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23일 소백산을 다녀왔습니다. (제2연화봉대피소)13

지난 주말에 소백산 대피소를 예약하고 다녀왔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산행기를 이제서야 쓰네요.

여자친구에게 대피소의 즐거움을 알려주고싶어서 저번달부터 꾸준히 꼬드겼습니다.

무거운건 다 내가 지고 올라갈게. 고기도 구워줄게.

목표는 여친과 설악산 중청 또는 소청 대피소를 가는것이지만, 처음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상대적으로 난이도도 쉽고 시설도 좋은 소백산 대피소부터 차근차근 가기로 했습니다.

이날을 위해서 니모 엘리트 럭셔리 베개도 사고, 침낭도 사고, 접이식 발포매트리스도 하나 더 구입했습니다.

청량리역 도착해서 찍은 사진.

혹시나 여자친구가 춥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옷도 여분으로 챙기다보니 배낭이 거대해졌습니다.

뻥배낭 아닙니다..

단풍구경하기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기차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습니다. 2주전부터 겨우 예약신청해서 표를 구했습니다.

희방사역이 폐역 되었기에, 단양역이나 풍기역에서 내려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버스는 자주 안오기때문에 택시타는게 속편합니다)

11시34분 누리로 기차를 타고 13시46분에 단양역에 도착했습니다. 단양에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구요.

카카오택시를 잡고 죽령휴게소로 향했습니다.

택시비는 약 2만천원 정도 나왔습니다. 택시기사님께서 배낭도 직접 트렁크에 실어주시고 운전하시며 단양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도 재밌게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단양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인것 같았어요.

몇년전에 겨울에왔을땐 휑 했던 죽령 휴게소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1층에선 특산품과 칡즙, 마즙을 팔았고 2층은 카페였습니다.

1층에서 다른사람이 마즙을 주문하는걸 봤습니다. 직접 마를 갈아서 꿀을 타주시는데, 그 퍼포먼스에 반해서 칡즙을 주문했더니 팩을 잘라서 컵에담아 주시더라구요..(...) 맛은 있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여권에 도장을 찍고 오후3시쯤 출발했습니다.

날씨 좋아서 신났어요.

군대 행군을 떠올리게 하는 오르막길을 2시간정도 걸으면 목적지가 보입니다.

천천히 올라간 편인데 1시간50분 걸렸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어서 풍경이 멋지진 않았습니다.

굽이치는 능선을 보여주고 싶었는데ㅠㅠ...

대피소에 도착해서 이름을 말하고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같이온사람들끼리 붙어잘 수 있도록, 대피소 직원분께서 임의로 자리를 미리 다 배정해놓은 상태라서, 구석자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ㅜㅜ

도착했으니 고기를 구워야죠.

대피소에서 구워먹는 고기가 제일 맛있는것 같습니다.

여자친구가 오뎅탕도 끓였습니다.

저녁밥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만..

너무 더워서 잠을 설쳤습니다. 온풍기의 설정온도가 30도로 되어있더라구요.. 설정온도를 낮출까 싶었지만 침낭을 안갖고와서 주무시는분들도 계셨기에 제맘대로 온도를 낮추기 뭐해서 그냥 뒀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피소 대부분이 더워서 잠을 설쳤던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피소 갈땐 작은 선풍기라도 들고다녀야 하나 싶어요.

다음날 아침.. 여자친구가 초췌한 상태로 나왔습니다.

남자방은 더운것 빼곤 딱히 빌런은 없었는데,

여자방은 코골이빌런, 방귀빌런, 냄새빌런들이 있었나 봅니다.

양쪽에서 스테레오로 방귀를 뀌고, 냄새나고, 낮선사람과 다닥다닥 붙어자는 좁은 잠자리가 여자친구에겐 고역이었나 봅니다. 

잠을 한숨도 못잤다고 하더라구요. (잠이 안와서 밤새 수리남을 정주행해서 다봤다고...) 

저에게 카톡도 많이 보냈던데 저는 다음날 산행을 위해 '억지로라도 자야지..' 라는 생각에 폰은 쳐다도 안봤습니다 ㅠ

여자친구는 밤새 '쉬는날에 쉬지도 못하고 내가 여기서 뭐하는건가..' 생각했다고 하더라구요.

"앞으로 이런데서 못자겠어!!"

오...맙소사...

여자친구 눈치를 보며 '왔던길로 돌아가야하나...' 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었더니, 

그래도 여기까지왔으니 정상을 찍어보자고 합니다.

휴 다행이었습니다..(?)

어젯밤에 먹다 남은 오뎅탕으로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고, 커피한잔 타 마시고 대피소에서 제일 늦게 출발했습니다.

오전 9시.. 세상은 구름속이었습니다.

도화지 뷰... 뭔가 멋진 풍경이 보이는 곳이라 전망대가 있는것일텐데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내리막, 오르막길을 1시간정도 걸으니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제1연화봉을 지나서 나오는 이 능선이 참 예쁩니다만.. 주변이 도화지뷰 였습니다. '곰탕' 이라고도 하지요.

대체 안개는 언제 개는거야.. 손이 시려우니 AI 기능을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빅스비! 소백산 날씨 알려줘!"

"삐빅- 현재 소백산의 날씨는 흐림 이며, 오후3시에 비소식이 있습니다."

?!?!?!?!

며칠전에 일기예보를 봤을땐 맑음이었는데...??

하지만 빅스비의 말과는 다르게, 정상을 앞두고 구름이 활짝 갭니다.

오후 1시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매우 화창해지면서 더운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생각했죠.

정상에서 충분히 쉬고, 천동쪽으로 하산했습니다.

오후 2시쯤.. 하산길에 어느순간 먹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3시부터라며!! ㅠㅠ

그러다가 오후2시50분쯤 천동쉼터에 도착하니 갑자기 우박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하늘에서 별사탕이 쏟아집니다...

천동쉼터에 비, 우박을 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비가 언제그칠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기에, 체념하고 비를 맞으며 천동쉼터를 나섰습니다.

갑자기 내린 비 덕분에 수량이 많아져서 계곡보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산 중턱부터 예쁜 단풍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굴은 초췌하니 가렸습니다

비인지 땀인지 알수없지만 홀딱 젖으며.. 걷고 또 걷다보니 오후 4시 20분에 천동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천동탐방지원센터 바로 지나서, 차도 옆에 데크로된 인도가 있는데 엄청 미끄럽습니다. 나자빠지고 보니 저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이 미끄러진 흔적이...

오후 4시 40분에 다리안 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와서, 손씻는데 매우 행복했습니다.

다리안에서 카카오로 택시를 불러 타고 단양 시내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만난 택시기사님도 매우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단양은 어떤게 맛있는지, 지역주민들이 자주가는 맛집들은 어디가 있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택시기사님 원픽은 고수동굴 앞에있는 매운칼국수 집이라고 합니다.)

시내에 있는 멍석갈비 입니다. 원래 돼지갈비맛집입니다만 비가와서 그런지 감자전이 환상적으로 맛있었습니다.

하산주는 동동주!! 힘들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습니다.

날샘에 비에 우박에... 별의별 고생을 다 겪은 산행이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대피소의 재미를 알려주자는 목적은 실패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희석되고 즐거운 추억만 남게되는날이 오겠죠? 그때 다시한번 꼬드겨볼 생각입니다.

PS. 

여분의 미들레이어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솜잠바에 하드쉘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보온병을 챙겨갔다면 참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컵라면 드시던분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대피소에 갈때, 더위 많이타는 체질은 미니선풍기를 챙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