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바람이 만든 찬란한 겨울꽃. 졸린 눈을 비비며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달려간 보람이 있었던 하루.

푼짱입니다. 이틀에 걸쳐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죠. 매번 대설주의보에 속아 헛걸음치다가 이번엔 제대로 맛 좀 보고 왔습니다.

겨울은 추워야, 얼음은 찍어야, 눈길은 푹푹 빠져야 제맛이죠. 오랜만에 겨울의 진미를 남김없이 흡입한 하루였습니다.

선자령은 5년 전쯤 겨울에 처음 가봤었는데요. 그땐 바람은 제법 불었는데 적설량이 얼마 되지 않아 입맛만 다시고 왔더랬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대설주의보 해제 바로 다음날에 찾았는지라 때맞춰 눈구경 실컷 하고 왔네요. 

서울에서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하는 일정이라서(그것도 평일에) 누구 같이 갈 사람 찾기도 뭐했고요. 픽업도 어렵고 중간에 

도킹도 마땅치 않아 이번에도 잠든 식구들 몰래 빠져나와 혼자 도둑산행 다녀왔습니다. 출발 전에 미리 내비로 경로탐색을 해보니

난데없이 성장간선도로 타고 가다가 광주원주고속도로를 타라더군요. 성장간선도로도 처음 듣거니와 광주원주고속도로는 뭐지?

워킹내비로 명성이 자자한 모모 회원님께 문의해보니 그게 요번에 개통된 제2영동고속도로 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집에서 대관령 휴게소까지 2시간 30분, 돌아올 때 3시간 잡고 산행시간을 4시간 예상했는데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일단 중간에

휴게소에서 아침 먹느라 30분이 지체됐고요. 폭설 바로 다음날이라 러셀이 완전치가 않더라고요. 게다가 정상 못미쳐 바람이

어찌나 쎈지 바로 10분 전에 내 앞을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조차 눈으로 뒤덮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꾸역꾸역 셀프러셀

해가며 간신히 진행했습니다. 러셀 해본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여러모로 이번 산행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았던 하루였고요. 올겨울 첫 설산 마수걸이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면서도 몹시 

행복했습니다. 박복한 인생의 살아있는 화석에게도 이런 날이 오긴 하나 봅니다.

산행거리 약 12km , 산행시간 5시간(휴식, 촬영 포함)

먼저 <라라랜드>에게 감사를. 만약 라라랜드 OST를 미리 폰에 담아가지 않았더라면, 중간에 졸음쉼터에 차 세우고 내가 이럴려고 평창까지

운전해서 왔나 자괴감이 들어 눈물 왕창 뽑았을 듯.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는데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심각한 낭만주의자, 못말리는 로맨티스트더군요. <위플래시>에서 보여준 폭력과

광기의 피튀기는 대결은 이 영화에서 꿈과 가난, 낭만과 사랑의 황홀한 연대로 완전히 뒤바뀝니다. 오프닝부터 시작된 두근거림이 엔딩까지

끊김없이 이어진 영화를 마주한게 얼마만인지 몰라요. 아름답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엠마 스톤을 바라보는 라이언 고슬링의 표정. 마음 속에만 간직했던 너와 나의 미래. 끝내 말하지 못한 고백. 수백, 수천의

감정을 모두 섞어 빚은 듯한 그 복잡하고 쓸쓸한 얼굴이라니.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고 싶은 명장면입니다. 음악도 너무 좋습니다. 운전하며

수십 번은 들었을텐데 여전히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해요. 최근에 만난 영화 중 가장 희망적이었습니다. 추천 꽝!

다시 평창으로 돌아와서,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 게 오전 8시 20분쯤 됐을 겁니다. 미리 화장실 다녀오고 장비 챙기고 하다 보니 9시에 시작했네요.

