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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라에서 출발한 이후 3일동안 그나마 아침에 해뜰때는 맑은 느낌이지만 오전으로 접어들면 이내 뿌연 먼지들로 하늘이 뒤덮히고, 오후에는 여지없이 흐리거나 소낙비가 지나가고...
푸르디 푸른 하늘을 내일은 볼수 있을까?
손을 조금만 뻗으면 저만치의 하얀 봉우리들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감마저 사라져버린 맑고 투명한 풍경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EBC까지 가는 내내 이런 하늘이라면 너무 아쉬울텐데 내가 시기를 잘못 잡은걸까?
그냥 내려갔다가 겨울에 다시올까?
잠들기 전에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뭐 날이 안좋으면 안좋은대로 즐겁게 다니고 다음에 또오면 되지 하는 이상한 결말을 스스로 내버리고는 금새 골아떨어집니다.
보통은 트레킹 초반에, 고도를 갑자기 올릴경우 밤잠 설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새벽알람때까지 깨지 않은 걸 보면 꿀잠을 잔듯 합니다.
여행중에는 대부분 알람시간이 5시30분(혹은 6시)로 맞춰두는데 이는 지역에 따라 일출을 볼수 있는 시간 기준입니다.
침낭에서 기어나와 기대반 걱정반으로 롯지창문을 여니...
우와!!!
어제 제가 걸어오면서 담아왔던 모습과는 전혀다른, 완전히 다른, 같은곳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 마을에서 제일 높은곳(제가 찾은 롯지 중에)에 있는 롯지라서 저멀리 남체(Namche)방면과, 앞으로 가야할 페리체(Pheriche) 방면이 티끌하나없이 깨끗하게 제 작은 눈을 덮어버립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카메라와 물통, 쵸코바만 챙겨서 롯지 뒤의 언덕으로 마구 내달립니다.
얼마나 이쁠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근데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고도도 그렇고 말이 언덕이지 가파른 작은 산 하나 오르는 수준이라 짐이 없음에도 숨을 헐떡이지만 튼튼한 두 다리와 심장은 자기들만 믿으라며 풀파워를 내며 주인님을 안심시킵니다.
금빛으로 물든 캉테가(Kangtega)가 롯지 창문에 반사되고 있습니다.
어제 잠시동안만 볼수 있었던 아마다블람(Amadablam) 너머로 붉게 이글거리며 고도를 올리고 있는 태양의 누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물들입니다.
아직 할배얼굴은 없군요? ㅎㅎ
어제까지 구름과 먼지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캉테가(Kangtega 6,779m)와 탐세르쿠(Thamserku 6,608m)가 완전한 그 첫 모습을 제게 보여줍니다.
남체에서 근사한 일출을 볼수 있는 꽁데(Kongde Ri, Kwangde Ri 6,187m))지만 비와 안개때문에 그 형체조차 가늠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태를 드디어 보게 됩니다.
강한 바람 때문에 탐세르쿠(Thamserku 6,608m) 정상부근에서 마치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 능선위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소백산 칼바람만 제대로 맞아도 뽈때기가 아픈데 도대체 얼마나 아플런지...
캉테가(Kangtega)는 아직 완전한 말의 모습이 아닙니다만 등줄기의 실루엣은 어느정도 말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캉테가(Kangtega)는 말과 말안장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고쿄트렉쪽에서 볼 경우 영락없이 앞발을 들고 있는 말의 모습입니다.
고쿄트렉에서 바라보면 이런모습입니다(한 5편 정도에서 볼듯..)
앞발을 든 말 모습 같나요?
계곡을 둘러싸던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고 따뜻한 온기의 아침볕이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남체에서도 날만 좋다면 꽁데 리(Kongde Ri 6187m)가 빨갛게 물드는 아침풍경을 볼수 있는데 저는 운이 좋질 못했나봅니다.
가운데 쯤의 평탄한 능선에 빛이 막 들아오고 있는데 여기가 바로 텡보체의 곰빠(사원)가 있는 곳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침볕이 가장 먼저 드는 평지에다 사원을 지은거 같네요.
