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21 돌고 돌고 돌아 제천 금수산에 다녀온 이야기16

일요일날 원주에서 결혼식이 있어, 토요일에 겸사겸사 가보고 싶었던 제천 금수산으로 향했습니다.

금수산 정상부는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지만, 능강계곡 너머 학봉능선 쪽은 국립공원 영역 바깥에 해당합니다.

이 곳은 매년 이맘때 쯤 개최되는 금수산 산악마라톤 코스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제가 다녀온 바로 다음날이 바로 마라톤 대회날이었습니다.

국립공원에서 아슬하게 벗어난 곳이다보니 접근성이라던지 코스라던지 등로정비상태라던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하지만 청풍호와 월악산을 바라보는 뷰는 끝내줬습니다 ^^

이 날은 유독 본의 아니게 알바를 많이 했습니다.

늦잠부터 시작해서, 덜 막히는 평택제천 고속도로를 탔으면 되었을 것을 굳이 영동을 타는 바람에 이동시간부터 마구마구 늘어졌지요.

네비에 2시간 찍혔는데 휴게소에서 쉰 시간까지 포함해서 3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ㅠㅠ

원래는 더 크게 "동산"까지 아우르는 코스로 계획했는데, 들머리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작은동산"만 찍고 금수산으로 돌았습니다. 근데 이름이 특이하네요.. 동산인데 800m가 넘어요 ㅋㅋ

사실 지도 가운데 보이는 약물탕폭포 쪽으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크게 삥 돈 것도 실수였어요.... 이 때문에 무지 고생을...

세 군데의 노란별 표식은 현재 이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라진 등로로 들어선 바람에 고생했던 포인트들입니다;;

제 주력 배낭인 그라나이트기어 크라운60L 입니다.

60리터 롤탑 배낭인데 코듀라 원단이라 내구성이 뛰어나고 어느정도 방수도 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디테일을 줄여서 무게가 무지 가볍습니다.. 저는 등판도 떼어내고 발포매트를 등판처럼 쓰기 때문에 배낭 무게는 700g 정도 됩니다.

불필요하지 않은 디테일까지 줄여 놓은 바람에 좀 불편하지만 ㅎㅎ 그래도 배낭의 핵심인 허리벨트 어깨벨트는 비교적 튼실한 편입니다.

'무게는 민감하게 따지더라도 부피에는 구애 받지 말자' 주의라, 가볍고 부피 큰 녀석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챙겨서 산행할 수 있습니다.

요번에는 일요일 원주 결혼식 일정도 있고 해서 백패킹으로 다녀왔습니다. 비비색으로 조용히 구석에서 하룻밤 잠만 자고 비화식 먹고 내려올 계획입니다. 버너도 안 챙깁니다....

초반에는 참 기분 좋은 부드러운 숲길로 시작합니다.

원래 여기서 학현아름마을 쪽으로 꺾어서 약물탕폭포를 거쳐 내려가야 하는데, 길도 좋고 해서 작은동산까지 쭉쭉 진행합니다.

모래고개가 두 군데에요... 네이버지도를 불신했는데 정말 두군데더군요;; (여기서 네이버지도를 약간 믿게 된게 화근이었죠....)

작은동산 정상부는 조망이 좋다고 봤던 것 같은데 영 아닙니다.... 고민을 시작합니다;;

약물탕폭포쪽으로 내려가서 서둘러 금수산으로 넘어가느냐... 청풍호 조망을 좀 해보느냐...

이까지 왔고 길도 좋고 기분도 좋은데 일단 계속 진행합니다. 쫌 가니까 조망점이 있네요. 잠시 후에 넘어가야 할 금수산 학봉능선입니다.

바로 가운데 보이는 큰 직벽이 과거에 클라이밍 사고가 잦았다던 저승봉(현재는 미인봉)입니다.

청풍호 줄기와 월악산이 보입니다. 가운데 쯤 살짝 왼쪽으로 솟아 있는 곳이 영봉이겠네요.

여기서 렘노스 과일치즈와 빵으로 점심요기를 합니다.

