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다시 속리산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서북능선입니다. 화북에서 올라 문장대 지나 천왕봉 거쳐
법주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재미는 있는데 내동 걷기만 하는 코스라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속리산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죠. 그래서 내친 김에 기암괴봉이 많은 서북능선에 다녀왔습니다.
서북능선은 혈목재에서 시작해 묘봉까지 이어지는 12개의 크고 작은 암봉을 넘는 흥미진진한 코스입니다.
충북알프스에 속하는 구간으로 고도는 높지 않지만(묘봉, 874m) 로프, 개구멍, 사다리, 암릉 등 그야말로
박박 기어야 하는 유격코스가 펼쳐집니다.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의 호젓한 길로만 속리산을 알고 있다면
한번은 가볼만한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코스인지라 새벽 3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5시 30분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1리 마을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기상예보는 맑게 개임이었는데 내륙이어서 그런지 안개가 너무 지독하게 껴서
차 안에서 1시간 눈 좀 붙였다가 6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약 10km쯤 되는 코스로 넉넉하게 5~6시간
걸리는 코스인데 걸음을 재게 놀렸더니 4시간 40분에 끊었습니다.
일단 올록볼록한 암봉들의 비주얼은 괜찮아 보이죠? ^^(이 사진은 운흥2리로 하산해 촬영한 겁니다)
마을회관 근처에 대강 차를 대놓고 이정표를 따라 이동합니다. 아직 이 코스는 정비중인 곳이 더러 있어 이정표가
그닥 친절하진 못합니다. 묘봉까지 4.7km. 암봉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이라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안개가 이렇게 끼어 있었답니다. 모르도르에 절대반지 버리러 가는 프로도가 된 기분 ...;;
길은 3급 등산로입니다. 유심히 잘 살피지 않으면 길 잃기 십상입니다. 다행히 오늘부터 산방기간이 끝나
앞으로는 제법 흔적을 찾기 쉬울 듯 합니다.
초반부터 속도를 올렸습니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걷습니다. 중간중간 걸려 있는 산악회 리본이 얼마나 요긴했는지
상학봉까지 아직 2.2km 남았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유격훈련 구간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듬성듬성 계단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문장대~천왕봉~법주사 구간에 비해 등로정비는 허술한 편입니다.
조금씩 안개가 걷히면서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략 10여 개의 암봉을 오르내려야 합니다.
저 너머 혈목재가 보입니다. 미남봉, 매봉도 저기 어디쯤에 있겠죠.
상학봉을 1.3km 남겨놓고 본격적으로 유격구간이 시작됩니다.
만만찮은 경사가 기다리는 암릉에 로프가 걸려 있습니다. 힘주어 부여잡고 낑낑 올라갑니다.
안개가 덜 걷혀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로프는 정말 지겹게 만납니다. 붙잡고 오르고 붙잡고 내려오고의 연속입니다.
건너와서 바라본 비로봉(830m)입니다. 비로봉 오기 전에 길이 살짝 헷갈리는데 첫 로프 지나 만나는 암봉에서
왼쪽으로 가면 상모봉(772m), 오른쪽은 우회로입니다. 그런데 상모봉으로 가는 길을 못보고 우회로를 탔습니다.
우회로에서 오르다 만나는 안부에서 왼쪽길은 상모봉에서 올라오는 길, 오른쪽은 비로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비로봉으로 가기 전 "가평 이씨" 묘비가 있습니다. 이 묘비가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참고로 서북능선의 비로봉은 주능선의 비로봉과는 다릅니다.
개구멍 등장입니다. 박박 기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서북능선 가실 때는 좋은 옷, 큰 배낭 갖고 가지 마세요.
긁히고 묻히고 난리도 아닙니다. 공들여 직구했는데 집에는 차마 못들고 가겠고 이걸 어쩐다 싶을 땐 입고 오세요.
단숨에 중고나라에서 단돈 만원에 구입한 옷이 됩니다. 집에 들고 가도 떳떳합니다.
제법 넓은 석굴도 지납니다. 사람 열댓명은 앉아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석굴을 나오면 속리산 주능선이 더 가까워집니다. 앞에서부터 상학봉, 묘봉, 관음봉 그 옆으로 문장대까지 보입니다.
다시 개구멍을 박박 기어나와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데 개구멍 나오자마자 추락주의구간입니다.
허술한 로프 하나가 펜스 역할을 하는데 조심해서 게걸음으로 건넙니다.
뒤돌아본 혈목재 구간. 그새 날이 좀 개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상학봉입니다. 이제 얼마 안남았습니다. 체력은 충분한데 워낙 새벽부터 달려온지라 살짝
열량이 부족합니다. 얼른 가서 바나나라도 하나 베어물어야 겠습니다.
상학봉(862m)입니다. 내륙이라 그런지 바람이 꽤 찹니다. 여름에도 여기는 바람막이 하나 걸쳐야 되겠습니다.
