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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다시 찾은 소백. 텅 빈 벌판 속 눈과 바람이 나누는 웅변 같은 대화.
푼짱입니다. 올해 첫 눈꽃산행 마수걸이로 소백산을 다녀왔습니다. 때아닌 충북 지역의 대설특보를 듣다가 불현듯 생각난 김에 저질러버렸죠.
주말의 혼잡함이 사라진 소백은 사붓사붓 걷는 즐거움이 있더군요. 예보와 달리 기대했던 만큼의 적설량은 아니었지만 바람은 여전했습니다.
덕분에 요며칠 위염을 가속화시키던 속시끄러운 일들을 제법 털어놓고 왔네요.
평일이라 안내산악회를 이용할 수 없으니 대중교통으로 이동했습니다. 동서울~단양 오전 7시 첫차를 타고 단양터미널에 도착한 게 오전 9시.
근처 식당에서 아침 대강 떼우고 택시로 어의곡까지 이동(약 15000원선). 부지런히 장비 꾸려서 산행시작한 게 10시 10분쯤 됩니다.
대중교통으론 소백산을 처음 와봤는데 이거 할만 하군요. 죽령 출발은 버거워도 어의곡이나 천동 들머리로 시작하는건 아주 여유있습니다.
조금만 서두르면 을전에서 시작해 늦은맥이재~국망봉~비로봉~천동도 가능하겠어요.
단양에서 동서울로 올라오는 막차가 18시 30분입니다. 오후 3시쯤 천동으로 내려와 간단히 식사 겸 뒷풀이하고 탄 게 17시 30분 버스였는데요.
을전에서 시작해도 간단히 요기만 떼우자고 하면 18시 30분 막차 타는 것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네요. 오늘은 첫 장거리산행이기도 하고
소백산이 처음인 일행이 있어서 가장 대중적인 어의곡~천동으로 코스를 잡고 오르내렸습니다.
아참, 천동 날머리 식당들이 월~목엔 특별한 예약 없으면 영업을 안 하는 것 같더군요. 금~일은 문제없는데 평일은 군내로 나가셔야 됩니다.
동서울에서 오전 7시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단양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9시. 2시간 30분 거리인데 평일이고 첫차라 휴게소도 건너뛰고
바로 단양까지 와서 그런가 봅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모다? 스피드!! 빨리 올라갔다 빨리 내려와서 빨리 마셔야 함...
터미널 맞은편에 아침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몇 군데 있습니다. 우리는 올갱이해장국을 선택하고 한 그릇씩 배불리 먹었습니다.
제가 꼽는 최고의 올갱이해장국은 오천자전거길 종주 달릴 때 먹었던 충북 괴산터미널 옆의 원조집인데요. 그 집만큼은 아니지만
뭐 그럭저럭 한끼 떼우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괴산 가실 일 있는 분은 꼭! 꼬옥! 터미널 옆 원조 올갱이해장국 한그릇 잡숫고 가세요.
잊지 말고 전날 소주 한 병 정도는 마셔주는 쎈쓰!!
주말이면 스틱 밀어넣을 틈도 없는 새밭주차장이 오늘만큼은 한산합니다. 좋네요 아주.
오늘 저와 함께 소백산 원정에 나선 친구들. 두 사람 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인데 등산도 병행합니다. 취미가 두 개니 지름도 두 배.....!!
원래 자전거는 11월말부터 거의 시즌오프에 들어갑니다. 춥고 손시려서 못타요. 길도 미끄럽고. 그래서 보통은 인도어 트레이닝으로 방향을 바꾸죠.
로라 같은거 집에 설치해놓고 타면서 내년 시즌온을 준비하는데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원체 가난하고 돈이 읎어서..........ㅠㅠ
겨울엔 등산이죠! 암요!!
어의곡 들머리로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소백산 자락. 어예~상고대가 엄청 피어있군요. 하지만 우린 저곳으론 안 가니까요....;;
아이젠을 찰까 하다가 일단 가보는데까지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아직까진 눈이 그렇게 많이 쌓여있지 않아 오를만 합니다.
전날 예보에선 충북 지역에 대설특보가 발령됐다고 하더니 실제론 눈이 거의 안 왔습니다. 1cm나 내렸을라나.
