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 22 [54 pic] 비밀스러운 하루, 제주 한라산(어리목~사재비동산~만세동산~윗세오름~선작지왓~영실)114

모든 여행에는 여행자가 미처 알지 못하는 비밀의 목적지가 있다. (마르틴 부버)

푼짱입니다. 지난 달에 이어 1월에 예정되어 있던 한라산을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에도 망. 날씨운이 좀처럼 받쳐주질 않네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장관 모시고 넉 달 전에 예매해뒀던 25일(수)에 떠나야 하는 일정이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부득이 취소해야 했습니다.

대신 21~22일 일정으로 한라산에 오를 예정이던 분들과 함께 하는 일정으로 갈아탔죠. 기왕이면 원래 계획했던대로 가족들과 떠나는 일정으로

진행해야 했는데 뭐 내 뜻대로 되는게 살면서 몇 개나 있나요. 그때그때 맞춰 살아야죠.

출발부터 딜레이가 걸리더니 서울 복귀 역시 가공할 딜레이가 걸리는 등 버라이어티한 1박2일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이란 게 뭐 별거 있나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내동 웃고 떠들다 오는 재미죠. 맛난 것도 실컷 먹고 백록담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어리목에서

영실까지 꿋꿋하게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지긋지긋한 도화지뷰지만 이것도 자주 보면 정든답시고 어색함이 1도 없더랍니다.

이제 2월 마지막 항공편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과연 어찌될런지. 하긴 아무렴 어때요. 뭐가 됐든 서울 떠나 콧바람 쐬고 오면 그걸로 되는걸.

참고로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한라산에 눈이 옴팡지게 내렸습니다. 월요일 오전까지 내리고 그친다는데 아마 화요일부터는 꽤 볼만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계획 있으신 분들은 이번주를 놓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산행기는 날씨가 워낙 꾸리꾸리해 사진도 꾸리꾸리합니다. 감안하고 스크롤하세요.

김포 출발부터 딜레이가 걸려 20분 여 기다렸다가 올라탄 제주행 비행기. 이러거나 저러거나 주린 배는 채워야죠. 예약해둔 게하 들어가기 전에

자매국수 노형동 지점에 들러 한 그릇씩 비우고 갑니다. 근데 여기 좀 거시기합니다. 고명으로 올려내놓는 돼지고기는 근사한데 면발, 육수는

기대 이하. 일부러 여기까지 일행 모시고 간 제가 뻘쭘해서 혼났습니다 ㅠㅠ 제주에서 고기국수 드실 분들은 사전정보 좀 단디 챙기셔야할 듯.

이번 제주 한라산 여행에 함께 올라탄 용자들. 그리미님, 수지장이님, 힐라리온님. 작년 봄 대덕산 이후 정말 오랜만에 넷이 뭉쳤네요.

게하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랑 순대 포장해와서 넷이 막걸리 한 병 말끔히 비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입가심 수준이었어...

한라산은 당일치기로만 이용해오다가 이번에 처음 게하에 묵는 일정으로 경험해봤는데요. 우리가 묵었던 게하만 그런건지 어쩐건지

꽤 괜찮더군요. 숙박시설도 그정도면 가격대비 리즈너블하고 아침에 계란, 빵, 치즈, 커피가 무한제공되는게 특히 좋았습니다.

얼마나 좋았냐면 체크아웃하고 사진 찍는 와중에도 수지님이 여태 눈을 감고 커피맛을 음미하고 있....(중략)

한라산에 눈이 오면 여러가지로 골치 아픕니다. 일단 성판악쪽 516도로, 영실쪽 1100도로 모두 통제대상에 들어가죠.

아침에 게하에서 나와 택시를 잡는데 멈춰서는 기사님마다 족족 1100도로쪽으론 체인 없이 못가신다는군요. 한참 고민하면서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 타고 가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택시가 일단 한번 가보자기에 용케 어리목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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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목 버스정류장에서 5분이나 올라왔을까, 가다서나 레이어링의 핵지존 힐라리온님이 벌써부터 배낭을 풀어헤칩니다 ㅠㅠ

아, 왜 어리목으로 갔냐고 물으신다면 이미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성판악 사무소에 전화걸어서 확인을 했거든요. 국공 직원이

말하길 강풍 때문에 백록담 통제가 오늘내일 풀릴 것 같지 않다길래 바로 접고 어리목~영실로 코스 바꿔서 떠난 길이었습니다.

제가 단디 말씀드리는데요. 올라가다 보면 통제 풀리겠지, 이거 한라산에선 안통합니다. 출발 전에 미리 전화부터 넣어보고

그날 코스 정하세요. 안 그러면 볼거 하나 없는 성판악~진달래~성판악 왕복해야 됩니다. 관음사도 마찬가지.