붉은 빛을 머금은 경작지들이 마치 가죽표면 같은 질감으로 느껴집니다.
좀 거칠거칠한 곳은 풀그레인이고 맨들맨들한 곳은 누벅 정도겠네요. ㅎㅎ
다보체(Taboche 6,582m) 뒤로는 마치 파란색 유리판을 깔아놓은 듯 합니다.
어제 저녁의 그 쓸데없는 걱정은 순전히 에너지낭비였습니다.
내가 이렬려고 여기 왔다! 하는 자충감이 듭니다!
루클라에 오는 것 만으로도 3일을 허비하게 만들고, 아침나절 잠깐 맑다가 이내 찌뿌둥하거나 흐린하늘만 내내 보다보니 뭔가 마음속의 큰 공백을 메꾸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이 아름다운 모습들을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다 담으려니 한없이 작은 제 그릇이 아주 그냥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피크부분만 금색으로 반짝이던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도 어느새 전체적으로 하얀색을 띠며 빛나기 시작합니다.
저멀리 언덕배기에는 키작은 관목과 풀들이 미처 벗어던지지 못한 겨울옷 덕분에 붉은 빛으로 물들었고 늘어선 케른(케언:Cairn, Carn 이후 케른)도 길다란 아침그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가야할 길이 저만치 앞에 보입니다.
아침도 먹어야하고, 배낭도 꾸려야하고...
그냥 홀몸으로 이대로 저 길을 따라 가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길옆으로는 케른들이 늘어서 있는데 케른은 원시형태의 돌무더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로 이정표, 추모, 천문, 기념, 업적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단순한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형태를 비롯해 정교하게 돌을 가공하고 세공한 예술품의 형태까지 다양합니다.
이곳 히말라야에서는 아무래도 피크등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로 이들에 대한 추모의 목적으로 많이 만들어집니다.
이와는 달리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케른의 경우엔 작은 불탑에 더 까까운 형태와 목적을 가지고 주로 신성시 되는 곳이나 산자락, 언덕 등에 자리합니다.
무의 공간에 파란 잉크를 붓고,
그 위에 하얀 물감으로 칠하고,
그 위에 밤색 페인트로 물들였다!
온종일 이렇게 빈둥빈둥 놀고만 싶지만 오늘도 가야할 길이 있고, 만나야할 산이 있고, 이루어야 할 꿈이 있으므로...
이 강하고도 짧았던 멋진 순간을 뒤로하고 롯지로 돌아와 아침을 먹습니다.
아직 태양이 충분히 고도를 높이지 않은 탓에 붉그스름한 빛으로 타르쵸가 물들어 있네요.
그 뒤로는 캉테가(Kangtega)와 탐세르쿠(Thamserku).
89년이면... 중3때군요...
저도 본가가 마산인데 이름만으로도 향수가 느껴집니다.
내고향 남쪽바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늘은 두글라(Dughla)까지만 가기로 정한 후 발걸음도 가볍게~ 길을 나섭니다.
맑은 하늘아래 펼쳐지는 순백의 고봉들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이 청량감이 느껴지는 바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강한 기대감과 설레임에 무거운 배낭마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같은 봉우리라도 바라보는 방향과 고도,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므로 이렇게 길을 걸어가다 문득 돌아보면 조금 전의 그 봉우리는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봉우리로 눈에 비춰지기도 합니다 .
눕체(Nuptse)연봉과 로체(Lhotse), 에베레스트(Everest)가 한눈에 보입니다 라고 말해봤자 너무 쬐그마해서 잘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만...
뭐 그래도 참고삼아 적어보면...(왼쪽부터)
Nuptse Nup II 7,742m
Nuptse Nup 7,784m
Nuptse 7,864m
Nuptse Nup II 7,827m
Nuptse Shar I 7,804m
Nuptse Shar II 7,776m
Sagarmatha/Everest 8,848m
Nuptse Shar III 7,695m
Lhotse 8,516m
Lhotse Middle 8,410m
Lhotse Shar 8,382m
에드먼드 힐러리가 1963년에 설립한 학교라는군요.
