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pic] 17. 2. 21 어느 날 문득, 계방산(운두령~1492봉~계방산 정상~주목삼거리~노동계곡~이승복생가~윗삼거리~아랫삼거리)67

눈이 녹으면 꽃이 핍니다. 어둠이 내리면 바람을 타고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가듯, 그렇게 겨울이 갑니다.

푼짱입니다. 모처럼 홀홀단신으로 산에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럽게 통으로 빈 하루를 뭘 할까 고민하다가 여기저기 산악회를

검색해보기 시작합니다. 산방기간이 시작됐는지라 별로 구미가 당기는 게 없더군요. 가볼만 하다 싶으면 모두 만석.

포기하고 이삿짐이나 부지런히 싸자 싶었는데 마침 밤늦게 빈 좌석이 하나 나왔습니다. 빛의 속도로 예약부터 하고 전결로

처리했다가 한 대 맞을거 두 대 맞을 일 만들지 말고 조근조근 얘기 끝에 하루 먼 길 허락받고야 맙니다.

계방산에 다녀왔습니다. 2년 전쯤 다녀오고 까맣게 잊고 있던 곳이었죠. 딱히 눈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전날 내린 눈이

그래도 좀 남아있으면 볼만하겠다 싶어 선택했습니다. 요행히 박복한 제 인생에도 가끔은 샛복이 터지기도 하죠. 대설까진

아니어도 남한에서 높이로는 다섯 번째 가는 큰산답게 뽀얀 설경으로 치장하고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한결 쾌적하게 다녀온 하루였습니다.

산행거리 약 11km, 산행시간 4시간(휴식, 촬영 포함)

서울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한 버스가 운두령 휴게소에 도착한 게 오전 9시 50분. 휴게소 한 번 들른 거 치고는 꽤 양호하게 왔습니다.

가입은 애저녁에 해놨지만 이번 계방산 오면서 처음 이용해본 안내산악회였는데요. 일단 버스가 36인승이라 좌석의 앞뒤 간격이 넓어

아주 쾌적하더군요. 발받침까지 있었으면 금상첨화였겠는데. 산행대장도 여타의 저가 안내산악회마냥 안내도 한 장씩 던져주고 끝나

는 게 아니라 설명도 차근히 해주시고 시간 또한 넉넉하게 배정해줬습니다. 함께 다녀온 이용자들도 등력이 좋아 한 사람도 지각 없이

제 시간에 날머리에 도착해 예정시간보다 10분 일찍 서울로 귀경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쏙 듭니다.

운두령휴게소에서 계방산 등산로 진입하는 계단길. 하늘이 청명한 게 오늘 잘하면 시원한 조망 좀 원없이 구경할 것 같습니다.

오대산 자락답게 눈은 아직 넘칠만큼 쌓여 있습니다. 중간중간 흙길이 드러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눈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계방산까지 앞으로 2.4km. 계방산 역시 태백산만큼이나 들이는 공에 비해 높이를 꽁으로 먹는 산중의 하나입니다. 

1시간 30분 남짓만 오르면 계방산 정상(1,577m)입니다. 

나중에 보니 오늘 계방산에 온 산악회 버스가 5대 정도밖에 안되더랍니다. 성수기 주말에는 운두령부터 아랫삼거리까지 도로 한면을

차지하고 줄줄이 비엔나처럼 늘어선 산악회 버스만 보다가 이런 한적한 풍경을 보니 왠지 생경스럽더군요.

순토 코어 크래쉬. 지난번 오케이몰 1+1 행사 때 구입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산행 시작 전에 미리 들머리의 고도, 해면기압을 맞춰놓으면

그 뒤부턴 오차범위 1~30m 내외로 잘 맞습니다. 현재 표지목상 고도가 1,187m. 순토 고도계 역시 1,187m로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을 꽁으로 먹는다곤 해도 가파른 된비알은 각오해야 됩니다. 뭐 그래도 계방산 깔딱 정도면 비교적 짧고 

준수한 편입니다. 30분 정도만 허벅지에 힘 꽉꽉 주고 오르면 금방 1492봉에 다다릅니다.