오다보니 원주, 횡성, 평창쪽은 눈이 굉장히 많이 왔던데요. 희한하게 진부쪽은 산은커녕 마을 언저리에도 눈이 거의 없더랍니다. 오대산은 고도가

높으니 정상부엔 좀 쌓였을지 몰라도 영동쪽에 비하면 아무래도 부실할 듯 합니다. 가실 예정이면 미리 한 번 알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올해 첫 폭설 소식에 양떼목장 출사나온 진사님들이 바쁘게들 올라가시더군요. 등산객도 더러 있고요. 오늘은 거의 저 혼자 전세내듯

등로 차지하고 올랐습니다. 사실 러셀해야될 상황이면 걱정이 되서 풍채 좋은 산꾼들 몇이랑 중간에 만나면 좋겠다 싶었지만 부질없었습니다;;

왼쪽길은 양떼목장 철조망 거쳐서 재동골 입구 지나 선자령 정상까지 가는 길입니다. 순하긴 한데 재미는 별로 없어요. 조망이 막혀있으니까요.

좀 힘들어도 직진하면 만나는 등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자령 뭐하러 옵니까. 빵 트인 공간에서 바람 맞으러 오는 건데 그걸 피하면 의미가 없죠.

갈림길 지나 조금 더 가면 선자령 등산로 안내판이 서있는 들머리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한 번 더 갈림길이 있는데요. 국사성황사로 가는 길,

그리고 KT송신소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KT송신소쪽으로 가는 게 볼거리가 좀 더 있는 편입니다. 등산이 목적인 분들은 대부분 이 길로 갑니다.

선자령 등산로 입구. 산악회 시그널이 말광량이 삐삐 얼굴에 난 주근깨만큼이나 덕지덕지 붙어있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간신히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만 러셀이 되어 있네요. 이정도만 되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이건 그냥 시작일 뿐.

구상나무, 잣나무, 낙엽송 가릴 것 없이 선자령에 뿌리내린 모든 식물들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눈을 짊어지고 위태롭게 서있습니다.

뉴스에서 날씨를 봤을 땐 강원 산간은 영하 13도까지 내려갈 것이라 했는데요. 온도, 고도가 표시되는 카시오 시계를 보니 현재 기온 영하 8.2도네요.

어쩐지 춥더라고요. 조금씩 오차는 있으니까 아마 체감온도는 이보다 낮았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볼때기가 시려서 힘들더랍니다;;

장갑은 OR 로드스타(Lodestar) 폴라텍 파워쉴드 글로브입니다. 스펙상으론 영하 7에서 영하 17도까지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요. 쓸데없는 소리고요.

이너장갑이랑 결합했을 때 대략 영하 7~8도 정도까진 무난합니다. 저는 스마트울 마이크로 150 이너장갑을 안에 끼고 착용했습니다. 멈춰서서 쉴 땐

좀 시리긴 한데 운행 중에는 쾌적하고 따스했습니다. 이 장갑은 제가 예전에 수령기 올린 게 있으니 찾아보시면 나올 겁니다. 처음 씨에라에서 살 땐

39달러인가 줬었는데 다른 분 대구해줄 때 보니까 29달러까지 내려가서 겔포스 두 개 연거푸 따먹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중략)

겨울 운행용 장갑으론 매우 좋습니다. OR이 의류가 구라핏이라 여러 번 물먹여서 그렇지 장갑, 모자는 확실합니다. 

바다와 마주한 목책 주변도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침 KT송신소쪽에서 내려오는 부부산객이 있길래 정상으로 가는 길이 어떠냐고 여쭤봤더니 너무 추워서 중간에 내려오고 계신 거라고 ㅠㅠ

지금도 볼때기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바람이 찬데 위로 가면 얼마나 더 춥다는 건지.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꾸역꾸역 갑니다. 중간에 동해쪽도 한 번 봐주고요. 미세먼지가 옅게 끼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날씨는 준수합니다.

반대편 양떼목장쪽의 즐비한 키큰 나무들마다 눈꽃이 예쁘게 피어있네요. 점점 기대를 품게 합니다. 추위와는 별개로.

아까참에 국사성황사쪽으로 올라왔어도 어차피 중간에 다 만납니다. 이제 선자령 정상까지 3.7km 남았습니다.