그래도 지난 주에 내린 눈이 아직 쌓여있어 뽀득뽀득 새눈 밟는 재미는 있더라고요.
비로봉까지 약 4km. 휴식시간 감안하면 2시간 조금 넘어서 도착하겠네요. 오늘 소백산이 처음인 친구도 있고 해서
속도에 욕심 안 내고 사진 와장창 찍어가며 쉬엄쉬엄 올라가기로 합니다.
우리가 일빠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는걸 보면 참 부지런한 사람들 많아요.
아직까진 두 사람 다 쌩쌩한 모습. 여름 내내 잔차로 단련된 체력인데 이정도쯤이야!!
이제 비로봉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대설이 왔을 땐 이 지점부터 상고대가 활짝 피는데요.
오늘은 그정도는 아니로군요. 뭐 어때요, 어차피 올라가면 다 피어있을텐데.
친구와 나. 맨날 쓰는 OR 비니, 맨날 입는 아톰, 맨날 입는 수프림 바지, 맨날 매는 스트라토스.......
마지막으로 등산복 사본 게 언제였는지. 이제 모든걸 내려놨습니다. 더 이상의 지름은 naver. 욕심 없는 안온한 삶을 찾았습니다.
뻥치시네!! 자전거옷은 미친듯이 사제끼면서!!
어예~ 역시 지대가 1000m 가까이 되니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소백산에 처음 와본 친구도 감탄을 연발하며 씩씩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국망봉 방면에도 눈은 그리 많이 쌓여있지 않습니다. 볕이 드는 쪽이라 그런 듯 하고 그 반대편은 그래도 제법 쌓여있을 듯.
비로봉까지 약 1km 남았는데 여기까진 바람도 유순합니다. 요럴 때 사진 찍을거 다 찍으며 놀아아죠.
어의곡 첫 번째 쉼터 지나고부터는 눈이 꽤 쌓여있습니다. 쉼터에서부턴 아이젠 착용하고 올랐고요.
일체의 분답스러운 소음도 없이 앞뒤로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 들으며 걷기 좋은 길입니다.
수도권은 미세먼지가 창궐했다는데 여긴 그래도 올려다볼만 합니다.
상고대도 점점 진하고 두꺼워지고 있군요. 엊저녁에 눈이 5cm만 쏟아졌더라면 훨씬 더 멋졌을텐데요.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딥니까. 찌걱찌걱 진창길보다야 백배 천배 낫죠 뭐.
이제 비로봉 바람길이 코앞입니다. 이쯤에서 방한채비를 몸에 두르기 시작합니다. 스키고글, 페이스워머, 하드쉘, 고어 미트 장착 완료.
눈과 바람의 지평선. 아아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마 혼자 왔으면 어의곡에서 시작 안 하고 을전에서 시작해 늦은맥이재~상월봉~국망봉 거쳐서 이곳까지 왔을 겁니다.
혼자 걸으면 혼자 걷는대로, 함께 걸으면 함께 걷는대로 다 의미가 있죠. 오늘은 그래도 맵디 매운 소백산 바람에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가스가 심하게 꼈지만 조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앙 국망봉 왼편으로 정선 두위봉이, 오른편으로 함백산과 태백산이 보입니다.
일찌감치 비로봉 찍고 내려오는 분도 계시네요. 아마 천동에서 올라온 분이겠죠.
이날 예보에 따르면 풍속이 12m/s 였는데요. 작년에 맛본 극악무도한 똥바람만큼은 아니었지만 겨울의 참맛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어요.
동계장비 질러놨다 장롱에 넣고만 있음 뭐합니까. 이럴 때 마구마구 써먹어야 본전 생각 안 나죠.
친구가 쓸만한 하드쉘이 없다고 해서 웨스트콤 쉬프트를 빌려줬더랬습니다(사진 좌측). 다행히 몸에 잘 맞네요. 저는 언제나처럼 마사오와 함께.
폐업맞이 란제리 폭탄세일 현장 같던 비로봉이 평일 버프를 받아 오늘은 아주 한적합니다. 전세 내고 여러 장 기념샷 남길 수 있었고요.
