈만 하단다.
▲ 바이크쇼 행사장. 사진=박재성 기자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분들이 타는 산은 150mm 트래블로 타기엔 너무 평이한 코스란 점이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내 동호인들이 타는 올마운틴 코스는 XC 자전거로도 충분히 탈 수 있는 코스라는 의견이 있고 필자도 거기에 공감한다. 일례로 2014년 ‘삼천리 자전거배 무주대회’에 한스레이(Hans Rey)가 초청되었는데, 그는 코스를 둘러보고는 트래블이 130mm에 불과한 트레일 자전거로 다운힐 코스와 올마운틴 코스를 넘나들며 완벽한 라이딩을 선보였다. 그가 트라이얼의 전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라이더들은 코스에 비해 과한 장비와 스펙으로 무장된 자전거를 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유럽과 북미에서 액션 캠으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우리나라의 올마운틴 동호인들이 일반적으로 주행하는 코스보다 더 난이도가 있는 길을 트레일 바이크로 내려온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MTB 코스 대부분은 130mm 내외의 트래블을 가진 트레일 자전거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과한 스펙의 자전거를 선호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운동화를 신고 오를 수 있는 산을 오르면서 히말라야에 오르는 산악탐험대 대원처럼 옷을 갖춰 입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은 예전과 달리 ‘쪽 팔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남들이 쓰는 수준의 제품을 써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는 없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같은 의미다.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고급자전거 시장 대부분은 과한 장비를 사용하는 소비자들 위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구동계가 불티나게 팔리는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용도를 무시한 채 고가의 장비를 쓴다는 점이다. XC용으로 출시된 구동계를 고가라는 이유로 엔듀로 바이크에 장착하거나 레이싱용 카본 휠을 시내 주행용으로 쓴다든가 하는 패턴들 말이다. 생각해 보니 이 시장에서 이런 행동 양식을 보이는 소비자들 덕분에 밥을 먹고 사는 필자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 소비를 합리적으로 변화시켜보자. 남들이 쓰는 것과 같거나 더 높은 수준의 제품을 써야 멋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수준의 제품을 제대로 쓰면 멋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봄이 오면 실력에 맞는 입문급 XC 한 대 사서 임도로 나가볼까 한다.
P. S. 이 글은 올마운틴 라이더들이 잘못된 소비 행동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잘못된 소비 행동 패턴을 가진 라이더들이 올마운틴 자전거를 구입해 제대로 타지 못하는 사례를 든 것이니 라이딩을 즐기는 올마운틴 라이더분들은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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