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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북한산에 다녀 왔습니다.
노고산 백패킹 이후 2주 동안 회사 집만 왔다 갔다 하니 나가고 싶기도 하고 지난 2주 동안 지른 장비들 테스트도 필요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재충전이 없으면 더 이상 못살겠다! 라는 생각에, 아직 눈 살짝 남아 있는 북한산으로 다녀 왔습니다.
전날 안가본 코스로 가려고 지도를 보며 여기 저기 한참을 궁리하다가, 가을에 좀 오르다 실패했던 의상능선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북한산성입구에서 의상봉을 거쳐 증취봉 지나서 용학사로 꺾어서 백운대를 찍고 우이동쪽으로 빠져야 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택도 없는 코스였습니다 ㅋ
작년 가을에 일몰까지 3시간 정도 남긴 상태여서, 의상봉이 제일 짧은 거 같으니 저길 찍고 오자!하고 반쯤 오르다가,
이 길로 내려오다간 황천갈 거 같아서 중도 포기하고 내려 왔었습니다.
코스 좀 알아보려고 등포에 검색해보니 풋팟퐁님 글이 비회원으로 나오네요 ㅠ_ㅠ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산의 다양한 코스들 덕분에 잘 봐왔었는데 곧 다시 후기글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코스 정보>
- 1월 26일 11시부터 올라서, 17시에 하산 (식사시간 30분 포함)
- 북한산성 입구에서 의상능선 진행 후 구기탐방안내소로 하산
- 의상봉 오를 때랑 내릴 때, 두 군데 지점에서 발 딛기 애매한 난코스가 있음, 이외 구간은 와이어 잘 잡고 오르면 됨
<장비>
- 브린제 써멀프로 반팔
- 파타고니아 메리노 써멀 크루
- 파타고니아 R3
- 파타고니아 나이프릿지 자켓
- B발트, 스패츠, 장갑 등
- 써모스 보온병에 뜨거운 물 1리터, 사발면, 죽통에 밥 + 비엔나 소시지, 와이프가 먹다 남긴 초코 비스킷 과자
원점 회귀가 싫어서 자차로 안가고 대중교통으로 갔는데 출근 시간도 걸리고, 704번 노선이 바뀌었나요? 은평구 쪽에서 엄청나게 정차하는 바람에 집에서 7시 30분에 나왔는데 10시 30분에 북한산성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자차로 오면 한시간 안쪽인데, 세 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네요.
평일에다가 최강 한파라는 뉴스 때문인지 입구에 사람 한 명 없이 을씨년 스럽네요.
나무줄기 끝에 싹이 들어 있는 걸까요... 이런 한파에도 삶은 계속 되고...
나무 사이 사이로 쌓인 눈이 멋스럽습니다.
첫번째 열린 조망, 괴물 같은 도시 서울, 그리고 먼지, 그리고 하늘
전반적으로 와이어길이 엄청나게 위험한 건 아니었는데, 한 군데가 다리 놓을 데가 없어서 까딱 미끄러지면 큰 일 날거 같더군요. 4번째 시도를 해서 간신히 올랐는데, 처음 시도 때 와이어 움켜 잡고 발버둥치면서, 수직침몰하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선미에 메달려 있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_ㅜ
와이어의 향연1.jpg
후기에서 많이 보던 토끼 돼지 바위네요. 유명한 바위 볼 때마다, "아 당신이 그..."라고 입에서 튀어나올 거 같습니다. 유명한 연예인 보는 느낌...
햇살이 찐해서 그림자 찍기 놀이
쪼그려 앉아서 무시무시하게 위험한 길처럼 찍은 MSG 살짝 섞은 계단 사진.jpg
반대의 시선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고 나니 거대한 조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명한 하늘 아래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는 북한산.
