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문득 공룡능선에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작년 말 회사분들과  공룡능선을 다녀온 뒤로 이어져 왔었는데 지난 달 초에 했던 설악산 가을 추첨제 때 운 좋게도 대피소 당첨(더구나 최고 절정기인 10월 중순 주말)이 되는 바람에 전격 공룡능선 산행 결정이 되었었습니다.

다만 오해하지 않아야 할 부분은 이 제안이 아내가 많은 산행 경험을 통해 발현된 것이 아니고 그 동안 아내 앞에서 2번의 공룡능선 경험을 포장해서 설파한 것이 그저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2년 전 10월 당시 8살, 6살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천불동 계곡을 오를 때 대청봉이 아니라 공룡능선으로 방향을 바꿀까 생각했었을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었는데 이제 이녀석들이 10살, 8살이 되었고 2년새 꽤 험난한 산들을 곧 잘 올랐었기에 이제 가족과 함께 공룡능선을 가볼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희운각대피소가 보수공사로 폐쇄되면서 예약된 소청대피소를 거쳐야 했었던 점인데, 결론적으로 이 공룡능선 산행 계획은 실패했고 산행 당일까지도 철저하지 못했던 점들을 깨달으면서 공룡능선 전체 구간을 포기하고 무너미고개에서 시작하는 능선의 초입부 신선대까지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년전 다녀왔던 코스의 반대에 공룡능선 신선대를 추가한, 즉 오색-대청봉-소청대피소 1박-희운각-공룡능선 신선대-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소공원 으로 총 21.5km 를 무사히 완주하였습니다.

금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랜턴을 켜고 소청대피소로 향했습니다. 중청을 지나 소청 삼거리를 지나면서 본 밤하늘의 별들 또한 대단했습니다. 평소 도심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별들의 향연속에 아이들도 감탄해 했습니다. 별자리에 대해 모르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별자리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자리 등을 가리키며 설명해주자 책과 천문대의 가상 천구에서만 봤던 별자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소청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원래 계획보다 1시간 30분 늦어진 시간입니다. 아내는 기대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걸리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공룡능선은 도저히 완주를 못하겠다고 해서 여기서 공룡능선은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아이들은 베이컨, 김치 2가지로 햇반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9시 소등 후 이어폰을 꽂고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를 코러스 삼아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둘째 날.

희운각으로 향하며 보는 공룡능선의 전경이 낮은 색온도에 의해 붉으스름한 것이 따뜻한 느낌으로 비춰졌습니다. 좀 앞서서 내려가서 아내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위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돌계단에서 2바퀴 정도 굴러서 넘어졌는데 구를 때 다행히 배낭이 커버를 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가파른 돌계단길로 조심스레 내려가야 하는 구간입니다.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서 컵라면과 김치, 과일, 그리고 스테이크를 구워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공룡능선 신선대까지만 가보기로 하고 다시 나섰는데 많은 분들이 아이들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아이들과 신선대까지만 간다고 했는데도 아이들을 추켜 세워주었습니다. 신선대 앞단의 바위 절벽길을 무사히 통과하고 신선대에 이르렀을 때 아내는 최고의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저도 공룡능선을 2번 가봤었는데 이번만큼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한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선명하게 펼쳐진 공룡능선의 위용은 사진으로는 절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그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11번째만에 처음으로 이런 날씨를 경험한다고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머물면서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아쉬웠습니다. 소공원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C지구의 유스호스텔 인근으로 갔는데 만원씩이나 받더군요. 하지만 피곤한 우리들은 아랑곳 않았습니다. 택시 기사 얘기가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매표소 입구에서 설악동 빠져나가는 것만 1시간이 걸릴 정도로 붐볐다면서 이제서야 길이 트인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주말동안 엄청난 사람들이 설악산을 다녀갔나 봅니다.

돌아오면서 모두들 힘들었지만 좋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큰 아들이 다음번에는 지리산 노고단을 다 함께 가자고 하는데(2년전 여름 아빠와 단 둘이 다녀온 노고단의 기억이 너무 좋은 나머지 노고다 얘기를 자주 합니다) 아내는 역시나 더 이상 힘든 산행은 싫다면서 엄살을 부렸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틀간의 산행을 아이들과 아내와 리뷰하면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총 산행 거리 : 21.5km (오색-대청봉-소청대피소-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 신선대-천불동계곡-소공원)

이동시간 : 13시간 10분

휴식시간(1박 포함) : 13시간 49분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