아시다시피 힐러리는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오른 인물입니다.
쿰부 지역의 경우 엄홍길님도 학교설립을 하고 있고, 국내의 여러 단체에서도 교육시설이나 도서관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저도 한번 참여해 볼 생각은... 있습니다!
아직까진 연초록 숲이 종종 눈에 띄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절벽의 한 면에 불경?을 새겨넣고 화려한 색으로 탱화를 그려놨습니다.
아마 숭유억불 정책을 펴기 전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산천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을거 같습니다.
아침에서 오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어제와는 달리 시계도 좋고 하늘도 깨끗한 파랑색입니다만 흙먼지는 여전히 풀풀 날립니다.
앞서 길게 나열했던 눕체(Nuptse) 연봉들 입니다.
에베레스트(Everest)는 이제 가려져서 안보이는 거 같습니다.
캉테가(Kangtega)인데 뾰족하게 솟은 부분이 사실은 더 낮은 부분입니다.
그 옆의 완만한 능선을 가진 봉우리가 주봉(6,779m)이고 뾰족한 부분은 6685(뒤져봐도 단지 해발로만 표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입니다.
6080 6077입니다.
숫자로 부르니 뭔가 기분이 참 묘합니다.
이 멋진 봉우리들이 이름조차 없다니...
탐세르쿠(Thamserku)입니다.
아침에는 잘 보이지 않던 몸체의 아름다운 무늬들이 이젠 많이 선명해지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새하얀 능선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예쁜 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좌로부터 6080 6077 캉테가 6685 입니다.
수목한계선에 거의 다다라서인지 이제는 나무는 사라지고 키작은 관목이나 풀, 이끼류만 펼쳐집니다.
저멀리 보이는 돌담들은 야크방목을 위한 임시목장입니다.
하얀색 붓으로 두텁게 덧칠한 것 같은 만년설이 역광으로 빛날때는 청록색 빛을 띠는데, 가끔씩 유난히 반짝일때는 마치 눈속에 에메랄드가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입니다.
할배얼굴은 아직 없습니다.ㅎㅎ
눕체(Nuptse)와 로체(Lhotse)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이 구름들이 정말 멋진 장면을 연출해줍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을 떠받치고 있는 아랫부분에는 거대한 산사태의 흔적이 회색빛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멀리 산 아랫자락에 페리체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임자콜라(Imja Khola:강)가 흐르고 있네요.
전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이 물은 정수하지않고 마시면 안됩니다.
세균은 없지만 석회석 및 미세한 돌부스러기들이 워낙 많아 신장에 결석이 생기기도 하니 목마르다고 강물 마구 마시는 건 절대 금물!
임자콜라(Imja Chola) 강줄기 너머로 로부체(Lobuche 6,119m)가 보입니다.
이제 로부체(Lobuche) 언저리까지 진행한 다음에 오른쪽으로 꺽으면 바로 고락쉡(Gorakshep 5140m)입니다.
그러고보니 1차 목적지가 벌써 코앞입니다.
남체와 EBC구간에서 제일 큰 마을인 페리체(Pheriche)입니다.
각종 의료시설(이라곤 하지만 전문적이진 않음)과 편의시설들이 있고 여기서 추꿍방면으로 다녀올수도 있습니다.
페리체(Pheriche)마을 뒤의 언덕(이라고는 하나 뒷산)에 올라보면 경치가 정말 기가 막혀서 꼭 다녀오라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는데... 아아...
까먹어 버렸습니다.
롯지도 꽤 많이 있고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곳들도 많은데 여기서부터는 이전과는 달리 야크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수량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작은 내 형태로 여기저기 물이 흐르고 있는데 사진찍느라 여기저기 다니다 퐁당 빠졌습니다. ㅎㅎ
다행히 내부가 푹 젖진 않았는데 가죽 갈라진데가 많아 축축한 느낌이 들어 신발을 벗어보니 아유.. 냄새가...