오오 전통의 호프힐 배낭을 맨 어르신이 한 분 계시군요. 저도 호프힐에서 만든 옷 몇 개 갖고 있죠. 옛날 옷들이긴 하지만

지금도 가끔 입고 다닙니다. 힐텍스 원단도 썩 나쁘진 않았는데 말이죠.

자자 힘내서 빡빡 올라야 합니다. 오르다 쉬면 엔진 꺼져서 더 힘듭니다. 천천히라도 좋으니 한 걸음씩 계속 전진하는 게 중요하죠.

빈한한 겨울나무 사이로 저 멀리 계방산 정상이 보입니다. 멀어 보이지만 일단 1492봉까지만 가면 그 뒤론 금방입니다.

1492봉이 가까워질수록 녹다가 얼어버린 상고대가 만발해있습니다. 나무들마다 투명한 바늘로 꿴 옷을 한 겹씩 껴입고 있는 모습.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겨울의 민낯. 한참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1492봉 전망대에서 인증샷부터. 사진 우측에 비죽 솟은 봉우리가 설악산입니다. 끝청 뒤에 대청이 보입니다. 거기서 왼쪽으로 조금 더 오면 귀때기까지.

시정이 좋아 화천 화악산, 영주 소백산까지 보였던 날이지만 사진엔 제대로 담기질 않더랍니다. 미세먼지 탓도 있고 단렌즈의 한계이기도 하죠.

2년 전에 왔을 땐 오늘보다 대기가 깨끗해 훨씬 선명하게 보였더랬죠.

아크 페이즈 SV, 파타 나노퍼프 베스트 조합으로 거의 전 구간을 소화했습니다. 오전까진 바람이 좀 불었다는데 운두령에 도착하니 그새 잦아들었습니다.

계방산 정상에서도 바람이 거의 없어 장갑마저 벗은 채 밥을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래저래 날은 잘 잡았습니다.

근데 얘, 좀 웃으면 안 되겠니? 왜 카메라만 들이대면 영정사진 모드로 역변하는거니...그러면서 왜 남한텐 사진기 들이대며 웃으라고 하는거야?!

파노라마도 한 장. 사진 좌측 오대산에서 뻗어나와 계방산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계방산은 오대산국립공원 자락에 속합니다.

대간 범주에 놓고 보면 한강기맥에 속하는 산입니다. 한강기맥은 오대산에서 양수리까지 약 155km 이어진 산줄기를 가리킵니다.

음양의 조화가 멋지군요. 겨울산에 꼭 눈이 한됫박 쌓여야만 멋진 건 아니란걸 오늘 계방산에서 새삼 깨닫고 갑니다.

이제 1492봉에서 내려와 앞에 보이는 계방산 정상으로 갈 차례입니다. 점점 기온이 푹해지고 있으니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야겠습니다.

역광 속에서 더욱 투명하게 빛나는 상고대. 몇 시간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이 되어 뚝뚝 흘러내릴테죠.

뒤돌아본 1492봉 전망대. 멋진 풍경에 다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계방산까지 앞으로 1km. 멀어보이지만 금방입니다. 얕은 오르막 한 고비만 넘기면 됩니다.

좀처럼 사진이 늘지 않는 아마추어가 왜 이렇게 향상이 더딜까 고민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프로 사진작가가 이렇게 말했죠.

"매번 똑같은 사진만 찍으니까 사진이 늘지 않는 것"이라고. 요즘 들어 저도 사진이란 취미에 있어 약간의 정체기를 겪고 있는데요. 

프로 사진작가의 팩트체크가 따끔하게 와닿곤 합니다. 산만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더 다양한 환경, 피사체를 다뤄야 거기서부터

공부가 되고 자극이 오는데 그렇질 못하니까요. 

