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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신흥사 입구 산수유나무에 가지가 휘도록 꽃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꽃 주변을 맴도는 바람에서 새콤한 봄냄새가 납니다.
푼짱입니다. 기념일이 많은 3월을 맞아 매년 떠나는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재작년 여수, 작년엔 거제, 올해는 속초로 떠났습니다.
속초, 인제, 양양쪽은 휴양림 찾느라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요. 이번에는 큰맘 먹고 세 식구가 다같이 설악산에 올라보기로 했습니다.
오색~대청봉은 언감생심, 장관과 강아지 체력을 고려해서 가볍게 울산바위에 올랐습니다. 왕복 7.6km 정도 되는 짧은 코스지만
자주 쉬면서 올라갔더니 대략 5시간쯤 걸렸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중탈하는 일 없이 울산바위 정상까지 올랐으니 다행입니다.
산행 전/후 체력보강을 빙자해 이것저것 먹부림도 실컷 부리고 나름 즐겁게 보낸 2박3일이었습니다. 숙소는 대명 델피노에서 묵었고요.
금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일요일 아침에 일찍 올라온 덕분에 정체 없이 쾌적하게 오갔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사흘간 놀고 왔답시고 다시 서울 오니까 가슴이 콱 막히네요. 또 힘내야죠 뭐.
속초에 오면 으레 한 번씩 들르는 동명항 영금정. 하도 자주 와서 이젠 뭐 볼 것도 없는데 습관처럼 이곳을 찾게 됩니다. 그냥 이렇게 탁 트인 바다만 봐도
체기가 쑥 내려가는 후련함이 있습니다.
영금정에서 바라본 설악산. 오후 느지막히 찾은 탓에 저 장대한 산맥이 실루엣처럼 아슴아슴합니다.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다 보니 꽃사진 찍을 때 빼고는 아웃포커싱 잘 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각 잡고 인물사진 찍을 때나 가끔씩.
장관도 오랜만에 시도한 서울 탈출에 꽤 신이 나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나도 크롭바디에서 탈출해서 풀프레임으로 가도 되는 건가요?! (...퍽퍽퍽!!!)
영화감독이 꿈인 강아지는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뭔가를 촬영해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래, 제발 천만감독이 되서 아빠의 노후 좀 편안하게 해다오;;
하지만, 천만야동감독은 안 된다!! ㅠㅠ
영금정 옆에 있는 속초등대전망대 직원 숙소에 심어놓은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로군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젬병이고 친구도 몇 명 없지만 생각 하나만큼은 올바르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13년을 살았습니다.
때로 이 녀석이 지난 생의 업보처럼 무겁고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쩌면 내 유일한 업적이 될 지도 모르죠. 잘 키워야 할 텐데요.
영금정 산책 마치고 중앙시장으로 이동해서 회 한 접시 먹었습니다. 지금 밀치가 한창 맛이 좋을 때입니다. 밀치는 숭어 종류인데요.
지역에 따라 가숭어로 분류하는 곳도 있고, 참숭어로 분류하는 곳이 있습니다. 뭐가 됐든 밀치와 숭어는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다른 생선입니다.
원래 숭어란 생선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살에 기름이 꽉꽉 차오릅니다. 여름숭어는 개도 안 먹지만 봄숭어는 사대부가 먼저 찾죠.
쫄깃하면서도 뱃살에는 고등어처럼 비키니 모양의 기름이 무럭무럭 올라와있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요.
셋이 모둠 중짜리(6만원) 시켜서 먹었는데 밀치를 많이 달라고 주문했더니 밀치 반, 광어/놀래미 반이 나왔네요. 딱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특별히 아는 집이 있는 건 아니라 대강 순정해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이 있는 곳에서 먹었는데요. 회 다 먹고 매운탕을 시켜서 한 숟가락 입에
넣자마자 이모 불러서 한소리 했습니다. "아니 사람이 먹는 음식에 마약을 이리 많이 풀면 어떡해요 이모!!" 매운탕, 끝장나게 맛있었습니다.
중앙시장 왔으니 씨앗호떡도 먹어줘야죠. 흔한 설탕물엿 대신 견과류가 꽉꽉 들어찬 호떡입니다. 별미네요.
반나절 잘 돌아다니다가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델피노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야경. 하룻밤 자고 나서 저길 갈 예정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가보고 안 가봤으니 22년만인가요.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가게 됐습니다.
중앙시장에서 사온 닭강정에 와인 한 잔하면서 가족여행의 첫밤을 보냈습니다. 군터록 리즐링 카비넷, 2009.
리즐링은 당도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뉘는데 카비넷은 그중에서도 당도가 세지 않은 등급입니다. 입 안이 깔끔해지는
장점이 있죠. 그래서 조금 양념이 강한 음식과 매칭해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치킨류와 의외의 궁합을 보여줍니다.