가다보니 생수를 무지막지하게 쌓아놨네요. 내일 산악마라톤 보급지점인가봅니다.

이 언저리에서 학현마을에 가까운 능강마을출발점 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뭔가 기분이 찜찜합니다.

마라톤코스와 주 등산로는 외솔봉 쪽으로 해서 교리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 같은데, 그렇게 되면 너무 돌아가서 금수산에 못 갈 듯 싶어 소로로 꺾는데... 작은 크기의 누운 나무로 갈림길이 막혀 있습니다.

이게 길을 막아논건지 안막아논건지 긴가민가 합니다... 그래도 과거엔 있던 길이고, 삥 돌아가면 시간이 모자라니 꺾어들어가는데...

길이 가관입니다 ㅠㅠ 풀과 나무는 한참이나 자라나서 반팔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를 긁어대고... 거미줄은 또 어찌나 많은지 ㅠㅠ

아 망할 네이버 지도 욕을 하는 찰나에 머리에 뭔가 큰게 퍽! 걸립니다.....

헐....... 완전 완성된 동그란 호랑거미줄에 그대로 헤딩을 했어요 ㅠㅠㅠㅠㅠ

으악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거미줄을 막 걷어내면서 마구잡이로 욕을 뿜다가 땅을 보니

손바닥 반만한 호랑거미녀석이 황급히 기어서 도망가네요;;

'하긴... 거미줄에 걸린 나는 찜찜하고 기분 나쁘지만 네놈 입장에서는 공들여 지은 집이 한방에 박살난 날벼락을 맞은 셈인데;;;'

뭔가 짠한 마음이 들어 좀 추스르고 조심조심 운행합니다.

드디어 거의 다 왔습니다!! 근데 마지막 내려가는 길도 참 가관이네요;; 된비알 정도를 넘어서는데 등로도 제대로 안 보이고 풀숲을 막 뚫고 나와 힘들게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물밀듯 밀려드는 후회와 함께 인도도 제대로 없는 차도를 따라 다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조가리봉 쪽으로 금수산에 진입해서 능선을 쭉 타고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차에서도 물먹고 희미한 등로에 긴장해서 물먹다보니 식수가 좀 애매한겁니다;;

아니 근데 이노무 동네에는 슈퍼도 하나 없고 민가에 사람도 제대로 없죠 왜 ㅠㅠ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오다가 문을 연 식당이 있길래 정수기 물을 좀 얻어서 겨우겨우 다시 산으로 들어갑니다.

제천학생야영장에서 학봉까지 곧장 치고 오르는 코스였는데, 여기서도 중간에 갈림길을 잘못 타는 바람에 희미해진 옛날 등로로 들어섭니다...;;

<<신선봉(무덤)<<    >>신선봉(학봉)>> 이런 팻말이 있는 갈림길이었는데 학봉 쪽으로 갔더니 이상한 길로 들어가더군요;

해가 떨어져 가는 와중에 어찌어찌 손바닥바위 데크에 도착합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곧장 해가 넘어가네요. 1분만 빨리 도착했어도 좀 더 얼짱각도로 찍을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ㅠ

이미 코딱지만한 데크에 텐트 6동이나 다닥다닥 붙여 친 팀이 있어서 그냥 바위틈으로 올라왔습니다.

나름 아늑하지 않나요? ㅎㅎ

국립공원 밖에서의 노숙은 위법성이 없습니다만, 버너로 취사를 하면 불법이고 산불 위험도 있죠.

오늘은 불 없이도 가능한 슬로우 푸드 레시피, 둥지냉면으로 저녁만찬을 준비합니다.

http://quasariii.blog.me/221033677891

 http://quasariii.blog.me/221033677891

블로그에 물만 부워서 만드는 둥지냉면 레시피를 포스팅 한 적이 있습니다.

진짜 물 붇고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쫄깃쫄깃한 냉면이 완성됩니다!

