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산 다닐 땐 등포란 곳이 없었는데, 막상 이 곳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는 산은 잘 안 가고 여기 글/댓글만 쓰고 있네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어서 잡설을 늘어놓을 짬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낀 걸 조금 써보려 합니다.
제 짧은 경험을 통해 보았을 때, 결론적으로 산을 좋아해야 덜 힘든 것 같습니다. 약간 산에 취해서 다닌다고 할까, 이런 맛이 좀 있어야 되는 것 같네요.
어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지리산 가지산 주황산 월출산 등 쉽지않은 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초등학생이 다니기에 쉬운 산은 아니었고 갈 때마다 어딘가 끌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지리산은 좋아했기 때문에,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밀양 천황산 같은 곳은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산들은 내키지가 않았거든요. 그리고 가기 싫었던 산에 대해서는 지금도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서 다녔던 산은 동네 뒷산과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등인데 주로 정신무장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지구력과 인내심이 필요했기 때문에 산행이 가장 좋다고 여겨서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이 산들은 제 체력에 비해 굉장히 쉽게 다녔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요, 굴암산과 북한산의 경우, 먼발치에서 자주 바라보았던 산입니다. 둘 다 동네 뒷산이고 제가 살던 곳에서 고개만 들면 보였기 때문에 자꾸 보다보니 가고싶다는 마음이 들었었죠. 멀리서 능선을 보다보면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막연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약간 고차원적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 능선을 바라보면서 저 곳에 오르는 이미지트레이닝 같은 것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래서 심리적 준비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막상 갈 때도 힘든 줄 몰랐던 것인가 싶네요.
지리산의 경우,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상징성도 크고 산세 자체도 크다보니 지리산만 가면 신이 나서 전혀 힘든 것도 몰랐었고, 내가 뭔가 된 듯한 기분에 도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큰 산을 오를 때 큰 힘을 받아서 오르기 쉽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설악산을 오를 때도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든 산을 올라본다는 도전의식이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 같네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의무적으로 오르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은 사고날 위험도 크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느낌이 안 좋은 날에 산에 가면 꼭 발목이라도 삐끗해서 돌아오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여태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몇년 전에 북한산에 조금 미쳐서 주능선을 자주 다녔는데, 어느 순간 "산은 본래 위험한 곳" 이라는 느낌이 딱 오더군요. 지각 융기로 인해 지표 위로 솟아올라 있는 지형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길을 낸 것이 산길인데, 정말 어느 순간 이 곳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서 그 이후로 한동안 산을 아예 안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산에 대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산은 오르기를 허락해달라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설악산을 처음 갈 때도 그랬고 북한산 의상능선을 처음 갈 때도 그랬고, 무언가 내 마음이 겸손해지지 않으면 산에 갈 마음조차 잘 들지 않더라고요. "저 산을 정복해야지, 저 봉우리를 밟아야지" 이런 마음을 품은 상태에서는 오르면 산이 코웃음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라도 되겠습니까" 하는 마음을 가지면 산은 그 문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산을 타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 많이 좌우한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기본적인 체력과 컨디션+산을 얕잡아보지 않는 마음+산을 좋아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잘 조화되면 산을 좀 가볍게 다닐 수 있지 않나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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