와인은 자고로 치즈, 스테이크 따위의 안주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만 깨면 소주에 버금가는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전날 어떻게든 나를 술 취하게 만들어서 산에 못갈 것 같다는 말을 먼저 꺼내게 만들려던 장관의 꼼수는 실패로 돌아가고
정확히 7시 30분부터 깨우기 시작해 아침 챙겨먹고 8시 30분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바랄 걸 바라셔야죠 장관님!!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흔들바위까지는 특별히 힘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행히 산행 초반은 장관이나 강아지나 여유만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그리 평화롭지 못합니다.
- 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허씨는 원래 인도사람이 조상이래. 알고 있었어?
- 어 알어 엄마도.
- 그럼 엄마도 인도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야?
- 음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조상이니까.
- 그럼.....우리집 다문화가정이야?
- 이 인간이 애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거야?! 어딨어 느이 아빠!! (빼애애애액)
장관의 스매싱을 피해 부리나케 뛰어가던 중 흔들바위 가기 전에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불량배를 만났습니다. 진퇴양난이로군요 ㅠㅠ
결국 배낭 안에 꼬깃꼬깃 보관해둔 소중한 행동식인 견과류를 삥 뜯기고야 맙니다. 등짝에 철사장 찍히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죠.
아직은 을씨년스럽지만 한 달쯤 뒤면 여기도 온통 녹색으로 변하겠죠. 올해 설악산 산방은 5월 15일까지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방 풀리자마자 일단 공룡부터 가보려 합니다.
흔들바위 앞에서 세 식구 기념샷. 근데 이거 진짜 흔들리긴 하나요? 아무리 힘줘도 꿈쩍도 안 하던데;;
이제 본격적으로 깔딱구간이 시작됩니다. 강아지는 그래도 꾸역꾸역 가는데 장관은 무지하게 힘들어하시네요. 덕유산 1박2일도 하신 분이
울산바위 정도에 약한 모습이라니!
울산바위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드니 우락부락한 울산바위의 근육질 몸매가 훤히 보입니다.
어라? 이 계단이 아니었는데?! 계단정비를 새로 했나 보네요. 대학생 때 왔을 때는 거의 고공잔도 수준의 엄청 가파른 철계단이었었는데.
덕분에 편하게 올랐습니다.
드디어 도착!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둘이 다녀오라고 징징대던 장관도 결국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고생많았습니다. 이게 다 된다니까요 글쎄
울산바위 뒤로 좌측부터 황철봉, 상봉, 신선봉이 보입니다. 맨 우측에 넓다란 암반지대가 성인대입니다. 화암사에서 3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워낙 정비를 잘해놔서 이제 울산바위 오르다가 가쁜 숨을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옛날엔 이딴거 없이 다들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올라갔던 것 같은데요.
정상까지 찍었으니 이제 미련없이 뒤돌아서서 신흥사로 다시 내려갑니다.
이제 또 언제 오나 울산바위. 여름에 비 많이 온 다음날, 새벽에 후딱 차 끌고 나가서 토폭 찍고 울산바위까지 오르면 딱 좋겠네요.
현재 기준 강아지가 오른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울산바위입니다. 여름방학 때 덕유산 1박2일 한 번 데려가볼까 합니다.
부디 그때까지 체력 좀 키워놔야 할 텐데요.
마치 정어리떼처럼 무리지어 한곳으로 우우어어 움직이는 듯한 낙엽더미.
시원하게 흐르는 봄기운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앳된 소녀가 계곡까지 내려와 봄물의 수면을 툭툭 건드려보고 있습니다.
생강나무입니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구분법은 어지간히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사진처럼 꽃이 가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생강나무, 산 속에 피어 있으면 십중팔구 생강나무, 수피(나무껍질)가 사포질한듯 매끈하고 회색빛이 돌면 생강나무로 보면 됩니다.
반면에 산수유는 꽃이 가지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집 주변에도 많이 핍니다. 일단 나무가 생강나무보다 크고요. 수피는 마치 고목나무처럼
거칠고 여기거지 껍질이 일어나있습니다. 익숙해지면 꽃모양만 봐도 대번에 구분할 수 있습니다. 꽃모양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신흥사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주차장으로만 가면 됩니다. 장관은 아까부터 무릎이 아프다고 툴툴대고 있습니다.
저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는군요. 총총걸음으로 따라잡습니다.
어라? 그런데 신흥사 뒷편에서 노루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청노루귀를. 이것 참, 신흥사 주변에 변산바람꽃, 노루귀가 많이 보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마주한건 처음입니다. 분홍노루귀나 흰노루귀는 흔하게 봤어도 청노루귀는 여태 못만났습니다. 북한산 부왕사지 근처에서
많이 핀다고는 하던데요. 설악산에서 보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습니다.