히야~! 임도 주변에 식재된 나무들마다 눈꽃이 한됫박입니다. 오늘 날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잡았네요.

영하권의 날씨에 바람마저 차니 얇은 가지마다 눈꽃이 붙어 떨어지질 않습니다. 녹을 새가 없군요.

KT송신소를 지나 진행하다 보면 왼쪽으로 선자령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면 잠깐동안 숲길을 지나는데요.

중간에 또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 오른쪽 모두 선자령으로 가는 건 맞는데 왼쪽은 동해전망대를 패스하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야

동해전망대를 경유해서 선자령으로 갑니다. 약 100m 정도 차이가 나는데 얼마 안 되는 거리니까 웬만하면 오른쪽으로 가서 전망대

한 번 보고 가시는 게 낫습니다.

바람과 영하의 기온이 빚은 작품. 쬐끄만 구상나무 위에 눈이 쌓여 그대로 얼어붙은 모양입니다.

동해전망대로 가는 길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갖고 있는 스패츠 중에서 제일 긴 롱스패츠를 챙겨가길 다행이지 이건 뭐 한 발자국만 

옆으로 잘못 디뎌도 무릎까지 쑥쑥 들어갑니다. 이틀 사이 눈이 엄청 내리긴 했나 봅니다.

반러셀 해가며 겨우겨우 동해전망대까지 왔습니다. "삐까뻔쩍 산악회"에서 나온 두 분이 먼저 당도해 계시네요.

산악회 이름 참 유쾌합니다. 전망대에서부터 선자령까지 저 두 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했습니다.

상고대도 장관이거니와 저 멀리 동해바다까지 보이는 장쾌한 조망이 제법 시원합니다. 미세먼지만 빼고.

강릉, 동해에 인접할수록 적설량은 더욱 많아 보입니다. 그냥 눈밭이네요, 이 동네는.

삐까뻔쩍 산악회의 도움을 받아 인증샷 한 장 남겼습니다. 오늘의 복장은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다해서 왔습니다. 폭설 바로 다음 날, 그것도 혼자

나선 산행이니까요. 배낭도 성동기에 단체산행 때나 꺼내쓰는 마운틴스미스 룩아웃 50을 챙겼습니다. 집어넣을 게 제법 많더라고요.

베이스레이어 상의는 브린제 긴팔, 하의는 아이스브레이커 아펙스 롱 바텀. 그 위에 상의는 아이스브레이커 아펙스 크루 롱 슬리브, 하의는 마무트

수프림 팬츠를 챙겨입었습니다. 그리고 아펙스 크루 위에 OR 캐소드 조끼, 마지막 아우터는 아크 감마MX 입니다. 곁가지로 아이스브레이커 아펙스

넥게이터, OR 스노우 비니입니다. 성동기 아니면 이런 조합은 잘 안쓰는데요. 혹시 몰라서 일단 챙겨 입어봤습니다.

감마MX 같은 경우 어지간히 체감온도가 낮은 날씨 아니면 사실 원정산행 출퇴근용으로밖에 쓰기 힘든 자켓이지만, 오늘은 아주 뽕뽑았습니다.

지퍼만 열었다 닫았다 했을 뿐,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딱 좋았습니다. 배낭 안에 챙겨간 마무트 마사오, 파타 나노에어는 꺼낼 일조차

없었네요. 쓸데없이 공간과 무게만 차지했을 뿐;;

딴건 뭐 다들 많이 쓰시는 거니까 생략하고요. 만약 울소재로 된 상의 찾고 계시면 씨에라나 기타 다른 쇼핑몰에서 아이스브레이커 아펙스 

크루(또는 집넥)는 싸게 풀릴 때 지갑 풀고 꼭 한 번 구입을 권합니다. 특별히 울소재에 민감한 피부타입 아니면 대단히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줄 겁니다. 비슷한 용도로 스마트울 NTS 250 크루도 갖고 있는데요. 훨씬 쾌적하고 따뜻합니다. 이게 저만 그런게 아니라 아이스브레이커의

모든 제품군 중에서 아펙스 라인업은 싸게 나오면 며칠 사이에 족족 다 빠집니다. 인기가 높아요. 특히 백패커들한테.