안젖은 걸 확인했지만 양말을 갈아신고 얼른 신발을 봉인했습니다.
깨끗한 롯지를 골라 점심으로 티베탄브레드(그냥 밀빵)로 배를 채우고 마을 가운데 있는 위령탑?을 살펴보니...
한국분이 있네요...
그분들의 영혼은 이곳 못다이룬 꿈의 정원에서 한없이 평화로운 안식을 취하고 있겠죠...
오후로 접어드는데도 어제와는 달리 날이 사뭇 좋습니다.
저멀리 아마다블람(Amadablam)의 거대한 몸에 새겨진 할배얼굴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저와 마눌은 할배얼굴로 땅땅땅!
캉테가(Kangtega) 탐세르쿠(Thamserku)쪽은 역광인데다 구름들이 살포시 내려앉기 시작해서인지 아침의 그 쨍한 모습은 아니네요.
이젠 수목한계선을 완전히 벗어나 관목들도 많이 사라지고 이끼나 메마른 풀들이 누렇게 대지를 덮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가 기억상실로 빼먹어버린 지인추천의 언덕이 바로 저 능선입니다.
낮은 능선 뒤로는 아마다블람(Amadablam)과 할배얼굴!
로부체(Lobuche)뒤로 회색구름들이 하늘을 덮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아래지역에서와는 달리 걱정이 안되는 이유가 이 고도에서, 이 기온이라면 비는 절대 아니고 눈이나 우박일 확률이 아주 높으니... 눈 내리면 땡뀨!
구름에 쌓여 긴가민가하지만 다보체(Taboche)로 보입니다.
이젠 회색구름이 산들을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파란하늘 아래의 온전한 모습들도 예쁘지만 또 이렇게 회색빛 구름옷을 입은 모습도 참 예쁘죠.
아마다블람(Amadablam)쪽은 그래도 아직 파란 하늘이지만 할배얼굴이 서서히 구름에 가려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면도라도 하실것 처럼 얼굴에 크림을 잔뜩 발라놓은 거 같습니다.ㅎㅎ
로부체(Lobuche)는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구름에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춰버립니다.
때마침 두글라(Dughla)에도 도착했고 여기서 고락쉡(Gorakshep)까지 가봐야 큰 의미도 없고해서 그냥 두글라(Dughla)에 원래 계획대로 머뭅니다.
두글라(Dughla)엔 한두개의 롯지들만 덩그러니 있는 아담한 곳인데 고도가 4620m로 꽤 높은 편이라 고락쉡(Gorakshep 5140m)에 바로가기보다는 고도적응을 위해 쉬어가는 곳으로 많이 머뭅니다.
저는 랑탕이나 안나푸르나쪽을 포함해 고산병 징후가 계속 없었지만 팡보체(Pangboche 3930m)와의 고도차가 690m나 되다보니 혹시나 머리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새벽에 제 코고는 소리에 스스로 시끄러워서 일어날 정도로 꿀잠 잤습니다.
알람에 맞춰진 5시30에 침낭에서 기어나와보니 지금까지의 아침기온과는 달리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집니다.
어제 머문 팡조체(Pangboche)에서는 아침에 반팔에 잠바하나만 걸쳐도 충분했는데 오늘 그렇게 입고나가면 입돌아갈거 같더군요.
여벌의 플리스를 속에 껴 입으니 그제야 따땃하니 포근하니 덜덜거렸던 떨림이 멈춥니다.
자..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러 나가볼까~
어제와는 또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보여줄까...
롯지문을 여는 순간...
입이 떡!
언제봐도 거대하고 웅장한 아마다블람(Amadablam)입니다.
아마다블람은 EBC트렉에서 아침에 볼땐 항상 역광이라서 붉게 봉우리가 물든 모습을 보는게 불가능합니다.