이렇게 보니 저한테 살짝 큰 쉬프트가 친구에겐 아주 저스트네요. 하지만 절대로 팔거나 하진 않을 거임........내가 저걸 어떻게 구했는데?!
소백산 똥바람이 처음이라 버프도 안 하고 올랐다가 볼때기가 얼어서 고생했다는 친구. 다음에 또 오게 되면 쉴드 단단히 치게 되겠죠? ^^
이제 천동으로 내려갈 차례입니다. 작년에 운때 잘 맞췄을 땐 싯누런 땅색깔 따윈 1도 보이지 않을 만큼 온통 순백의 세상이었는데요.
뭐 그래도 바람 맞으러 왔으니 바람 제대로 맞고 내려가는 걸로 만족합니다.
저 멀리 연화봉이 보이는군요. 죽령에서 시작해 연화봉 거쳐 철쭉 보고 내려갔던 게 벌써 2년 전인가 그렇네요. 그땐 수지장이님도 등산 욜심히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지.......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잔차데쓰~
이렇게 또 한 번의 소백산행이 끝나가는군요. 아쉬워라. 근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또 올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비로봉에서 블약 100대 명산 인증샷을 찍긴 찍었는데 고글이랑 버프로 얼굴을 된통 가려놔서 인증요건을 못갖춤....ㅠㅠㅠㅠ
1월에 또 와야죠 뭐 훌쩍;;
다행히 주목군락지로 내려서니 여긴 눈꽃이 장대합니다. 볕이 들지 않는 곳이라 그런가 봅니다.
주목에도 눈이 한가득 실려있고요. 요구간은 당분간은 눈꽃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똥바람에 휘청이며 걷느라 고생한 친구들. 올겨울이 지나면 다시 안장 위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오늘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은 잊지 말아주세요. 제발~!
산꾼들은 만나면 산 얘기, 장비 얘기밖에 안 하는 것처럼 자덕들은 만나면 허구한 날 자전거 얘기만 합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음...
하지만 모든 대화의 끝은, "우린 안 될거야 아마..."로 귀결............
옛 천동쉼터. 여기서 조미료 듬뿍 오뎅국물 호로록 들이키며 몸 녹이던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천동 하산길이야 뭐 눈만 쌓여있으면 비단길이니까요. 길도 넓고.
원래 셋이 단체사진을 지나가는 분한테 부탁해서 하나 담았는데 와꾸가 안 맞게 찍어주셔서.....ㅠㅠ
고생하셨어요. 내년 시즌온 땐 우리도 포자 딱지 떼고 꼬마굇수로 올라서도록 해요!! 평지렁이, 흘라이머는 이제 노노!!
하지만 어차피 우린 모다? 안 될거다..................ㅠㅠㅠㅠㅠㅠㅠㅠ
계곡까지 얼음이 낀 걸 보면 이 동네가 요근래 춥긴 추웠나 봅니다. 하긴 엊그제 보니 한강도 얼어붙은걸 보면 올겨울 추위가
예사롭진 않아요. 이왕 예사롭지 않은 김에 대설주의보의 연중생활화로 언제 가도 눈꽃 볼 수 있음 좋겠다는 미련한 생각이 불쑥....;;
천동 날머리 다리안식당에서 비빔밥이랑 막걸리 한사발 할까 했는데 평일엔 영업을 안 하더군요. 결국 콜택시 불러서 터미널까지 왔습니다.
기사님이 추천해준 터미널 건너편 식당에서 돼지갈비 구워 소주 각 1병씩 깔끔하게 해치우고 17시 30분 버스 타고 귀경했습니다.
터미널 주변 식당은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단양은 그래도 좀 낫네요. 밑반찬 인심도 넉넉하고 육질도 so so.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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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첫 마수걸이 눈꽃산행치곤 나쁘지 않았습니다. 바람도 제법 맛있었고요. 단양까지 대중교통으로 오는 것도 할만하다는 걸 알았으니
눈 대차게 내린 다음날, 바람 심하게 불 때 한 번 더 찾고 싶습니다. 단양 내 들머리~날머리 이동은 버스보단 택시를 추천하고요.
2인 이상이면 비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니 계획 잘 짜서 이동해봐도 좋겠습니다. 안내산악회보다 열 배는 더 쾌적하고 여유로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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