물론 그 과정을 건너뛰기 위해 값비싼 장비로 메우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지점에선 반드시 감성이란 벽과 만나게 되죠.

좋네요, 오늘 계방산. 오랜만에 느끼는 호젓함과 즐거움입니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달라지는 하늘색도 그저 아름답기만 합니다.

지대가 높아지니 아직 건사해있는 상고대도 몇몇 보입니다.

가지마다 눈을 수북히 이고 있으면 더 멋지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볼만 합니다.

이제 계방산 정상이 코앞입니다. 얼른 가서 인증부터 해야죠. 

짜잔~! 블약 100대 명산 2번째 인증. 지난번 무등산에 이어 계방산까지 왔습니다. 아직 98개가 남았습니다......;;

꽉 다문 입술에 담긴 굳은 의지로 앞으로 3년 안에 끝내겠다는!!  

블약 100대 명산 인증 끝내고 사람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인 인증샷도 한 방 남깁니다.

계방산 정상부터 윗삼거리까지는 노페 스팁 아이스 파워쉴드를 입고 진행했습니다. 지난번 태백산에서도 맛을 봤지만

노페의 이 옷은 정말 잘나왔습니다. 파워쉴드 프로 원단의 파타 나이프 블레이드를 보유중임에도 스팁 아이스 영입 이후로는

선뜻 손이 가질 않습니다. 안감이 얇은 기모로 되어 있어 활용성이 나이프보다 떨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외려 겨울에는

스팁 아이스가 훨씬 더 유용하게 쓰입니다. 색상도 똑같은 네이비라 나이프를 팔아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중...;;

하의는 피엘 비다프로를 입고 갔는데 오늘 같은 날씨였다면 캡트라우저 입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겁니다. 혹시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어 오랜만에 왁스까지 박박 먹여서 입고 왔더니 정오부턴 날이 급격하게 풀리더라고요. 그래도 딱히 덥거나

하지 않고 쾌적하게 입고 다녔습니다. 신축성이 없어서 애를 먹는다는 리뷰도 많지만 무릎 위치만 맞으면 그 어떤 피엘

바지도 생각처럼 불편하지 않습니다. 비다프로의 경우 늦가을, 초겨울, 초봄에 입기 좋습니다.

사진 앞쪽 가운데 하얀 봉우리가 1492봉 . 중앙 맨 뒤의 봉긋 솟은 게 화천 화악산입니다. 화악산 왼쪽에 아스라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명지산일 겁니다.

인증샷도 찍었겠다, 밥도 챙겨먹었겠다. 이제 주목군락지 방면으로 이동해서 차량이 대기중인 아랫삼거리로 이동합니다.

용평스키장이 있는 발왕산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사진 맨 좌측 하얀 설원이 보이는 곳은 선자령이 되겠군요.

사진 중앙 좌측에 오대산 상왕봉, 비로봉과 호령봉이 보이고, 중앙 우측으로는 동대산과 노인봉이 보입니다.

아 내려가기 싫어라. 이 포근한 겨울산에 그냥 해질 때까지 마냥 앉아서 커피나 마시고 싶은.

그래도 가야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동차야영장 방면으로 내려가면 이승복 생가 지나 아랫삼거리로 이어집니다.

기온이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급격하게 올라서 주목군락지엔 눈이 매달려 있질 않더군요. 그래도 멋진건 매한가지.

주목군락지에서 내려오는 길만 좀 까칠하고 그 다음부턴 비단길입니다. 설렁설렁 엉덩이 좌우로 씰룩거리며 내려가기 좋습니다.

같은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오신 분 같군요. 유난히 혼자 오신 분이 많은 산악회였습니다. 저부터 그랬으니까.

걷기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런 길은 하루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어라? 이제 보니 아침에 본 호프힐 배낭 어르신과 두 분이 동행이셨네요! 