계절적으로 오후에도 맑은날이 지속되는 때엔 그나마 해질녘 벌겋게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지금 계절에선 거의 불가능하군요...
일정내내 오후엔 흐린 날의 연속이었으니...
새로운 태양의 빛줄기는 다보체(Taboche)와 6376을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이면서 이 낯선 방문자의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다보체(Taboche)와 6376(참 적응하기 힘든 작명법입니다)이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그리고 그 부드러운 곡선 속에 숨겨진 험하고 우둘투둘한 작은 톱니들이 마치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지 말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위에서 실제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조그만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는 듯 합니다.
하늘을 향해 갑자기 솟아오른 듯한 촐라체(Cholache 5440m)가 발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간과 마주합니다.
어떤 그림나 사진, 글로도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마음속에 이는 감정들을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거벽에 새겨진 하나하나의 선과 면들이 만들어 낸 그 기나긴 세월속 이야기를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실어 속삭이는 듯 합니다.
참고로 촐라체(Cholatse)는 박범신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로부체(Lobuche)도 새로운 날의 빛을 잔뜩 머금으며 빛나고, 그 아래 언덕을 뒤덮은 마른 풀잎들은 마치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거 같습니다.
캉테가(Kangtega)와 6685, 그리고 6080과 6077도 다른 봉우리에 뒤질세라 그 아름다운 모습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마치 화성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상충경들과 동떨어진 느낌마저 줍니다.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듯한 저 바위들은 실제 가까이에서 보면 정말 집채만한 크기입니다.
다보체(Taboche)의 아래에는 빙하가 흐르고 있는데 시간만 된다면 저 빙하면과 경계를 이루는 언덕까지 가보고 싶네요.
돌아올때 두글라에서 하루 묵으며 꼭 가보자고 다짐합니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이젠 다보체(Taboche)의 몸체 그리고 임자콜라에 드리워진 그림자들도 조금씩 지워나갑니다.
아침에 해뜰때와 저녁에 해질때는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태양의 고도에 따라 그 빛이 아주 다이나믹하고 빠르게 변해가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붉게 빛나던 다보체(Taboche)도 금새 하얀옷으로 갈아입어버립니다.
로부체(Lobuche)도 하얀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마른풀잎의 붉은 카펫은 여전히 강렬한 색으로 남아있습니다.
두글라(Dughla)에서 고락쉡(Gorakshep)까지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이젠 풍경만 멋지다면 며칠정도 할애해서 돌아다닐 예정이라 천천히 아침을 먹고 EBC트렉의 마지막 마을(이라기보단 롯지촌)로 향합니다.
두글라(Dughla)전경입니다.
롯지건물 몇개가 다이지만...
참고로 저는 롯지 뒷편의 타르쵸가 반짝이는 곳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등정용베이스캠프가 많다보니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추모하는 케른들을 자주 볼수 있습니다.
로부체(Lobuche) 아래로 난 사잇길로 가면 이젠 정말 신들의 정원을 먼발치에서 볼수 있게 되는데 걸을수록 그 정원의 풍경은 손에 잡힐듯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 신들의 정원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이, 길게 늘어선 케른에 하나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그토록 오르고 싶어했던 이 위대한 자연의 품 속에서, 그 못다이룬 소망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하늘높이 하늘높이 올라갑니다.
다보체(Taboche)와 촐라체(cholatse)가 파란 하늘 아래서 가끔씩 뒤돌아보는 저를 배웅해줍니다.
Malanphulan, 5820, 6195, 6467, 5799의 모습들입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의 육중한 몸체에 가려져 높은곳이 아니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다블람(Amadablam)을 순광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로부체(Lobuche)가 손에 잡힐듯 한 거리 같은데도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네요.
다보체(Taboche)가 한눈에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는 케른에 잠든 넋들이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영혼과 영론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선에 수많은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낍니다.