연예인 바위 2, 철모 바위
왼쪽으로는 백운대가, 오른쪽으로는 파도 같은 산그리메와 설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의상 능선 하산길 중 발 딛기 애매한 곳이 하나 더 나오네요. 직벽에 가까운 바위에서 1미터 앞에 있는 돌기에 발을 디뎌야 하는 데, 균형을 잃었다간 평균대에서 넘어지듯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습니다. 아... 타임머신이란 게 있음, 단추를 눌러 오늘 아침 이불속 시점으로 워프하고 싶다 ㅠ_ㅠ 는 생각을 하다가 간신히 통과 했습니다. 담번에 다시 오면 좀 나을라나요? ㅠ_ㅠ
난코스를 벗어나자마자 국녕사의 커다란 불상이 보입니다.
성곽 너머 엿보기
조금 전 난코스 트라우마 때문에 의상능선을 계속 가도 될른지 갈등하고 있던 중, 같은 코스를 앞치락 뒤치락 걷고 계시던 분께 코스를 좀 여쭤봤습니다. 주말마다 오시는 데 의상능선의 조망이 최고라며, 주로 의상능선을 다니신다고 합니다. 어렵게 시간내서 온 터라, 이 분과 함께 가면 좀 덜 무서울 거 같아서 문수봉까지 함산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가는 데, 너무 선하고 친절한 인상이십니다. "나이가 제 아들 정도 되 보이는데요?" 하셔서, 올해 마흔 하나입니다 ~ 했더니, "정말요? 어려 보이는 데, 그렇게 안들어 보이네요"라고 하시면서 놀라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원래 좋으신 분 같았지만, 백배는 더 멋지고 좋은 분 같이 느껴집니다.
지나온 능선길
와이어의 향연2.jpg
계속 네 발로 걷다보니,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비봉능선??
연이어 계속 터지는 조망들. 예전에 이태리 갔을 때, 고풍스러운 건축물 보고, 우와, 우와, 우와 하다가 한 시간 후부터는 무뎌졌던 기억이 나는 데, 조망이 미친듯이 계속 터지니 무뎌질라고 합니다. 의상능선 조망이 정말 멋지네요.
지나온 길
다들 하시길래 저도 따라서 한 번 써봄. 경사진 바위라서 ㅇㅍ에 동그라미랑 네모가 밑으로 떨어져서 손으로 살살 다시 달래서 올려주고 찍음.
다시 한 번 백운대
고스트바스터즈에 풍선 유령처럼 부풀어 오를 것만 같은 눈 덮힌 바위
지나온 능선
인스타에 요렇게 찍은 사진 올리는 게 유행이라 길래 따라해본 사진
증취봉? 내려오는 길, 냥냥 거리고 있는 냐옹이를 만나서 한 컷. 이렇게 추운 데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뭐하고 있니? ㅠ_ㅠ
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흔한 의상능선의 조망1.jpg
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흔한 의상능선의 조망2.jpg
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흔한 의상능선의 조망3.jpg
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흔한 의상능선의 조망4.jpg
문수봉에 오르니 3시 정도된 것 같습니다. 문수봉의 멋진 조망에서 도시락 까 먹으려고, 함산했던 선생님과는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사발면 포장을 벗기고 뚜껑을 딸라고 하는 데, 능선이라 바람이 살짝 살짝 부는 데 기온이 워낙 낮다 보니 약한 바람에도 엄청 춥네요. 다시 짐싸서 대남문으로 향합니다.
녹색 그물 때문에 멋이 한층 반감된 대남문이 성벽 옆에 서 있네요. 양지 바른 곳에 방석 깔고 자리 잡았습니다.
사발면에 뜨거운 물 붓고, 쿨러 안에 넣고 익을 때까지 닫아 놨습니다. 밖에다 두면 면이 잘 안익어서 사각 거리더라구요. 쿨러 안에 넣고 익히면 편의점에서 사 먹는 거랑 비슷한 정도로 잘 익습니다.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사발면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입에 똬악... 넣을라고 하는 데, 아까부터 앞에서 냐옹 냐옹 구슬프게 우는 냐옹이가, 못내 걸리네요 ㅠ_ㅠ
사발면 뚜껑 위에 면을 얹어서 멀찌감치 줬습니다. 살짝 망설이더니 와서 냠냠냠 먹네요. 왠지 라면은 안좋을거 같은데... 산에 고등어를 싸서 다닐 수도 없고...