눈 쌓인 백록담을 보기로 한 원래 계획은 틀어졌지만 다들 보무도 당당하게 어리목 매표소를 향해 성큼성큼 올라갑니다.

1100도로에 눈이 많이 와서 스노우타이어 안 낀 택시는 어리목 매표소까지 올라가질 못하더랍니다.

어리목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15분 여 걸어 어리목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알파FL 입고 출정길에 나선 힐라리온님. 아크 치폴티 색깔이 이렇게 예뻤나 싶을 만큼 흰 눈과 환상궁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잉어비늘 무늬 버프가 에러 ㅠㅠ 임모탄 같아...What a day! What a lovely day!!

실로 백만년만의 외출. 작년 대덕산 이후 바깥출입을 전혀 안했던 수지장이님이 함께 했습니다. 요샌 인스타에서 깃발 좀 날리고 계시죠.

인천/부평/부천 지역을 주름잡는 먹스타그래머로 거듭 나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패 없는 짬뽕어사, 인천의 고든 램지로

공포의 적란운을 몰고 다닌다고 하더랍니다. 하지만 언제나 #소통해요 태그는 잊지 않는 울트라 센스남! 그럼 잘먹고 나서 혹평은 하지 말아야지..ㅠㅠ

본 투더 심술쟁이 그리미님. 옆구리 가득 심술보가 출렁출렁. 오늘은 나랑 같은 웨콤 패밀리룩이니까 봐드리겠어요...

하늘도 흐리고 땅도 질척하고 여러모로 박복한 하루입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마냥 신난 그리미님, 나는 동조하지 않았다는 듯 살짝 거리 둔 힐라리온님, 이 사진 인스타에 올려도 나는 좋아요 안누르겠다는 각오의 수지님.

구형 쓸 땐 몰랐는데 Z40 신형은 캥거루 주머니가 수납이 꽤 되더라고요?! 어깨, 허리 벨트만 신경써서 만들어주면 최고의 배낭인데. 짭..

1300 고지를 넘어서자 설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하늘은 도화지여도 이 재미로 꾸역꾸역 가는 거죠.

얽히고 설킨 숲의 겨울. 어리목~영실은 성판악~백록담과는 또다른 매력이 살아 숨쉬죠.

토요일밤에 고지대엔 눈이 제법 왔나 봅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꽃이 장대하군요.

사재비동산 지나 만세동산으로 가는 길. 이런 날씨에도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하늘은 좀처럼 열리질 않고 터벅터벅 윗세오름까지 땅만 보고 걷습니다.

베타AR, 알파FL 브라더. 아크를 대체할 하드쉘은 많지만 아크를 상회하는 만족도를 안겨주는 하드쉘은 드물죠.

흩날리는 눈발이 하필이면 콧물처럼 매달린 수지님이 1500고지에서 인증샷 한방 담고 갑니다.

도움닫기가 필요한 듯 안쓰러운 미소의 그리미님, 졸지에 거인족이 된 수지님, 힐라님.

싸락눈을 맞으면서도 모델의 숙명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힐라님. 

구름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못가본 분들을 이끌고 들어가본 만세동산 전망대.

머리위에 월E를 얹고 있는 것 같은 그리미님 독사진. 하지만 느낌상 웬지 설날을 맞아 큰절 올려야 될 것 같은 포즈 ㅠㅠ

가다서다 레이어링의 핵지존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뽐내며 약간의 틈이라도 나면 바로 배낭부터 열고 옷 갈아입기 바쁜 할라님은 추울 겨를이 없다는...

이게 얼마만의 산행인가요. 먹스타그램만 챙기지 마시고 산행도 꼬박꼬박 챙겨주시길. 근데 "잘 보고 갑니다. 서로 소통해요!"라고 맞팔 신청한

팔로어에게 "제가 왜요?"라고 묻는건 왜죠?! #소통해요 태그가 뻘쭘한.....당신은 츤데레!!

어쩌다 가끔씩 하늘이 열리며 시야가 맑아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일렬횡대로 서보니까 나 되게 키 커보인다....

밤새 잔뜩 얼어붙은 구상나무에게 괜찮냐고 말을 거는 듯한 힐라리온님.

눈보라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윗세오름 데크길. 

평온해보이지만 실상은 바람이 꽤 심했습니다. 머리 속엔 온통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는 윗세오름 사발면 생각 뿐.

바람 때문에 눈발이 수시로 날리고 안개처럼 뷰파인더를 뿌옇게 만들어 버립니다.

겨우겨우 추위와 바람과 싸워가며 도착한 윗세오름 대피소. 당연하다시피 통제된 남벽을 확인하곤 사발면이라도 맘 편히 들이키기로 합니다

근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간신히 자리 구해서 엉덩짝만 걸친 채 후르룩 한 그릇씩 비워습니다.

