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버라이어티로 시작해 버라이어티로 끝난 하루에 지쳐버린 푼짱입니다. 정말 가공할만한 하루였네요.
새벽 첫비행기로 제주로 떠나 여유자적 한라산을 돌고 오겠다는 계획을 세웠더랬습니다. 전날 배낭까지 알차게
꾸려놓을 때까진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잠도 아주 푹 잤고요. 문제는 너무 푹 잤습니다. 오전 6시 25분 비행기를
예매해놨는데 일어나보니 오전 6시........................
자초지종은 생략하겠습니다. 차마 제 입으로 구구절절 내뱉기도 민망합니다. 어쨌든 갔다왔습니다. 생애 두 번째
한라산입니다. 이번엔 어리목~영실로 다녀왔습니다. 지난 연말에 백록담 직전에서 GG당한게 영 억울하긴 했지만
그냥 봤다손 치고 넘어가렵니다. 대신 어리목~영실 구간도 짧은 구간 속에 기막힌 모습을 품고 있더군요.
겨울 한라산은 어디를 가도 본전은 톡톡히 찾는 것 같습니다. 겨울산의 끝판왕. 한 번 더 반했습니다.
이날은 마침 제주에 내려와계신 바그자님과 함께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제 실수때문에 너무 수고하신 하루였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실컷 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고 서울로 귀경할 수 있었네요. 감사드립니다. 서울 오시면
산행번개 한 번 치신다고 하니 그때는 만사 제치고 꼭 함께 하겠습니다.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각설하고, 내일 출근 관계로 시간관계상 빨리빨리 사진과 함께 오늘의 버라이어티 산행기를 쭉쭉 이어나가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리목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50분쯤.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탐방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참고로 오늘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과 바그자님이 찍은 사진이 섞여 있습니다. 중간중간 바이라인으로 삽입하겠습니다.
현지에서 다 준비해둘테니 최대한 짐을 적게 갖고 오라는 바그자님의 말씀을 따라 마운틴스미스는 집에 놔두고
그레고리 Z40에 최소한의 장비만 담아서 왔습니다. 금요일에 눈이 잠깐 왔는데 그새 다 녹고 없었습니다. 제주날씨가
계속 영상이라 불안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산행 초입에서는 상고대 같은건 보기 어려웠습니다.
(photography 바그자)
작년초에 구입한 라푸마 윈드스토퍼 자켓+감마MX 팬츠를 챙겨입었습니다. 하의는 문제가 없었는데 자켓은 확실히
실패한 선택이었습니다. 한라산 바람을 경험 안해본 것도 아니건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네요. 겨울 원정산행에서 하드쉘은
쓰던 안쓰던 필수입니다. 또 한 번 비싼 수업료를 치렀습니다.(photography 바그자)
OR 미스릴라이트를 챙겨입고 나오신 바그자님. 훈남이시더군요. 넷상에서 봤을 때완 또다른 매력이 폴폴~!
사제비동산까지 오르는 동안 땀이 비오듯 쏟아져 일단 자켓을 벗고 가볍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바람도 없고
올라갈만 합니다. 한라산 바람을 얕잡아본 대가는 사제비동산부터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윈드스토퍼 자켓 벗어제끼고 R2만 입고 올랐습니다. 오늘 스패츠를 굳이 차야 될 구간은 없었지만 바지 더러워지면
또 빨래해야 되는게 귀찮아서 그냥 찼습니다 ^^;(photography 바그자)
꾸역꾸역 올라 사제비동산까지 왔습니다. 어리목이 영실에 비해 접근성은 좋은데 확실히 사제비동산에 도착하기 전에는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네요. 영실로 오르면 어프로치 끝나는 지점부터 병풍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과 대조됩니다.
상고대는 없지만 풍경은 역시 좋습니다. 구름만 덜 끼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날씨였습니다.
아 그런데 사제비동산부터 뻥 뚫린 능선길이라 바람이 미친듯이 붑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춥습니다.
특히 라푸마 윈드스토퍼 자켓이 후드가 지랄맞습니다. 좀 타이트해요. 아크처럼 헬맷을 덮을 정도로 여유있지 않다보니
후드 쓰고 걷다 보면 머리가 꽉 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바람은 잘 막아줬으나 후드때문에 감점 20점.
뒤돌아본 사제비동산. 사정없이 바람이 부는 이 길을 핸드백 매고 힐 높은 부츠 신고 오르는 당찬 아가씨도 있더군요.
오름 윗쪽에는 여전히 겨울 한라산이 보여줄 수 있는 순백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명불허전.
이미 1100 고지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구름과 눈을 맞추며 걷고 있습니다. 멋지네요.