스토커처럼 두 분을 쫄래쫄래 쫓아가는 동안 어느새 제2야영장까지 왔습니다.

 2년 전인가, 수지장이님이랑 처음 계방산 왔을 때도 여기서 배낭정리도 할 겸 잠시 쉬어갔었는데.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여태 녹지도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눈가에 졸음이 가득. 

어떤 짐승이 냇가 얼음 위에 발자국을 내놨나 했더니만....

네 녀석이었구나! 근처 하우스 매점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사람손을 제대로 탔는지 낯선 사람을 봐도 그냥 다가와서 

목부터 긁어달라고 들이밉니다. 오구오구 귀여워라

아랫삼거리 주차장에 도착한 게 오후 1시 50분. 짐 정리하고 뭐하고 해도 출발시간까지 너무 여유가 많이 남아서 하는 수 없이 

하우스 매점에 가서 막걸리 잔술(1,000원)이나 한잔 하려고 했는데요. 혼자 안주도 없이 막걸리 마시는 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여기저기서 우리 테이블에 와서 안주라도 좀 먹으면서 마시라고 권하시더라고요. 염치불구하고 합석해서 안주 좀 축냈습니다;;

천안에서 오셨다는 어르신 한 분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직접 담그셨다는 약주를 한 사발 따라주셨는데 아아 어르신 술에

뭘 타신 거에요....먹을 땐 말짱했는데 버스 타자마자 기절해서 일어나니까 경기도 광주 휴게소더라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ㅎㅎ

덕분에 오며가며 잠도 푹 자고 산행도 즐겁게 한 하루였습니다. 그 약주 주문가능하면 페트병으로 사다가 밤마다 홀짝거리고 

싶네요. 설탕 한 스푼도 안넣으셨다는데 재료 자체의 감미가 묘하게 우러나면서 어찌나 입에 착착 붙던지.

서울 사당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 집에 배낭 내려놓은 시간이 오후 6시. 세상에 이런 산행만 있다면 일주일에 다섯 번은 가겠습니다.

너무너무 알찬 하루였습니다. 늘상 원정산행 갔다하면 자정 다 되서 집에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눈치보며 들어가다가 이런 날도 있으니 

장관부터 좋아하네요. 그래 기분이다, 오늘 밥 하지마! 장관이랑 강아지 데리고 집 근처 단골 양꼬치집 가서 한뀀 푸지게 했습니다.

뜻밖의 원정산행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풍요로운 설경을 보고 와서 기분이 한껏 업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리프레쉬 제대로 한 하루.

수~목에 강원산간 눈소식이 있으니 주말에 가시는 분은 더 좋은 풍경 보고 오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올해 마지막 눈소식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 주 잘 마무리하시고 즐거운 주말계획 세워보시기들 바랍니다.

끝으로 냥이들 근황 전해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냥감님...오늘은 또 어디서 낮술 거하게 자시고 와서 대짜로 누워 주무시는 거에요.....네에?!

가을이는 쿠리와 달리 적응기간이 무척 짧았습니다. 쿠리가 낯선 우리집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석 달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이녀석은 케이지에서 풀어놓은지 불과 이틀 만에(!) 원래 살던 제 집처럼 종횡무진하며 집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요즘도 간식 한 그릇 푸지게 해치우고 나면 작은방 침대에 누워 달콤한 오침을 즐깁니다. 어쩔 땐 좀 얄밉기까지 합니다;;

Q) 크리넥스 봉다리 안에 고양이가 들어가면?

A) 정답! 쿠리넥스!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에요.....웃으세요 제발..ㅠㅠ

서로 못쫓아내서 안달인 두 마리 말썽냥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서로 등을 맞대고 사이좋게 잠들기도 한답니다.

얼핏 보면 대판 싸운 뒤에 부부 같기도 한데 집사 입장에선 이마저도 눈물나게 고마운거 있죠.

얘들아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버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