동해전망대를 내려오면 이제 오르락 내리락 숲길을 지나 새봉으로 가야 됩니다. 여기도 러셀이 되다 말다 해서 걷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일단 숲길만 빠져나오면 이제 선자령의 상징인 풍력발전기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늘(15일) 기준으로 눈이 얼마나 쌓여있냐면요. 제가 스틱을 135cm 정도로 뽑아서 사용했는데 손잡이만 남기고 몽땅 잠겼습니다.

바람이 강하다 보니 쌓이는 곳에는 계속 쌓입니다.

러셀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금세 바람이 다시 빈 구멍을 메워버립니다. 그래서 저렇게 허벅지까지 차오른 눈길을 헤치고 걸어야 했습니다.

러셀은 러셀이고 풍경은 풍경이죠. 하늘도 청명하니 참 보기 좋습니다. 이놈의 칼바람만 아니면.

분명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는데 막상 밟아보면 쑥쑥 들어간단 말이죠 ㅠㅠ

헉헉 대며 눈길 파헤치고 오르다 보니 이제 800미터 남았답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어내며 걸어야 하기에 나중에 보면 바지며 스패츠에 눈이 덕지덕지 붙어 안떨어집니다.

어제 선자령 정상 부근에서 비박하고 내려오는 백패커들인지 배낭 크기가 어마무시합니다. 바람도 장난이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밤을 견뎠을까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 직전의 평원이 나옵니다. 힘을 내야죠.

고생스러워도 이런 풍경과 일별하면 또 한 걸음 더 씩씩하게 내딛을 힘이 생깁니다. 

바람에 가지가 휘어버린 나무들. 그 옆에서 3루 주루코치마냥 나몰라라 팔만 돌리는 풍차.

근데 이 풍차들, 진짜 전기를 만들긴 하는 건가요?

어예~! 남은 거리 400미터.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ㅠㅠ

왼쪽에 커다란 선자령 정상석이 보입니다. 저기까지 가야 됩니다. 5년 전에 왔을 때랑 다를 게 없네요. 바람은 여전히 자비심이 없습니다.

멋진 상고대들. 콧물 훌쩍이며 연신 셔터만 눌러댑니다. 이미 배터리 하나는 추위를 못견디고 방전됐고 이제 두 개 남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바람의 언덕 위로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멋진 순백의 상고대. 이게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네요. 정상부라 기온이 낮고 바람이 늘상 부는 곳이니 주말까진 버텨줄런지.

콧물 훌쩍이며 사진 찍느라 잠시 정체된 틈을 타 사람들이 어느새 저만큼 다가와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바람이 엄청 심하진 않네요.

5년 전에 처음 왔을 때는 배낭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그냥 어디 지하벙커 같은데 숨고 싶었을 정도였거든요. 바람도 시절을 타나 봅니다.

사구처럼 바람이 만든 무늬가 선명한 선자령의 언덕. 보기엔 멋집니다. 막상 이 자리에 서있으면 볼때기만 얼얼할뿐 아무 생각이 안들죠.

겨우겨우 도착한 선자령 정상. 이제 고생 좀 덜해도 되겠습니다.

인증샷 찍기 전에 먼저 정상석 사진부터. 오랜만이네 선자령. 잘있었니...요?

오랜만에 왔으니 사진도 남겨야지요. 정말 수고한 하루였습니다.

쨍하게 맑은 날씨여야 푸른 동해까지 깨끗하게 보일텐데요. 미세먼지인지 스모그인지 뿌연게 껴서 어디부터 바다인지 잘 가늠이 안되는군요.

행여 풍차길 하산로가 러셀이 안 되어 있으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내려가려고 했더니 그쪽에서 올라오신 분이 길이 아주 좋다고 하네요.

그럼 더 두고볼 것도 없이 원래 계획했던 코스대로 가야죠. 