저 멀리 백록담 남벽이 보입니다. 예전엔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으로 올라 백록담까지 가는 길이 열려있었다는데요.
지금은 휴식년제로 묶여있죠. 여기만 뚫린다면 백록담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질겁니다.
봉긋 솟은 오름 뒤로 제주바다가 보입니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잠깐 사진 찍고 다시 탐방로로 돌아가는 바그자님.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장면 같네요 ^^;;
곳곳에 눈꽃을 잔뜩 이고 얼어붙은 구상나무가 보입니다. 한바탕 눈이 오고 나면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네요.
눈과 바람이 만든 작품. 기가 막히네요. 바람의 결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남벽이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윗세오름이 멀지 않았습니다.
잠시 바람이 꺼끔해진 틈을 타 후드를 벗고 사진 한방. 오늘따라 배낭이 앙증맞아 보입니다. 별로 넣은게 없어서 ^^;;
(photography 바그자)
여차저차해서 1시간 40분만에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컵라면 사느라 20분 소요. 줄이 엄청 길었습니다.
기다렸다 먹는 라면인만큼 맛은 끝내줍니다. 국물 한방울 안남기고 다 먹었어요. 바그자님이 사오신 오메기떡과
제가 챙겨온 바나나까지 먹고 나니 그제서야 눈이 좀 초롱초롱해졌습니다. 몹시 배가 고팠거든요;; 사진도 허기에
지쳐 살짝 흔들렸....^^
배불리 먹고 다시 영실로 내려가는 길. 남벽분기점에 들렀다 가려고 했으나 통제시간에 걸려 아쉽게도 못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윗세오름 표지목에서 인증샷이나 찍었습니다. 바그자님의 다소곳한 자세와 고운 미소는 마치 새색시같...(중략)
제가 꼽은 이날의 베스트컷. 흰 여백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장면입니다.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백록담 남벽. 언젠가 백록담까지 또 올라갈 날이 있겠죠. 이렇게 보기만 해도 참 좋네요.
영실로 가는 동안 손가락이 시려서 혼났습니다. 역시 쉬었다가 다시 이동할 때는 항상 손가락이 시리네요.
계속 움직여야 손이 안시린데. 그래도 20분쯤 걸으니 다시 또 뜨끈뜨끈해졌습니다.
다시 뒤돌아본 남벽. 영실에서 올라오면 계속 남벽을 바라보면서 윗세오름까지 가기 때문에 경치는 어리목보다 좋습니다.
제주훈남 바그자님 독사진. 이날 운전하랴, 저 픽업하러 공항까지 나오랴, 길안내하랴 너무 고생많으셨습니다!
병풍바위로 가는 길에 중간중간 상고대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워낙 바람이 쎈 곳이다 보니 눈이 잘 녹질 않나 봅니다.
넘실넘실 운해를 보며 걷는 길. 구름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바람은 꽤 쎄네요.
오름 위로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있고 제 마음도 두둥실 허공에 떠있습니다.
밀가루 뒤집어쓴 영실기암. 멋있기는 참 무지하게 멋있습니다. 한참을 쳐다봤네요.
병풍바위와 어우러진 영실기암. 허락되지 않은 저 능선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마침 하늘이 열렸길래 담아본 병풍바위. 기가 막힌 풍경입니다. 겨울 한라산은 정말 보물단지입니다.
영실로 내려오는건 금방입니다. 어느새 영실매표소까지 왔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버스 타는 곳까지 다시 도보로
30분 가량 내려가야 됩니다. 이게 좀 지루하더군요. 그래도 바그자님과 알콩달콩 얘기하며 내려오니 금방이네요 ^^
운때도 좋았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하늘이 어두워지며 구름이 에워쌌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좋은 구경
다 놓칠 뻔 했습니다.
버스 타고 다시 어리목으로 와서 차 끌고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바그자님이 추천해주신 현옥식당에서
콩나물에 돼지두루치기 팍팍 볶아서 밥 한공기씩 뚝딱 비웠습니다. 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제주 가면 또 먹고 싶어요.
배불리 먹고 근처 목욕탕에서 깨끗하게 씻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이 나쁘면 끝까지 나쁜 징크스는
이번에도 저를 피해가지 않더군요. 김포공항 폭설로 인해 항공편이 줄줄이 연착 ㅠㅠ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40분 늦게
출발해서 겨우 자정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배낭 정리하고 밥 먹고 사진 셀렉하고 후기 쓰다보니 벌써 이 시간 ㅠㅠ
이제 자야겠습니다. 오전 6시에 눈 떴을 때 그냥 포기해버릴까 했었는데 다녀오길 잘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덕분에 또 한 주를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이래서 산을 끊질 못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등록안내
등록안내
0
0
바그자
장비의 중요함도 느껴지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