흰노루귀가 당연하다는듯 그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요새 날이 푹해서그런지 꽃이 완전히 열렸습니다. 아주 예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건 그냥 노루귀밭이네요. 발을 어디다 디뎌야 될지 모를 정도로 노루귀가 지천에 깔렸습니다.
청노루귀를 봤으니 어쩐지 오늘은 운수대통할 것 같습니다. 기분 좋게 만드는 새봄의 전령입니다.
신흥사 경내를 빠져나와서 바라본 울산바위. 세 식구가 모두 정상까지 오르고 뜻밖의 노루귀까지 보고 나니 몹시 흡족합니다.
두 사람 다 고생들 했으요. 이제 얼른 가서 맛난거 먹읍시다!
원래 생선찜을 먹으려고 했는데 장관이 뭣 좀 시원한걸 먹고 싶다고 해서 물회 먹으러 갔습니다. 속초 오면 자주 가는 봉포머구리집.
저는 여러 번 먹어서 좀 물리지만 장관이 먹고 싶다면 응당 모시고 가야죠. 뭐 언제 먹어도 기본은 하는 집인지라.
델피노 야경. 금요일까진 텅 비어있던 주차장이 토요일 밤이 되자 빈 자리 하나 없이 꽉꽉 들어찼습니다. 인기 좋네요, 델피노.
장관과 강아지는 애저녁에 곯아떨어졌습니다. 피곤하긴 했나 보네요. 심심해서 보케나 한장 찍어보고. 혼자놀기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일요일 아침, 식구들 자는 사이에 다시 신흥사로 차를 몰고 가는 중입니다. 원래 성인대 올라가서 일출을 볼까 했는데요. 새벽에 보니까
구름이 많아서 일출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더군요. 대신 신흥사 가서 토요일 못보고 온 변산바람꽃이나 찾아보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건 산수유입니다. 자세히 보면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꽃이 달려있죠. 수피도 거칠고 투박하고요.
신흥사 극락보전. 현판을 보면 그 절이 어떤 부처를 주불(主佛)로 모시는 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극락보전이라 쓰인 걸 보면
신흥사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절이로군요. 극락보전 대신 대웅전이 있는 절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 절입니다.
경내를 어수룩히 떠돌다가 사찰 뒷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변산바람꽃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꽃이 활짝 열리진 않았지만 청초한 아름다움은 그대로입니다.
사찰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그리 빈번하지 않아서인지 변산바람꽃이 네잎클로버마냥 아무데나 막 피어있습니다.
굳이 몸을 숨기지 않고 다른 풀들과 함께 빳빳하게 목을 세운 변산아씨가 당차보입니다.
신흥사 계곡 주변에 피어있던 올괴불나무 꽃. 이른 봄에 피기 시작해 3월 중순이면 꽃을 닫아버리는 성질 급한 녀석입니다. 지금이 거의 끝물입니다.
현호색도 등로 옆 풀밭에 무장무장 피어나고 있습니다. 곧이어 샛노란 산괴불주머니까지 올라오면 온 산에 봄빛이 무르익겠죠.
폭죽이 팡팡 터진 것마냥 노란 꽃이 화사하게 핀 산수유. 봄날 아침에 만난 반가운 소란이었습니다.
델피노에서 체크아웃하기 전, 마지막으로 울산바위 한 번 더 바라봅니다. 날이 흐려 아쉽네요. 다음을 또 기약합니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인제 시내에 들러 막국수로 아점 먹기로 했습니다. 인제에는 깃발 좀 날린다는 막국수집이 몇 군데 있습니다.
굳이 투톱을 꼽자면 서호막국수와 남북면옥입니다. 서호막국수는 예전에 가봤고 남북면옥은 이번이 첫 방문입니다. 제가 면식을 좋아해서
강원도 오면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물막국수, 메밀만두국, 돼지수육을 골고루 시켜봤습니다. 일단 돼지수육. 딱 보기에도 아주 깔끔하게 잘 삶아냈네요.
부위는 전지(앞다리)로 보입니다. 제가 꼽는 막국수집 최고의 수육은 철원의 내대막국수지만 남북면옥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적당한 양의 메밀순면(메밀 100%) 위에 오이와 무 고명이 촘촘하게 올라가 있습니다. 햇메밀을 내놓을 시기는 지나서 구수한 향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군내가 나지도 않습니다. 동치미 육수도 슴슴한 편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맛. 그 흔한 감미조차 없이 입 안에서 뚝뚝 끊기는 메밀의
거친 식감만으로 배를 채웁니다. 때로 면식(麵食)은 수행이 됩니다. 먹고 나면 왕왕 몸이 가벼워지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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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고 잘 먹다 왔습니다. 일 년 동안 베짱이처럼 근근이 버티다가 또 어디로 튈지 고민해봐야죠.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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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