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왜 하는가?
간단한 대답이 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물론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좀더 고급진, 혹은 기름진 이유도 가능합니다. 제게 있어서 캠핑은 재미있는 놀이이기도 하지만, 흐릿한 어릴적 추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바빴던 아버지와 정말 어쩌다가 한 번 했던 산행의 추억. 모닥불을 지펴서 반합에 지어먹던 설익은 밥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얼기설기 엮어서 반합걸이를 만들고, 이리저리 깎아서 가족수만큼 나무젓가락을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신통한 능력은, 비록 당신은 의도하지않으셨겠지만,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있어서는 수퍼맨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싶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다 멋진 이유 하나씩은 생각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핑곗거리가 아니라 내가 이루고픈 캠핑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캠핑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남편과 아내의 역할, 그리고 부모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해줍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땅에서 남편은 가족을 위해 집을 짓고 불을 지핍니다. 아내는 남편을 도와 먹을거리를 다듬고 잠자리를 봐주고 아이들을 보살핍니다. 성 역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역할은 바뀔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모든 게 부족한 환경에서 우리 가족의 의식주를 제 손으로 해결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책임감을 보다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더욱 더 끈끈하게 결합하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고 끌어안고 자다보면... 매일 당연하다 생각되던 가족의 의미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굳이 의식하거나 의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손에서 휴대폰과 게임기만 떼어놓으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캠핑은 남자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가족을 이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캠핑을 모든 취미 레저 활동의 종착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실제로 여러 활동을 거친후 캠핑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쉽게 말해 혼자 실컷 놀다보니 가족 생각이 난 거죠.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남자에게는 재미난 놀이가 아내에게는 단지 장소만 바뀐 가사 활동의 연장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의 가사 노동... 한두 번이야 재미라 치지만, 반복되면 일이지요.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무슨 재미가 눈에 들어올까요. 즐거울리 없겠죠. 아내에게 캠핑이 놀이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기꺼이 아내를 여왕처럼 모시세요. 가족끼리는 손해보는 것 없습니다. 남편이건 아내건, 내가 좀더 노력하면 가족이 편합니다. 그리고 (캠핑을) 하고픈 사람이 더 노력해야죠.
또한 캠핑은 새로운 커뮤니티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텐트 문을 열고 나서면 밤새 지어진 새로운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요. 새 이웃과 눈 인사를 나누며 아침을 시작하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도 갖습니다. 온라인에서도 그렇고 오프라인에서도 그렇고... 시간이 지날 수록 지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마음에 맞는 이들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아이들 또한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함께 뛰어노는 시간이 즐겁지요. 캠핑 지인이 늘어갈 수록 가족만을 위한 캠핑이 이웃과 함께 하는 캠핑으로 바뀌어갑니다. 사실, 매번 낯선 이웃과 함께 하는 캠핑보다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어울려 함께 하는 캠핑이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캠핑 가자는 가장의 말에 아내도 아이도 이렇게 물어봅니다. "누구 누구 와?"
그러나 어디에서나 다 그렇듯이 사람과의 관계는 늘 힘이 듭니다. 이는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매번 강조하죠. 사람이 좋아서 하는 캠핑은 사람 때문에 상처 받게 됩니다. 심지어 이로 인해 우리 가족이 불화를 겪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 할지라도 늘 뜻이 맞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서로를 위해서도 적당한 거리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식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댓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부담 없을 정도로만 정과 사랑을 나누면 크게 실망할 일이 없을테지요. 함께 어울리더라도 따로 또 같이... 무엇보다도 내 가족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혹 남들 눈 신경 쓰지않고, 또는 오히려 남들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기 가족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캠핑장에서 만납니다. 내가 내 가족을 소중히 대하지않는데 남이라고 그래줄까요. 괜찮지도 않은데 괜찮은 양, 허세나 가식 때문에 내 가족에게 소홀하게 된다면 캠핑을 접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아빠, 우리 텐트만 왜 이렇게 작아?" 캠핑과 장비, 불가분의 관계지요. 어쩌다 한 번 떠나는 나들이 때야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충분했지만, 일단 취미가 되어버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남의 눈 의식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결국 내 아이나 아내가 기죽을까봐라는 핑계를 대며 장비를 사들이게 됩니다. 비교할 대상이 바로 옆에 있으면 더 그러합니다. 비싼 펜션 비용과 비교를 하며 캠핑 장비에의 투자가 훨씬 경제적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지요. 가족수로 비용을 나누는 꼼수도 써봅니다. 능력 한도 내에서 장비 갖추는 거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평소보다 훨씬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된다는 것... 어쩌다 한 번 가는 여행이 아니라 피곤할 정도로 자주 가게 되니 이로 인한 비용 증가도 무시 못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젊을 때 캠핑을 하면 돈을 못 모은다는 말을 할까요.
가끔 캠핑 홀릭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프라인 활동과 더불어 온라인 활동까지 연계된 오토캠핑 커뮤니티 생활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요구합니다. 자칫 주말 여가를 위한 캠핑이 삶의 모든 것인양 주객이 전도되는 사태도 벌어지게 됩니다. 휴식이라며 떠난 캠핑이 돌아와서는 하루이틀을 그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무엇보다도 애초 가족 캠핑의 취지와는 무색하게 가장 혼자 즐기는 캠핑, 부모 둘이서만 즐기는 캠핑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친구 만나서 즐겁게 노는데 뭐가 문제냐 할지 모르지만,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좋은 추억은 횟수가 많아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행히도, 캠핑을 시작하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되면 초심을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레 갖게 됩니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지요. 이 때가 중요합니다. 신중하게 다시 한 번 되짚어보세요. 우리 가족이 캠핑을 시작한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말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횟수도 조절하고 방식도 바꿔보세요. 캠핑을 가더라도 캠핑장에만 머물러있지말고 밖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따로 정해진 답은 없지만, 얼마든지 나 스스로 답을 정할 수는 있습니다.
(친구 아들의 옛날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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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