선자령 주변은 온통 눈밭입니다. 눈이 하루만 더 옴팡지게 내리면 정말 볼만하겠어요.

선자령 정상석 뒷편으로 내려오는 순환코스는 바람이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편하긴 한데 그만큼 눈이 고대로 쌓여있다는 거;;

마지막으로 풍차 언덕 한 번 봐주고요. 언제 또 오겠어요 여길. 내년 봄에나 꽃보러 올테지.

즐비한 구상나무마다 눈꽃이 한 웅큼씩 피었습니다. 보기 좋네요.

바람이 거의 들지 않으니 박지로는 최고의 포인트네요. 군데군데 아직 철수 안한 텐트가 여러 동 있는 모습입니다.

그만 찍어야지 하면서도 멋진 풍경을 보면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곤 했습니다. 나중에 편집하려면 몸만 고생인데;;

대관령 휴게소까지 5km. 서둘러 가면 눈길 감안해서 2시간 쪼금 안 걸리겠네요.

러셀해놨다고 해봤자 이정도입니다. 그냥 사람 하나 지나갈 외딴길이죠. 그래도 이 코스로 올라오면 바람과 싸울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어요.

물론 선자령 바람 맛보러 오는 이들에겐 하등 매력 없는 단점일 뿐.

바람이 들지 않으니 햇빛이 조금만 강해도 이곳의 눈은 뚝뚝 녹아 내립니다. 정상에서 2km 정도 내려오니 벌써 녹아서 고드름이 맺혔더라고요.

일렬종대로 흰 제복 입고 서서 서울촌놈 의전중인 선자령의 구상나무들. 사느라 고생이 많다!

자 이제 대관령까지 3km 남짓. 근데 눈길이라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네요;;

선자령 구간에는 자작나무 군락도 제법 있습니다. 인제군 자작나무 숲길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운치있네요.

재궁골 이정표가 몇 번 나오는데요. 재궁골로 가면 길이 좀 복잡하고요. 무조건 대관령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됩니다.

바람이 들지 않으니 감마MX가 좀 부대껴서 이 지점부터는 벗고 OR 캐소드 조끼 차림으로 계속 진행했습니다. 그래도 추운줄 모르겠더라고요.

올겨울 조끼의 매력에 눈 뜬건 정말 신의 한수. 바다 건너 오고 있을 파타 나노퍼프 조끼도 몹시 기대됩니다.

이미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주말쯤에는 아마 이 길이 더 넓어져 있겠죠.

하얀 갑옷으로 갈아입은 나즈굴 무리 사이를 지나가는 느낌. 다행히 심장이 얼어붙진 않네요..;;

이틀 동안 대략 15cm 정도는 눈이 왔나 봅니다. 습설이라 저지대 약한 바람엔 잘 날리지도 않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철조망이 보이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이 철조망은 대관령 양떼목장과 등산로의 경계선입니다. 

건너편에는 아침에 지나친 KT송신소가 보입니다.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의 조화가 좋네요.

대관령 양떼목장 전경. 겨울에도 양떼목장을 운영합니다. 봄여름에 와야 짙푸른 초원을 보기 좋지만 겨울에는 목사 안으로 자리를 옮긴

양떼들에게 사료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집 강아지도 어렸을 때 데리고 왔더니 엄청 신나하더군요. 

이제 남은 거리는 700미터. 다 왔네요. 아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너무 배가 고프거든요;; 초코바밖에 먹은게 없어서 ㅠㅠ

700미터 이정표부터는 계속 내리막 & 평지입니다. 걷기 좋아요. 눈이 많이 쌓여 푹신푹신합니다.

머슴 밥공기마냥 푸짐하게 쌓여올라간 선자령의 눈. 꼭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처럼 보이기도.

마지막 스퍼트 구간. 너무 배가 고파서 예거 모드로 스틱을 앞뒤로 휘저으며 치킹치킹 힘차게 전진합니다.

아침에 등산 시작하면서 지나친 갈림길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대관령 휴게소까진 지척이니까요. 다 왔습니다 이제.

