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오리 이원익에게 비망기를 내려 경기도의 대동법을 실시토록 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입니다.

단, 광해군은 대동법의 전국 확대에는 반대해왔는데요. 그로인해 최근에는 마치 대동법을 반대한 민생에 관심없는 왕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억빠와 억까가 동시에 있는 왕으로 해두죠.

광해군이 왜 대동법의 전국확대를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인조 반정 등으로 인해 기록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럼 왜 인조와 효종 시기에 대동법을 반대한 양반들이 있었는지, 왜 약 100년이 걸려 숙종 시기에야 대동법의 전국 확대가 완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대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영화와 사극 드라마에서는 빌런을 만들고 선악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양반 지주들의 기득권 때문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항상 권세가를 등장인물로 내세웠는데요.

그런데 실제 역사를 보면, 적어도 대동법에 관한한 빌런이 있었다기 보기 어렵고, 양반 지주들의 반대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조선시대는 유교라는 건국이념으로, 특히 임진왜란 이후로는 그 유교 이념이 더 강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때 구원병 뿐 아니라, 식량 지원, 전후 복구 자금 등 명나라(만력제)에 각종 도움을 받기도 했고, 오랑캐로 치부했던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위기 의식을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정묘, 병자호란도 있죠.

그러한 정서를 사대의리, 춘추의리라고 부릅니다. 인조 반정의 주요 명분이기도 했죠. 이게 북벌론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중화사상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비겁한 양반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치부를 자기 부녀자를 '화냥'이라고 욕하는 형태로 분풀이하기도 하죠.

이혼시켜 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을 보고 인조가 혀를 끌끌 찬 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유교 사상에 따르자면, 적어도 가식으로라도 '위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교 명분에 집착하던 이 시기에 상대 당파도 있는데, 기득권 지키자고 백성의 곤궁을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무엇보다 김육도 서인이죠.

이 시기 반대를 했던 원인은 바로 물류에 있습니다. 특산품 대신 쌀로 보내면 부피가 커집니다. 각지에서 보내는 조운선이 기존보다 커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 배가 한강까지 와야하니 덩달아 한강의 나루터 역시 커져야 하는 얘깁니다.

이것을 하면 백성이 편해지는 것은 알겠는데, 이것을 전국 단위로 실행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전국 고속도로를 닦는 일입니다. 그러니 반대하던 양반들도 무턱대고 반대한 것은 아니었죠.

다시 광해군으로 돌아가. 광해군이 실시했던 경기도의 대동법은 단 몇 해만에 오히려 세금이 많이 걷힌다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리고 재위 기간 초석을 단단하게 다졌죠.

그때부터는 대동법 자체를 반대하는 양반은 없었습니다. 나라의 곳간이 늘어나는 것은 중앙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이게 좋은 것은 알겠는데... 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어쩌면 물류 확대라는 불확실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투자에 비록 100년이 걸릴지라도 완수해내게 했던 것에는 결국 대동법을 최초 도입했던 광해군의 안목 또한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재위 기간 그의 언행들은 조선시대 여타 왕들 중에서도 상업이나 외교 만큼은 생각이 앞선 왕이기도 했습니다.

단, 광해군의 재위 기간은 잦은 고변과 심화된 당쟁, 전후 복구와 지나친 궁궐 공사 등으로 내정이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동법의 전국 확대는 민생, 정부 재정 확충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밑바탕이 되는 등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