저랑 힐라님이 먼저 들어가서 대강의 상황을 살피는 동안 그리미님과 수지장이님이 대피소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발면 한 그릇씩 비우고 영실로 내려가기 전 윗세오름 인증샷 한 방. 왼쪽부터 푼짱, 수지장이, 그리미, 힐라리온.

선작지왓 지날 때 눈바람와 구름이 어찌나 훼방을 놓던지 뷰파인더가 선명하게 뽑아내지 못하더라는 .ㅠㅠ

이건 그리미님 카메라로 담아준 푼짱. 천하의 아귀 혓바닥도 아니고 목이 왜일케 길어 ㅠㅠ 

한겨울 선작지왓~영실의 설경은 두 말하면 입 아프죠. 꼭 백록담만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아쉬움에 점점 뒤쳐지는 발걸음을 다잡고 앞선 이들을 총총 따라잡습니다.

이 혹독한 바람에도 포즈는 곧잘 취해준 착한 사람들. 그리미님의 피난민 패킹노하우가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이 구간만 지나면 마지막 병풍바위 전망대까지 금방입니다.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선 병풍바위 보기 참 힘드네요.

병풍바위 전망대 지나 계속 영실매표소쪽으로 이동합니다. 이 길이 제일 쉽죠.

영실쪽도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이대로 블리자드와 헤어지기 아쉽다는 듯 그리미님이 방실방실 웃고 있습니다.

어리목에서 출발한지 5시간 걸려 도착한 영실 날머리. 모두들 고생스러운 하루였네요.

영실에서 다시 시내로 나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실 날머리에서 겨울에만 운행하는 택시를 타고 영실 버스정류장까지 가거나

아니면 택시기사님과 잘 속닥속닥해서 시내까지 나가는 방법. 전자는 무리가 없는데 후자는 겨울에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습니다.

영실 날머리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운행하는 택시는 인원수에 상관없이 편도 1만원입니다. 카드 가능.

Today's Photogenic. 영실에서 버스 타고 오라3동까지 왔다가 다시 모살물이 있는 연동까지 이동중인 그리미님.

빛이 제대로 먹어서 희부윰하게 잘 나왔네요.

제주에서 시도한 짝퉁 애비로드. 인원도 부족, 찍사의 기민함 부족. 모델들의 열정도 턱없이 부족! 창피함은 만땅 ㅠㅠ

아라3동에서 도청사거리 지나 연동에 있는 모살물까지 1.6km를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알콜동정남들은 구색갖추기로 맥주 시켜서 잔만 부딪치고 

저만 홀로 한라산 오리지널 한 병 시켜서 깔끔하게 비웠습니다.

모살물 모둠회 大. 광어, 우럭, 도미가 꼼꼼하게 섞여서 나옵니다. 이거 하나에 맥주, 소주 각 1병씩 먹고도 총비용이 리즈너블하게 나왔습니다. 

서울에선 꿈도 못꿀 가격이죠. 제가 지인들 모살물 데리고 와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만족스럽게 밑반찬까지 싹싹 비우고 가시더군요. 

특히 마지막 미역지리에서 다들 떡실신. 국물이 진짜 시원합니다.

그렇게 먹고도 모자라 도보로 이동가능한 올레국수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쉽게도 올레국수가 쉬는 날이라 바로 옆집인 효심국수에서 

고기국수 한 그릇씩 더 먹었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는 자매국수 WIN, 전반적인 만족도는 효심국수 WIN! 

다음엔 올레국수 꼭 먹어봐야겠습니다.

제주 올 때도 고생하더니 갈 때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다시 비행기가 딜레이되어 20시 25분 비행기가 21시 55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눈은 그쳤지만 바람이 여전히 강해 김포행 비행기가 수시로 지연되더군요. 하마트면 결항 떠서 집에 못갈 뻔했습니다 ㅠㅠ

- 헤이! 진에어 돈 두 댓! 마이 소울 이즈 화이트아웃...

돌아오는 비행편을 따로 예약한 저는 그나마 시간맞춰 서울로 복귀했지만 그리미님, 힐라님, 수지님 일행은 21시 55분에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고생 좀 하셨을 겁니다. 김포공항 도착하자마자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뛰어 마지막 전철에 올라탔다는 힐라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원했던 푸른 하늘과 흰 눈의 마리아주같은 멋진 풍경을 보진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1박 2일 제주여행이 몹시 즐거웠습니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되며, 모든 참된 삶은 만남에 있다"는 마르틴 부버의 잠언처럼, 오늘의 만남 덕분에 내일의 행복을 담보받고 왔습니다.

도화지뷰, 그딴거 아무려면 어때요. 서로 얼굴 마주보고 웃고 떠든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 그걸로 족할뿐. 

오랜만에 함께 한 수지님, 든든한 짝패 그리미님, 올모스트 젠틀맨 힐라님. 눈보라와 강풍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여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