맑은 가을 하늘 덕분에 은하수도 보이네요.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유성 열 개 정도를 봤지만 아쉽게도 담진 못했습니다 ^^

블랙다이아몬드 특유의 토드텍스 원단으로 된 비비색은 밤새도록 땀흘리며 내부의 습기를 열심히 밖으로 내뿜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쾌적하게 잘 수 있었지요.

등포이지만 잠깐 막영장비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것은 몰라도 비비색만큼은 기능성 원단으로 된 제품을 쓰셔야 합니다.

특히 블랙다이아몬드의 토드텍스 원단은 비비색을 위해 태어난 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단은 내피가 부직포처럼 되어있고 외피는 방수투습성 멤브레인인데, 내피 부직포가 습기를 빨아들인 후

외피 멤브레인이 외부로 습기를 투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무게가 무거운 단점이 있지요.

그래서 텐트 전체를 토드텍스로 만들면 그 무게가 어마어마해집니다.

하지만 비비색은 부피가 크지 않아, 토드텍스 원단 사용으로 인한 무게 증가도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텐트를 토드텍스로 만든 것보다 비비색을 토드텍스로 만들었을 때 발수력이 비교도 안될만큼 뛰어납니다.

내부에 머무는 공기의 양이 더 적어서 체온이 잘 전달되고, 이로 인해 내부의 기온이 훨씬 따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 습하지 않은 날에도 블랙다이아몬드 바이포드비비에서 자고 일어나면 외피에 이슬이 엄청나게 맺혀 있어요.

그리고 내피 부직포 재질 부분은 딱히 더 말리지 않아도 될만큼 항상 뽀송뽀송합니다.

아와니나 피츠로이같은 텐트에서 습한 밤을 보낸 후 내피 부직포가 젖어서 엉망이 되는 것과는 큰 차이지요.

써본 분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던킨도너츠 먼치킨으로 식사를 하고 짐을 살짝 정리한 후 해가 뜨기를 기다립니다.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운해는 기대보다 영 별로네요... ㅠㅠ

하지만 햇살을 이쁘게 받아 얼짱 각도를 자랑하는, 매직아워의 월악산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잘 생겼으면 누가 봐도 국립공원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ㅎㅎ

왠지 어릴적에 본 영화 트루먼쇼가 생각나는 모습입니다. 저 곳은 비봉산 인것 같네요.

오늘은 금수산 산악마라톤 행사가 있는 날이니 해 뜨자마자 바로 철수합니다.

학봉 암릉을 넘어 신선봉까지만 들렀다가 내려가야겠어요.

오 그런데 여기 코스가 제법 쏴라있습니다.... 그리고 정비가 잘 되어 있네요.

 무지막지한 계단을 오르고

앵커와 로프 코스를 지나면

학봉 데크에 도달합니다. 여기서도 박 하신 분들이 계시네요. 철수 준비중이셨습니다.

이후로는 길이 확연히 부드러워집니다. 바람이 어마무시 불더니 하룻밤새 낙엽이 발목까지 쌓여 고즈넉해진 길을 따라 신선봉에 도착합니다.

네이버 지도에는 이 곳이 "신성봉"으로 나타나 있어요. 네이버지도 이런 똥멍청이!!

여기서 결혼식 시간에 맞추느라 단백봉으로 불리우는 900m봉은 못 들르고, 상학현마을 방면으로 곧장 내려가기로 합니다.

불과 50미터 쯤 내려갔을까?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오시네요.

오늘 산악마라톤 통신지원 오셨다고 합니다.

(마라톤 참가하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

가을빛으로 물든 길을 따라 잘 내려오다가,

마을 거의 다 내려와서 임도가 있길래 임도를 따라가려는데, 임도가 좀 옆으로 꺾이길래

그냥 네이버지도가 안내해준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는데 아.... 여기서도 피봤습니다. 이거 뭐 제대로 된 길도 없고

여튼 마지막까지 고생을 했네요 ㅠㅠ

맑은 날씨에 좋은 경치를 실컷 봐서 참 좋았지만,

역시 국립공원이나 근교 산이 아닌 경우 트랭글을 켜던지 해야겠다는 교훈을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설악무박이나 한 번 다녀오고픈데 아마 여전히 사람 많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