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망경(雲嶽望景)을 찾아, 경기 가평 운악산(雲嶽山,936m)17

운악망경(雲岳望景)을 찾아,

경기 가평 운악산(雲岳山,936m)

운악산(雲嶽山)이란 이름은 만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이다.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불리웠던 운악산은 경기지역 최고봉인 화악산(華岳山:1468m)을 비롯해, 관악산(冠岳山:629m)·감악산(紺岳山)·송악산(松嶽山:489m)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운악산은 산수가 가장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란 뜻에 만경대가 자리하고 있어 100대 명산에 드는 인기 산행지이다. 오늘 나는 흐린 날씨속에서도 운악망경(雲嶽望景)을 찾아 운악산으로 향해 본다. 

 산행의 들머리 하판리

운악산은 경기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시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있으며 산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이번 산행에 들머리는 대체적으로 포천 방향보단 수월하며 풍광이 좋은 가평군 조정면 하판리에서 시작을 한다. 

매표소 지나 운악산(雲岳山) 시비

운악산(雲岳山) 시비 

운악산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등사 범종 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 무구폭포에 푸른 안개 오르네.

삼충단

현등사 일주문

매표소를 지나면 ‘운악산 현등사’라 적힌 일주문이 나온다. 현등사 일주문 옆엔 삼충단이 자리하고 있는데 을사조약에 항거한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제단이다

점점 멀어지는 세상의 소음을 뒤로 하고 맑고 잔잔한 계곡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걷기를 10분, 현등사와 만경대 방향 갈림길이 나온다. 만경대 방향은 풍광이 뛰어나지만 험준한 암릉구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하산길로는 적합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등산길로 선택하는 코스이다.

눈썹바위로 가는 길

된비알 길을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30분을 걷고 보니 어느새 총각이 선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된 눈썹 바위에 도달 하게 된다.

눈썹바위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보고는 치마를 하나 훔쳤다.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총각은 덜컥 치마를 내주었고,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갔다. 총각은 선녀 말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 바위가 되었다.

눈썹바위에서 토봉으로 가는 길

고인돌 바위

연인산, 칼봉산, 매봉 방향

눈썹바위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서니 용추구곡 발원지의 최고봉 연인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 온다. 

백호능선

화악산,명지산, 연인산

 계속 치고 올라가다 만나는 풍경 - 백호 능선

 운악산 정상 900m를 남겨둔 토봉

토봉에 들어서니 운악산 최고의 명소인 운악산 병풍바위가 나온다. 빼어난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니 경치에 잠시 넋을 놓고 만다. 확 트인 시야로 바위 틈틈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마치 9폭에 멋진 동양화 같다.

토봉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병풍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인도승을 내친 바위 병풍바위

옛날 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 마라하마가 이 산을 오르다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바위와 맞딱뜨렸는데 정신이 헛갈리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허나 이것도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으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마치 바위가 오르지말라고 내치는 듯 했다. 결국 마라하미는 바위에 오르지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행을 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전망대를 내려와서는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험준한 지형이기 때문에 등산로를 따라서는 철재 와이어가 함께 이어진다. 잠시 내려 놓은 넋을 추스르며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안전산행을 위하여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미륵바위로 오르며 뒤돌아본 입석

미륵바위 전망대

운악산 '미륵바위'

병풍바위 전망대를 지나 다시 암벽을 오르고 도착한 미륵 바위 전망대. 운악산에 또 하나의 명소 '미륵바위'를 만나게 된다. 미륵바위를 지나쳐 뒤돌아보아야 그 기묘한 형상이 제대로 나타난다. 사방으로 조망이 터지면서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듯한 바위의 모습이 드러난다. 절벽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른 듯한 미륵바위는 주변 노송들과 어우러지면서 사시사철(四時四-)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운악산 '병품바위'

눈썹바위를 지나서 시작된 바위의 향연은 곳곳이 풍경이고 곳곳이 절경이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 몸을 기댄 노송의 모습은 이 또한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낸다.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가 하늘로 솟구쳐 '병풍바위'가 되고 너럭바위가 차곡차곡 포개져 '미륵바위'가 되니 정상이 아니메도 운악산 풍경의 절정을 이룬다.

미륵 바위와 청룡능선 

오를수록 긴장감과 짜릿한 재미가 더해가는 바윗길, 사방에서 우람한 바위 봉우리들이 각기 다른 멋을 뽐내며 모습을 드러내니 왜 운악산을 금강산에 빗대어 말하는지 알법하다.  

만경대 정상

점점 더 짙어지는 먹구름

백호 능선 뒤로 애기봉 능선

만경대 주변

흔린 날씨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서는 만경대

만경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내림길.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반만에 937.5m 운악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행정구역의 경계를 이룬 산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운악산 역시 가평과 포천에서 각각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봉우리 이름마저 가평 쪽 정상석에는 '운악산 비로봉', 포천 쪽에는 '운악산 동봉'으로 다르게 새겨져 있다. 또한 정상에서 포천 방향으로 5분만 가면 포천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봉이 자리하고 있다. 이쪽으로 포천의 운악산자연휴양림쪽에서 오르는 등산로이다.