아침에 출발할 땐 제법 눈이 많이 있었는데 그새 좀 녹아내렸군요. 아쉬워라.

마지막으로 양떼목장 이정표 앞에서 인증샷. 상의, 조끼, 바지의 색상조합이 뭔가 좀 아스트랄. 따뜻하고 편하면 장땡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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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휴게소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부랴부랴 핸들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쯤 걸릴거라 예상했는데 서울 들어와서

양재대로부터 막히기 시작하더니 강남순환 탈 때까지 아주 거북이가 따로 없었네요. 그래도 3시간 30분에 끊었으니 선방한 셈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내일까진 선자령에서 눈구경 좀 풍족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금요일 이후에는 날씨예보를 잘 살펴야 될 것 같습니다.

700 이하 저지대는 이미 눈이 녹고 있어서 주말에는 정상부에서만 제대로 눈구경하고 저지대는 별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나 그렇듯 눈꽃산행은 타이밍이죠. 폭설 이후 하루이틀 사이에 방문해야 그나마 실하게 구경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사나흘 계속

눈이 내려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는 좋은 구경 하기 힘들죠. 선자령 가실 때는 제2영동(광주원주고속도로) 타고 가는게 그래도 훨씬

쾌적하고요. 풍차길이 4~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라 새벽녘에 출발하면 사람들 밀리기 전에 후딱 보고 내려오기 좋습니다. 15일 이후에는

국립공원 산방기간도 거의 다 끝나는 시기니까 차라리 설악쪽으로 가는 게 좋은 구경거리는 더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우야튼동 올겨울 첫 마수걸이로는 만족스러운 나들이였습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산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냥이들 사진 몇 장 

투척하고 이만 물러갑니다. 즐거운 주말계획 세우시기들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리는 요새 심통꾸러기가 됐습니다. 조금만 뭐가 마음에 안들면 냉장고 위에 올라가서 사보타주의 연속이에요. 아무리 불러도 안내려옵니다 ㅠㅠ

한껏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하루종일 집사가족을 주시합니다. 언제쯤 가을이랑 친해질려는지. 

반면 가을이는 살판 났죠. 쿠리가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으면 그 틈을 놓칠세라 쿠리가 안먹고 놔둔 간식이며 사료를 싹싹 해치웁니다.

중성화 수술 이후 식탐이 더 늘어서 큰일이에요. 먹고 먹고 또 먹어요. 다이어트 사료로 바꿔놓긴 했는데 그게 소용이 없어요. 그냥 미친듯이

먹습니다 ㅠㅠ 뚱냥이로 키울 순 없는데 엉엉;;

쿠리는 지 스크래쳐 가을이한테 준게 그렇게나 억울했는지 가을이가 자리를 비우면 잽싸게 가서 드러눕습니다.

그렇게 쳐다봐도 아빠가 어떻게 해줄 게 없어. 니가 안쓰던거 준건데 이제와서 줬다 뺐는게 어딨냐고 투정부려봐야 낙장불입;;

그래도 가끔은 둘이 한데 뭉쳐서 자기도 해요. 어쩌다, 정말 가끔씩. 두 놈이 한꺼번에 제 팔을 배고 잘 때는 자다가 팔이 저릴 때가..ㅠㅠ

까짓거 좀 힘들면 어때요. 이렇게 자는 모습 옆에서 보고 있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걸요. 얼마든지 팔 내줘야죠.

어쩌다 보니 둘이 어깨를 맞대고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기도 한답니다. 가족사진 찍는 것도 아닌데;;

인물은 쿠리가 훨씬, 훠얼씬, 훠어어얼씬 낫지만 말 잘듣고 집사 잘 따르기로는 가을이가 앞서죠. 엄청 순하거든요. 쿠리는 까칠하기 이를데 없...(중략)

이놈들 때문에 어디 여행도 못가고 외식 한번 맘놓고 할 수 없고 똥치우고 사료챙기고 갖은 수발 다 드느라 쌔가 빠지지만 쿠리와 가을이가 없는

우리집은 이제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했으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그만 좀 싸우고 이것들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