이 추운날에 산에 혼자 있는 녀석을 보니, 도시란 곳이 이 황량한 산보다도 더 냉혹했던 건지, 씁쓸한 마음이 드네요.
사발면 다 먹고 국물과 같이 먹으려고 도시락도 개봉했습니다. 쿨러 안에 보온 죽통을 넣어 왔는데, 날이 워낙 춥다보니 밥은 거의 식었네요. 차가운 정도까진 아니지만.
늦은 점심 다 먹고 구기탐방안내소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북한산성입구로 빠져도 되긴 한데 안가본 곳으로 가보고 싶어서....
우정교를 지나며 두 개의 우정을 생각합니다. 어려 보이네요, 라고 해주셨던 선생님과, 내 사발면의 1/3을 뺏어먹었던 길냥이 녀석...
소나무 사이로 노란 햇살이 따스해 보입니다. (보기에만 그렇고 실제로는 추웠습니다) 계곡길과 숲이 예쁘게 펼쳐져 있어서, 여름에 물소리 들으며 올라도 좋을 것 같네요.
탐방안내소를 지나니 식당과 등산용품점들이 보이고, 바라크라바 쓰고 돌아다니면 왠지 세콤에서 출동할 거 같은 위화감 느껴지는 으리 으리한 주택들이 있네요.
아... 버스는 평생 안타봤을 사람들만 살거 같은 동네인데 전철역까지 어떻게 가지, 라는 걱정을 하면서 내려오다보니 버스 정류장 하나가 보입니다. 정류장에서 아이젠 정리하고 노선도 안보고 올라탑니다. 6시간 동안 목적지 없이 걸어 왔는 데, 버스가 좀 돌면 어떠냐, 란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광화문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버스로 갈아 타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산보다 도심이 더 추운 거 같네요. 버스에서 완전 꿀잠 자면서 집에 왔습니다.
<몇 가지 장비 후기>
브린제 처음 입어 봤는데, 보통 등이 흠뻑 젖었었는데 뽀송 뽀송한 느낌으로 산행했습니다만, 워낙 미친듯이 추운 날씨여서 땀을 안흘려서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0도 즈음에서는 집티 하나만 입고 올라도 땀이 났는 데, R3에 나이프릿지 자켓까지 입고도 땀 많이 안흘리고 다녀왔습니다. 보통은 하산길에서만 저렇게 입는 데... 나이프릿지 자켓은 진짜 좋네요. 얼마전에 80% 세일품으로 또 올라왔었는 데, 한 벌 더 쟁여둘 걸 싶을 정도입니다.
줄보 선글라스는 바람이 엄청 쌨던 건 아니라 방풍 성능을 제대로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착용감이 엄청 좋네요. 산행하는 6시간 동안 한 번도 흘러내리지 않고 편안하게 잘 찼습니다. 근데 하산하고 벗으니 눈 양옆이 눌려서 훅 들어가고, 눈 주변이 가죽바람막이에 눌려 주름이 생겼네요. 폭이 약간만 더 컸으면 좋았을텐데, 사이즈가 살짝 아쉽습니다.
추운 날씨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시고 즐거운 등산 생활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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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치마에 구두 신은 외국인 아가씨 내려오는 것도 본적 있습니다.
아마도 제일 위의 난코스에 계단 놓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저도 올라는 많이 가보았지만 내려온 적은 몇 번 없거든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군대에서 있던 일인줄 알았는데)
매년 위에서 부터 계단 놓아 내려오는 것 보면 아마 올해는 그 구간도 계단 놓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