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쇼크… 亞 ‘블랙먼데이’
파월 “금리인상 멈출 지점 아냐” 충격
비트코인도 한달여만에 2만弗선 붕괴
美 연준 세번째 자이언트 스텝 단행 땐
한은 ‘자본 유출 우려’ 인상기조 유지
이자 상승→소비 위축→S공포 불가피
증권가도 “베어마켓 랠리 끝물” 전망
‘잭슨홀 쇼크’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이 29일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처럼 쑥대밭이 됐다.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시사하며 매의 본색을 드러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입이 직격탄을 날렸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환율과 물가, 금리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인상) 우려를 자극할 수 있어 전세계 금융당국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54.14포인트(2.18%) 하락한 2426.89, 코스닥은 22.56포인트(2.81%) 하락한 779.89로 마감했다.
달러·원 환율은 19.1원 오른 1350.4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13년 4개월여 만에 1350원을 돌파했다.
뉴스1 |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개장부터 심상찮은 상승세를 보이다가 낮 12시28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350원을 돌파했다.
12시 32분에는 1350.8원까지 상승해 연고점을 경신한 후 등락을 반복하다가 전 거래일 대비 19.1원 오른 1350.4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35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4월29일(고가 기준 1357.5원) 이후 13년 4개월 만이다.
종가 기준으로도 2009년 4월28일(1356.80원) 이후 가장 높았다.
코스피 시장도 이날 2% 넘게 하락해 전 거래일보다 54.14포인트(2.18%) 내린 2426.89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7일(2415.53) 이후 한 달 만에 2420대로 내려앉은 것이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2.56포인트(2.81%) 내린 779.89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가 종가 기준 78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달 18일(776.72) 이후 처음이다.
다른 아시아 주요 외환시장과 증시도 비슷한 처지였다.
엔·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0.42% 오른 138.74엔으로 지난달 20일 이후 최고치(엔화 가치 최저치)를 경신했다.
위안·달러 환율은 0.69% 올라 달러당 6.92위안을 압박했다.
6.9위안을 넘긴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225)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766.88포인트(2.68%) 폭락한 2만7874.50에 거래를 마쳤고, 대만 가권(-2.31%), 호주 ASX200(-1.95%) 등도 2% 안팎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다만 중화권 증시는 상대적으로 작은 낙폭을 보였다.
중국 대표 지수인 상해종합지수는 장중 한때 1.15% 하락했다가 낙폭을 줄여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도 1% 미만으로 하락해 장을 끝냈다.
 |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일본 시민들이 29일 닛케이225지수를 보여주는 도쿄 증권사 전광판 앞에 서 있다.
도쿄=AP연합뉴스 |
가상화폐 시장도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은 이날 오후 기준으로 개당 1만9827달러에 거래되며 지난 7월 14일 이후 처음으로 2만달러가 무너졌다.
블랙 먼데이가 나타난 건 파월 의장이 26일(현지시간)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중앙은행은 낮고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을 지킬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물가 안정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의 의무에는 조건이 없다”고 말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특히 그가 “또 한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이 큰 충격을 미쳤다.
만약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또다시 밟을 경우 한국은행도 금리 상승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미국(연 2.25∼2.50%)과 우리나라(연 2.50%)의 기준금리를 고려하면,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선택할 때 미국(3.00∼3.25%)의 기준금리 상단은 우리나라보다 0.75%포인트 높게 된다.
이 경우 달러 자본이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한국에서는 외환시장 불안, 수입물가 상승에 의한 물가 상승 등의 충격이 불가피하다.
물론 어찌 됐든 한은의 선택지는 기준금리 인상밖에 없다는 게 현재로선 한국 경제의 구조적 한계다.
그러나 이럴 경우 국내 대출 금리가 상승하고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국내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다.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은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상승)에서 뜨던 연준의 속도조절론을 일축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 위축을 견뎌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다음 달 미국 공개시장위원회에서 0.75%포인트 인상 시나리오가 광범위하게 퍼질 것이고,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금리차를 무시할 수 없기에 당분간 금리와 달러가 주식시장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1350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2차적으로는 1380원까지 상단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약세장 단기 반등인 베어마켓 랠리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날 시장의 불안심리를 덜기 위해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서울 수출입은행에서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시장에서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겠다”면서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금융·외환·채권시장 반응에 유의하면서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대응체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긴급 금융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으나 우리 경제는 높은 수준의 외화 보유액 등 대외건전성이 양호하고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률 등 기초 여건이 견조하다”고 말했다.
 | 정부 ‘시장 상황 점검회의’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돌파한 29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가운데)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고금리 유지 방침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우선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이미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환율 상승 시 해외 영업으로 얻는 외화 수익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현재는 국제선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아 외화 수익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외화환산손익은 지난해 2분기 각각 111억원, 53억원에서 올해 2분기 각각 -2051억원, -2747억원으로 악화했다.
국내 주력 산업인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시설 투자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차입금이 불가피한 만큼 금리 인상 시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유사도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유 도입 자금 부담이 대폭 늘어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환율 변동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수출 중심의 자동차 업계는 환율이 상승하면 매출 증가 효과가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덩달아 오른다는 부담도 있다.
철강업계는 주요 회사의 경우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헤지(위험 회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제품 수출 비중이 40~50% 수준이다.
 | |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
◆경제기구 수장들 “수십년 만에 최악” “매파 파월, 경기 침체 부를 것” 비판도
세계 경제기구 수장들이 현재 상황이 수십년 만의 최악의 경제환경이라고 진단하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예상보다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례 심포지엄에 참석한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29일(현지시간) FT에 “최소한 향후 5년 동안 통화정책 결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하기 2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고피나트 부총재는 “공급망 충격의 변동성이 예전보다 더 크고, 통화정책에 더 큰 비용이 드는 환경에 처해 있다”며 “유럽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이 조성될 위험도 있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한 공급난으로 물가 급등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등 긴축에 나섰지만 공급망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FT의 설명이다.
 | |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WB) 총재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리 인상은 (당사국의) 경제 내에서 많은 마찰에 직면한다”며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다양한 저항에 부딪히며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온 공급 순풍이 역풍으로 바뀔 것으로 보이면서 세계 경제가 역사적인 변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 같다”며 “최근의 인플레이션 압력의 회복은 더 지속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최근 강도 높은 매파적 발언이 이런 우려를 더욱 키웠다.
파월 의장은 26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를 둔화시킬 정도의 높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며 “가계와 기업에도 ‘일정 부분 고통(some pain)’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 의지를 밝히면서 아시아 통화 약세가 더욱 심화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 금리차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통신은 “달러 강세로 자금이 신흥 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며 “금리차가 더욱 확대돼 아시아 통화는 추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진보인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파월 의장에 대해 “경제를 침체로 끌고 갈까 매우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워런 의원은 이날 CNN방송에 출연해 파월 의장이 ‘일정 부분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언급하며 “그가 말한 고통은 자영업자들이 높은 이자율로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며 “파월 의장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에는 이런 인플레이션 요인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도 지적했다.
워런 의원은 지난 6월 상원 은행위원회 공청회에서도 경기침체 우려를 제기하며 파월 의장에게 금리 인상을 신중히 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 상원 은행위에서 파월 의장의 연임 인준안을 표결할 때 파월 의장의 금융권 규제 완화를 이유로 상임위원 24명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박현준·우상규·이병훈·유지혜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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