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팔용산] 봄의 단상(with 짚신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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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곰?" 하고 미도리가 또 얼굴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놀이 안 할래요?' 라고 말이야.
 그래서 너와 아기 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정말 멋져."

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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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가 말 없이 나의 품에 안길 것 같은 화창한 봄날이다.
금방이라도 동면에서 깨어난 봄날의 곰이 뛰쳐와 안길 것만 같은 포근한 봄날이다.

아기 곰을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싶은 월요일 오후..
비록 미도리는 아니지만,

봄날 곰과 같이 따뜻한 심장을 가진 그와 함께 팔용산을 찾았다.

어제는 싸락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햇살이 내리쬔다.

여느 때 처럼 돌탑길을 느린 걸음으로 터벅터벅 올랐다. 

잘 정비된 데크길 옆으로 한 사람의 소망으로 세워진 작은 돌탑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한칸 한칸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돌탑은 수 많은 소원을 받침 삼아 높이 높이 쌓여져 있다.

돌탑 군락지를 지나자, 키 작은 편백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숲 속 우거진 오솔길을 걸으며..
봄기운 머금은 한줌 햇살이 목덜미에 살풋 내려 앉는다.

나지막한 산을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땀도 나질 않는다.

 

 
나른한 오후,
아지랑이 처럼 피어 오르는 기억의 斷想

'응답하라 1994'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Smells like teen spirit'

1994년,
그 해 우리는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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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ulatto
An albino
A mosquito
My libido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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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반항하는 청춘을 상징하는 커트 코베인의 외침이 아련히 들려오는 듯 하다.

 

청춘은 무정형이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
감성 만큼이나 Libido를 자극한다.

봄날의 곰을 꿈꾸던 와타나베..

그는 절친의 자살로 절망감에 빠져 지내지만, 동시에 욕망을 품고 사는 청년이었다.
자살한 절친의 여자 친구였던 나오코와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여러 여자와 하룻밤 사랑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찬 미도리에게 마음을 주는 한편, 나오코에 대한 연민도 포기하지 못했다.

방황과 반항을 일삼던 20대의 청춘을 추억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이르렀다.

역시 그 분의 말씀처럼..
'연애학개론'은 속닥속닥 1:1로 하는 게 제격인 것 같다.

 
월요일 이지만 정상 부근 정자에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 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의 배꼽 시계도 신호를 보낸다.

양지 바른 곳에 뿌리 내린 진달래들은 어김 없이 꽃봉오리가 맺혔다.
몇 몇 성질 급한 꽃봉오리들은 홍조 띤 얼굴로 수줍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야흐로
꽃 피는 춘삼월 봄이 왔다.
 

잠시 정자에 앉아 초코바를 나눠 먹고 팔용체육관을 지나자..
아름다운 수원지의 자태가 내려다 보이는 내리막 풍경이 절경이다.

봄 햇살이 살포시 내려 앉은 호숫가에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자 은빛 물비늘이 일렁인다.

호젓한 수원지 둘레길을 휘이 한바퀴 돌았다.
숨비소리 뱉으며 물질하는 오리떼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世波에 찌든 안구와 심장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같이의 가치'

아름다운 詩가 있는 수원지 둘레길을 그와 함께 걸으며..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 난다던 어느 시인의 詩語에서 처럼..
우리는 봄이 선사하는 감동의 선율에 온 몸을 맡겼다.

성큼성큼..
그렇게 봄은 우리 가까이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