작은 언덕에 가려져 있던 로부체(Lobuche)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루클라에서 시작해 여기까지는 신들의 정원 입구에서 정문 앞까지 온 것에 해당하는데, 이곳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신들의 정원 안으로 그 첫발을 내딛는게 되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로부체(Lobuche 6119) 옆으로 푸모리(Pumori 7161m)와 링트렌(Lingtren 6697m), 쿰부체(Khumbutse 6640m)가 신들의 정원에 막 발을 들여놓은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육중한 몸체의 푸모리(Pumori)와 하얀 설벽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링트렌(Lingtren)은 아마도 EBC에 머무는 내내 바라볼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EBC의 한쪽면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손에 잡힐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수 있죠.
정면의 쿰부체(Khumbutse 6640) 아래에 바로 EBC가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정작 EBC에서는 에베레스트를 볼수 없다는...(정확히는 끄트머리 보일락말락?)
푸모리(Pumori)단독사진입니다.
언젠가 집에 걸린 달력을 보면서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 봉우리를 직접 눈으로, 게다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다니!
예의 그 달력 고이고이 남겨둘껄...
로부체(Lobuche)의 완전한 한면입니다.
저 아래에는 베이스캠프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아랫자락이 붉은 카펫으로 뒤덮혀 있지만 EBC에서 며칠 머물다 내려갈때는 흰옷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이렇게 말이죠.(이건 4부? 정도 되겠네요.)
촐라체(Cholatse)도 두글라에서 바라보던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푸모리(Pumori), 링트렌(Lingtren), 눕체(Nuptse)연봉들이 정면으로 펼쳐지며 왜 이곳이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지 실감케 만듭니다.
신들의 정원에 다가갈수록 사방이 웅장한 봉우리들에 둘러싸이는데 이는 마치 거대한 신들의 원탁회의장 테이블로 꼼지락거리며 기어가고 있는 개미가 된 그런 느낌입니다.
아마도 하늘에서 이 장면을 본다면 영락없을듯...
푸모리(Pumori)아래의 저 능선에 서보면 경치가 참 좋을 것 같아서 미리미리 머릿속으로 둘러볼 곳들을 기억해둡니다.
로부체마을(이라기보다는 역시 롯지촌)입니다.
파란하늘아래 푸모리(Pumori)가 하얀 얼굴을 까꿍하면서 내밀고 있네요.
눕체연봉들이 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요며칠간의 오후와는 달리 구름이 생겨도 워낙 대기가 깨끗하고 바람도 거세서인지 희끄무레한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멋진 장면들을 연출해줍니다.
저 위의 작은 형제봉들에게 이름을 선사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I II III 혹은 숫자로 붙인 고도가 아닌 정말 근사한 이름으로...
야크들도 어마어마한 물자들을 싣고서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원정시즌(보통은 4,5월)이 아니지만 고도적응 및 전진캠프 설치를 위해 몇달 머무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디 원정대의 물자일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한국의 동아대학교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왔었습니다.
구름한점 없던 푸모리(Pumori)와 EBC쪽도 어느새 하얀 구름들이 쪽빛 하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눕체(Nuptse)의 정상쪽으론 아예 구름들이 덮어버렸네요.
마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분화구 같은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구름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저 둥그스름한 능선에서의 바람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조차 안됩니다.
아주 짧은 시간안에 차란 하늘은 사라져버리고 하얀구름은 이윽고 잿빛으로 바뀝니다.
아...
눈이라도 펑펑 내린다면 내일아침엔 얼마나 예쁠까...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영석님이 동료분들을 위해 만든 추모동판인듯 보입니다.
1993년이면 제가 막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을 때군요.
함께 같은 꿈을 쫒으며 동고동락했던 분들과 이제는 편안히 잠드시길...
뭐라도 내릴것 같은 날씨입니다.
게다가 갑자기 바람도 미친듯이 불어오기 시작하는데 EBC트렉의 마지막 롯지가 있는 고락쉡(Gorakshep)이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지척인 거리라는 걸 알기에 천천히 경치구경하면서 똥바람에 맞서며 한발한발 걸어갑니다.
