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장터목 대피소를 잡아뒀었는데, 토요일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취소하고

날씨 눈치를 보다가 안내산악회를 이용하여 덕유산을 다녀왔습니다.

영구종주를 신청하려 했는데, 인원 부족으로 파토가 나서 그냥 조금 짧게 안성-삼공리까지 17km 정도로 다녀왔어요.

결과적으로는 잘 된 것 같습니다. 동계 무박종주 하기에는 제가 아직 몸과 마음 모든 측면에서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_^

최근 주로 꼭두새벽부터 해 못 보고 움직이다가, 햇살이 드는 숲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등로는 칠연계곡을 따라 이어지다가, 칠연폭포 갈림길에서 다리를 건넌 후로 일반적인 등로처럼 폭이 좁아집니다.

들머리인 안성 탐방지원센터는 약 해발 600m인데, 1차 관문인 동엽령은 1300m 입니다. 약 700m를 4.5km에 오르는 적당히 힘든 코스입니다.

해발 1000미터 지점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상고대의 향연이 시작되었어요!

해가 잘 들지 않는 서북쪽 골짜기, 안성코스의 아침은 따뜻하리만치 고요하고, 열시가 넘어서야 겨우 넘어온 늦은 햇살로 시리도록 눈부십니다.

완연히 겨울왕국입니다! 힘들게 오른 것은 그새 까먹고 기분이 막 좋아졌어요 ㅋㅋ

요즘 몬테인 파이어볼 자켓은 산행 시작부터 끝까지 안 벗습니다. (반신샷 이상의 셀카는 보시는 분들 놀래실까봐 크기를 좀 줄입니다 ㅎㅎ)

"땀 안나는게 최고다!" 등산계의 금과옥조이지만, 글쎄요...

저 같은 땀쟁이는 알몸으로 올라도 땀이 막 나거든요 ㅠㅠ 그렇다고 마냥 벗기에는 요즘 너무 춥지 않나요? 이 날 날씨도 오전 9시반, 들머리에서 이미 영하 15도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땀 나는 것과 매우 추운 것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런 매서운 날씨에 운행해본 땀쟁이 분들이라면 공감하실꺼에요 ㅠㅠ

그래서 저는, 땀에 흠뻑 젖어도 보온성에 문제가 없는 프리마로프트 후디를 산행 시작부터 끝까지 안 벗습니다.

벗어서 짜면 물이 후두둑 떨어질만큼 땀을 흘려도 보온성에 문제가 없고, 저체온증 우려도 없습니다.

브린제, 파타고니아 캐필린과 조합하니 몸은 충분히 쾌적합니다.

하산 후 곧바로 젖은 옷들 벗고, 구스다운으로 교체합니다.

땀 많으신 분들은 속는 셈 치고 동네 뒷산에서 테스트 한 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잡설이 좀 길었네요. 스틱에 카메라 달아서 셀카놀이 한참 하다가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슬슬 능선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보상으로 오늘 덕유산도 소백산 못지 않은 18~20m/s 칼바람이 분다길래, 마모트 슈퍼미카 쉘자켓을 꺼내 입었어요.

동엽령에 오르니 건너편 거창, 합천 쪽 산그리메들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 위로, 푸른 물 속에 하얀 물감을 한 줄기 풀어 헤친 듯 구름이 멋지더라구요.

경치가 좋아서 잠시 퍼지고 앉아 빵이랑 미역국 한 그릇 먹었습니다. 꿀호떡은 사랑이죠 ^_^

본격적으로 능선을 걷습니다. 와...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에 상고대. 오늘 여기 오길 너무 잘했습니다 ^^ 장터목 못 간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기분 좋아져서 소심한 미니사이즈 셀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ㅋㅋ

저처럼 무게를 많이 신경 쓰는 약골에게 슈퍼미카는 동계 하드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후드부분은 실제로 훨씬 이쁘게 세팅할 수 있는데, 칼바람 때문에 제가 옷매무새를 제대로 못 만지고 뒤쪽 끈을 너무 쪼이는 바람에 핏이 좀 웃기게 되었습니다;;

귀봉 쪽 능선입니다. 여기가 백두대간 능선인 것 같던데 맞나요? 이 쪽도 상고대가 소복하니 내려앉았네요.

뒤돌아서 본 덕유산 주능선입니다. 남덕유와 서봉 쪽도 정말 산세가 멋져요! 저길 다 걸었어야 하는건데 아쉬웠습니다 ㅠㅠ

덕유평전은 완연한 겨울왕국이에요!

평온해보이지만, 능선부는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안부 쪽이라 조금 덜한데, 백암봉에 올라서니 정면에서 불어닥치는 칼바람에 눈동자가 얼어붙어 앞이 안 보일 정도더라구요 ㅠㅠ 고글 깜빡한게 후회되었습니다.

바람 맞고 정신 없는 와중에 나름 전신샷 타이머도 노력해봅니다 ㅋㅋ 저거 배 나온게 아니고.. 폰, 핫팩 기타소지품 등을 한 주머니에 몰아넣었더니 저 꼴이네요 ㅋㅋㅋㅋ 집에 와서 사진 확인 할 때까지 저 꼴로 돌아다닌걸 몰랐어요 ㅠ.ㅠㅋㅋㅋㅋ

뭔가 원정산행 온 듯한 느낌도 좀 나고.... 참 정말 즐거운 걸음이었어요. 가야할 거리가 줄어드는게 아쉬울만큼....

너무 이뻐서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안성에서 동엽령까지 4.5km를 1시간 반 걸렸는데 능선부 4km를 두시간 반 걸렸네요 ㅠㅠ 물론 밥 먹은 시간도 있긴 하지만...

하마트면 버스 놓칠 뻔 했습니다 ㅋㅋ

 

너무 놀면서 진행했더니, 향적봉에서 벌써 시간이 1시반입니다... 버스가 4시 출발이라 그냥 곤도라 타고 하산할까 잠깐 고민을 했는데

에라 뛰다시피 삼공리로 하산했습니다. 10분 남기고 겨우겨우 세이브 했네요;;

 

 

 

 

이번 산행은 종주가 아니라 절반구간만 가길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너무 이뻐서, 빨리 걸어내버릴 구간이 아니었어요.

 

영각사에서 출발했더라면 완주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후회가 많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역시 설산 인기투표 1위, 덕유산 다웠어요.

 

2월 쯤 삿갓재를 잡고 한 번 더 와야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