물론 오전 10시 넘어 시작하는 산행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서북능선의 명물로 불리는 스핑크스 바위입니다. 뭐 비슷하게 보이긴 하네요. 어찌 보면 시츄같기도 하고..
"탐방로 없음. 우회바람"이란 표지판에서 우회해도 되고 암릉길에 자신 있으면 그냥 바위에 붙어도 됩니다.
우회하면 개구멍을 하나 더 통과해야 하고 바위에 곧장 붙으면 자신의 비만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아오 이놈의 로프. 이놈의 개구멍. 아주 그냥 이력이 나네요..;;
상학봉에서 묘봉 가는 길에 거쳐가는 사다리.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이 사다리가 앞뒤로 덜렁거려요 ㅠㅠ
신정리 갈림목까지 왔으면 이제 묘봉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봅니다.
암릉 표지판. 앞으로 약 300미터만 더 가면 묘봉 정상입니다.
상학봉에서 묘봉까지 꼴랑 1km인데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능선길이 아니라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며
로프에 개구멍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묘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날도 어지간히 갰습니다.
철사다리를 내려와 이제 계단만 오르면 바로 묘봉입니다.
묘봉에 도착했습니다. 충북 청주대 출신 산악인 고상돈 씨의 추모비가 서있습니다.
묘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문장대에서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 천왕봉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나온 암봉들. 이렇게 보면 예쁜데 막상 저걸 다 박박 기어서 넘어왔다고 생각하면 토나옵니다 ㅠㅠ
소박한 묘봉 정상비. 묘봉이라고 해서 고양이들의 서식지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입니다. 아하하하..하하...하아...;;
잠시 양갱도 뜯어먹고 열량 보충한 후에 계단을 타고 북가치로 내려옵니다. 정면에 보이는 입산통제구역으로 가면
관음봉을 지나 문장대로 가게 됩니다. 현재 통제구역입니다. 문장대에서 국공파가 눈 부릅뜨고 감시중이니 행여 가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문장대는 아니어도 관음봉까지는 통과시켜주면 좋으련만.
참고로 산을 부르는 이름 중 치(峙)는 "두 개의 마주하는 산이나 봉이 경사가 가파르게 되어 있거나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을 뜻합니다. 아마 관음봉과 묘봉 사이에 있어 지어진 이름 같습니다.
북가치에서 미타사로 내려오는 길은 비단길입니다. 힘들 게 없습니다. 이제 스틱을 빼들어도 됩니다.
엊그제 비가 꼴랑 내렸다고 물이 많이 불었습니다. 계곡물소리 들으며 쉬엄쉬엄 하산합니다.
분명히 미타사 오기 전에 묘봉 두부마을로 빠지는 길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표지판이 안보입니다. 결국 미타사까지
와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운흥2리로 내려가기 때문에 꼼짝없이 20여 분을 걸어 다시 운흥1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나다를까, 운흥2리 표지석. 망해쓰요...ㅠㅠ
운흥2리 큰길까지 나와 앞에 보이는 삼거리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꺾어서 20여 분 걸으면 다시 운흥1리로 회귀합니다.
주차해놓은 곳으로 걸어가는데 마을회관 입구에 국공 관리직원이 나와있길래 미타사 가기 전 묘봉 두부마을로 빠지는 길이
안보인다고 했더니 거기는 비정규 탐방로라 가면 안된다고 합니다. 운흥2리로만 빠지게 하기 위해 표지판을 없앴나 봅니다.
짐작이 가는 곳이 한군데 있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그곳도 산악회 리본이 많이 걸려 있던데 굳이 막아놓은 이유를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지 말라면 가지 않는 게 상책이죠. 그래봐야 2시간도 아니고 20분 차이인데.
호기심에 새벽부터 출발한 산행이었습니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음봉 지나 문장대까지 이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그랬다면 원점회귀는 물 건너 가겠죠, 앗쌀하게 법주사에 차 대놓고 택시로 운흥리까지
이동해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훨씬 수월하겠습니다. 국공 관리직원에게 물어보니 계속 막아놓을 건 아니고 위험구간만 정비
하면 다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북가치에서 관음봉~문장대 구간이 뚫리면 한 번 더 가보고 싶긴 합니다.
운흥1리에서 다시 차를 몰고 서울 집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딱 11시간 걸렸네요. 이게 하루 코스가 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참 영양가 없는 짓 같기도 하고..;;
우야튼동 가을이 오기 전까지 속리산을 다시 찾을 것 같진 않네요. 가야산 만물상을 포기하고 일부러 다녀온 것인데 그냥저냥
재미 반 심드렁 반입니다. 산행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사람도 못만나고 혼자 전세내고 산 탄게 대체 얼마만인지.
속리산은 단풍이 꽤 멋드러진 산이니 늦가을 온산에 열꽃이 필 무렵, 서북능선에 한 번 더 올라볼까 합니다.
그땐 오늘보다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골든위크 잘들 보내시고 안산 즐산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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