하늘이 파랗고 쨍하게 맑을 때와는 다르게 아주 색다른 흑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구름이 더 껴버리면 회색 도화지가 되버리겠지만... 딱 지금 정도만 유지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조금 전 맑았을 때 본 푸모리(Pumori)보다 어째 더 예쁜 모습입니다.
회색구름까지는 좋긴한데... 이젠 날이 어두워지네요.
너무 탱자탱자 놀면서 걸어가다보니 해가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푸모리(Pumori)와 링트렌(Lingtren)이 어느새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푸모리(Pumori)아래로 깔려있는 붉은 카펫이 온통 흑백인 세상에서 더욱 돋보이며 그 색을 발합니다.
만일 날이 좋았다면 붉은 석양빛이 이토록 아름다운 신들의 정원을 더욱 예쁘게 색칠 했을텐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시시각각변하는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그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며칠 이곳에 머물기로 마음먹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 지역에서 자주 볼수 있는 야생조류인데 카메라를 마구 들이대도 도망가기는 커녕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나중엔 아예 무시해버리는 참 괘씸한 놈입니다.
꿩종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새는 역시 새박사 일기당만님께서?
드디어 이번 EBC트레킹의 1차 목적지인 고락쉡(Gorakshep 5140m)이 보입니다.
여기에서는 칼라파타르(Kala Patthar 5,644m), 혹은 칼라파타르 호수(5,550m) 그리고 EBC(5,364m)를 비롯해 고락셉(Gorakshep)근처의 수많은 언덕에도 올라볼 수 있으며, 어디에 오르든 최고의 풍경들을 선사해 줍니다.
트래커들이 거의 없었던 지금까지의 롯지들과는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북적북적합니다.
장기간 머물고 있는 듯한 트래커들도 여럿 보이고, 바깥의 강풍을 피해 들어온 가이드와 포터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저마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습니다.
머무는 사람이 몇 없다면 모를까 일행(보통 가이드나 포터가 서로의 고용주를 소개해 합석하는 경우가 많음)이 없는 저로선 저 속에 끼어들기는 힘들것 같아 그냥 조용히 방에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어제, 오늘 제게 보여줬던 여러 풍경들을 되새겨보고, 내일은 어디어디를 가면 예쁜 풍경을 볼수 있을까 지도와 나침반으로 대충 가늠도 해보고, 전체일정을 어떻게 잡고 어디에다 할애할까 트레킹코스도 고민해보고...
그렇게 정리의 시간을 가지다보니 어느새 해는 져버립니다.
저녁을 먹기위해 다이닝룸으로 갔더니 창밖엔 눈이 쏟아지고 있네요.
함박눈처럼 큰 눈송이가 나풀나풀 날리는게 아니라 거의 좁쌀만한 싸래기눈이 강풍에 떠밀려 아주 그냥 롯지창문에 싸다구를 날릴 기세로 부딪칩니다.
밖에서 만일 이런 날을 만난다고 생각해보면... 하아...
정말 '비박'다운 비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깨달을 듯...
다이닝룸에선 눈이 창문에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에 아랑곳 없이 여러 트래커들이 난롯가에 모여 시끌벅적한데 묘하게 뭔가 두 소리들이 잘 어우러집니다.
소란스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간단히 저녁과 차 한잔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침낭속에 몸을 파묻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빠트리지 않고 적어가는 일기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언 손 녹여가며 다 적은 후 스르륵 감기는 눈을 그냥 내버려 둡니다.
내일은...
얼마나 나를 더 놀라게 할 세상이 펼쳐질까...
-끝-
다소 긴글과 사진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서 EBC, 고쿄, 지리바지르 트레킹 2편을 마칩니다.
오래전 기억과, 기록용 다이어리와, 지도를 참고로 지명을 적은 관계로 혹시나 틀린 부분 지적해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적다보니 오탈자나 맞춤법이 안맞는게 아주 많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3부 예고]
칼라파타르에서의 일출, 그리고 신들의 정원 하룻동안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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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사진과 설명글 정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