가평군 정상석과 포천시 정상석

자세히 보면 운악산에 한자 표기가 다르다. 같은 봉오리일진데 가평에서는 ‘운악산비로봉 (雲嶽山毘盧峰)’이라 하고, 포천에서는 ’(雲岳山東峯)‘이라 한다. 모두 악자가 다르지만 岳과 嶽모두 큰산 악자로 같은 뜻이다.

충성명예단결,비호결사대, 결사돌진대, 결사돌격대, 결사돌파대

운악산 정상에서 내려가며 바라본 풍경, 구름은 점점 더 짙어진다.

운악산 백패킹 포인트. - 다음엔 이곳에서 비박을 하리라.

정상에서 10여 분 내려온 지점에 설치된 전망대. 울창한 숲 한가운데 삐죽이 솟은 남근 바위가 조망된다. 운악산 정상에서 절고개로 내려가는 중간 지점에는 남근바위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다.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먼발치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중국 등 유교문화권에서는 칠거지악(七去之惡)중 삼불거(三不去)외에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할 수 있었던 풍습 때문에 남근석은 예로부터 아들을 낳도록 소원하는 상징의 대상이 되었다. 남근 형상과 비슷한 자연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명칭들이 있으나 대부분 남근석이라고 부른다. 아들을 낳고자 하는 부부라면 운악산 정기를 이어받은 이곳에서 소원을 빌어보도록 하자.

운악산 남근석

점점 더 깊어지는 구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남근석 전망대에서 절고개로 가는 길

절고개 기점을 지나서는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진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는 구간이지만 내리기 시작하는 비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운악산은 금강산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하여 경기 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더욱이 이 산 곳곳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아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현등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있는 코끼리바위도 그 중에 하나다. 미치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의 모습이 너무나 또렷해서 운악산의 팔경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절고개에서 현등사 방향으로 하산 중 만난 코끼리바위

어느덧 우산이 되어준 나뭇잎 사이로 굻은 방울이 떨어지고 내림길은 촉촉히 물기를 머무며 가는 길은 점점 더 느려지기 만든다. 초 저녁 어둠이 깔린듯 주변은 어두워지고, 간간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는 작은 천둥 소리 마냥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간간히 들려오는 산 짐승들에 뒤척임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하산길에 긴장감을 더 하니 오르는 길만큼 짜릿하다. 

물에 젓은 하산길

오르는 길이 쉽지 않았는데 어찌 하산길이 쉬웠을가. 절고개부터 40여분간 비에 젖은 너덜겅과 된비알 길은 운악산 오름길 만큼 긴장에 연속이다. 조심 조심 함허스님 부도가 있는 부도밭에 다다르니 이곳이 현등사이다.

운악산 깊은 숲 어귀에 자리한 천년고찰 현등사. 오랜세월 한자리에 머문 고찰은 어느 덧 산 풍경에 일부가 되었다. 현등사는 인도에서 불법을 전하기 위해 건너온 마라가미스님을 위해 신라 법흥왕때 지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지눌스님이 재건하였고 조선시대 함허스님이 중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470년 조선시대 현등사를 중수한 기록이 새겨졌 있는 사리호와 사리함이 현등사 3층 석탑에 봉안되어 있었지만 1980년 도난 당한 후 삼성문화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삼성 문화 재단이 소유권에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반환 소송이 언론에 큰 이슈가 되면서 법적 승소를 통해 2006년도에 돌려 받게 된다.

현등사를 뒤로 하고 이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면서 산행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운악산 정상과 만경대, 절고개 골짜기에서 발원한 계곡이 청아한 물소리를 데리고 함께 산을 내려오고 있다. 

현등사 계곡

현등사 계곡, 민영환 암각화

무우폭포

무우폭포는 운악산 현등사에 내려는 길에 있는 작은 폭포다. 무우는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비를 뜻하기도 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을 말하기도 한다. 폭포에서 물보라가 이는 모습이 안개비처럼 보인다고 하여 무우폭포라고하는데 어떤 이들은 무우귀영(舞雩歸詠)이라하여 자연을 벗 삼는 즐거움을 뜻하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무우폭포

무우폭포 아래 이어지는 물줄기

무우폭포 아래 백년 폭포 이어지는 물줄기

백년을 하루처럼 백년 폭포

백년 폭포와 백년 폭포에 내려가는 물줄기

백호 능선으로 가는 길

백호 능선으로 가는 길 아래 계곡.

오늘 산행에 마무리

운악산은 한북정맥과 함게하는 산이다. 한북정맥은 1대간 1정간 13정맥중의 하나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오며 두류산을 지나 식개산 분수령(分水嶺)에서 남서쪽을 가르며 한강의 북쪽을 이루는 산줄기이다. 북한 북쪽의 분수령, 천산, 진천산, 수운산, 충현산, 불정산을 지나 철책선을 넘어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운악산에서 한 절경을 만들고, 노고산, 사패산, 북한산(삼각산)을 지나 장명산까지 그 맥이 이어나간다. 한강 줄기의 북쪽에 있는 분수령이라 하여 한북정맥이라 부르며 한강 수계와 임진강 수계를 가름한다.

운악망경(雲嶽望景)을 찾아 떠난 오늘, 흐린 날씨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비온 후 맑은 하늘이 운악망경에  대한 짙은 아쉬움에 쉽사리 잠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는 그 곳에서 하루밤을 머물러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