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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국의 굉장히 높은 학문 수준을 나타내는 기록들. 부제:발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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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進士)로 인재를 뽑는 것은 본래 당(唐)나라 때 성행하여, 장경(長慶) 초에 김운경(金雲卿)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신라(新羅)의 빈공(賓貢)으로서 두사례(杜師禮)가 주관한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천우(天祐) 말년까지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사람이 모두 58명이며, 오대(五代)의 후량(後梁)과 후당(後唐) 때에 또 32명이 있는데, 발해(渤海) 출신 10여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졸고천백.

한림(翰林) 이중보(李中父)가 사명을 받들어 정동성(征東省)에 들렀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할 적에 나를 찾아와서 작별하므로 말하기를, “진사(進士)로 사람을 취택한 것이 본래 당(唐)나라 장경(長慶) 초년부터 성했는데 김운경(金雲卿)이란 이가 비로소 신라의 빈공(賓貢)으로 두사례(杜師禮)의 방(牓)에 이름이 올랐으며, 이로 말미암아 천우(天祐)의 종년(終年)까지 무릇 빈공과(賓貢科)에 오른 이가 58명이 있었으며 오대(五代)의 양(梁), 당(唐)에 또 32명이 있었으니, 대개 발해(渤海)의 10여 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동국 사람이었다.

-동문선.

진사과(進士科)의 시험을 통해서 인재를 뽑는 것은 본래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다. 장경(長慶) 초기에 김운경(金雲卿)이 최초로 신라 빈공(賓貢)의 신분으로 두사례(杜師禮)가 주관한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로부터 시작해서 천우(天祐) 말년에 이르기까지 빈공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거에 급제한 자는 모두 합쳐서 58인이었고, 오대(五代)의 양(梁)과 당(唐) 때에는 또 32인이 나왔는데, 대개 발해(渤海)의 제번(諸蕃) 출신인 10여 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동방의 인사들이었다.

-가정집.

여담으로, 중국 당나라 조정에서 자국인을 제외한 전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과거인 빈공과인데요. 여기에서 오직 우리나라 사람들인 신라/발해인들만 급제(역대 빈공과 급제자 명단을 보면, 발해인 10명만 제외하면 전부 신라인 급제자라고 하는데, 발해인도 우리나라 사람이며, 발해는 신라와 더불어서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남북국[남북조] 시대를 구성한 나라이니까요.)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인 단 한 명도 급제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이지요. 심지어, 빈공과에서의 첫 발해인 급제자(오소도)마저도 기원후 872년경에 이르러서야 배출되었을 정도로 신라인들이 빈공과 급제를 소위 싹쓸이를 해왔다고 보시면 되요. 이는 그만큼 신라와 발해 특히 신라의 학문 수준이 전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았음을 증빙해주는 가장 명확한 사례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지요. 말 그대로 전세계 최강대국인 중국의 당나라 조정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개최하는 과거제였으니, 이 빈공과가 지니는 학문적 권위는 실로 당시로썬 전세계 그 무엇도 비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고보면,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때였던 일본국(왜국)의 사람들도 분명 중국의 당나라 조정에서 개최하는 빈공과에 매번 응시를 해왔을 것인데, 신라, 발해(이 둘 중에서도 신라가 압도적이였지요.)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처럼 단 한 번도 빈공과에서 급제자(합격자)를 배출해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일본국은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 유교(유학, 성리학)문화권, 한자(한문)문화권의 국가들 중 하나인데도 말이지요. 어찌 보면, 신라와 발해 그 중에서도 신라의 빈공과 급제자 배출에 대한 독주로 인한 피해국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이는 일본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마찬가지이지만 말이지요.

더구나 개원(開元) 황제께서 어우(御寓)하시어 바다에 물결에 일지 않을 때에는, 자주 왕언(王言)을 주시어 문덕(文德)을 널리 펴시었고, 뒤에 신의 선조 흥광(興光 신라 성덕왕(聖德王), 헌영(憲英 신라 경덕왕(景德王)) 부자가 제법 능히 선(善)을 사모할 줄 안다 하여, 여러번 팔분체(八分體)의 어찰(御札, 팔분체의 어찰, 팔분어찰 곧 임금이 직접 쓴 서찰)을 하사하셨는데, 그 어필(御筆)이 용이 날뛰는 듯, 봉이 날아가는 듯하여 채전(綵牋)이 이로 말미암아 빛을 더하고 신필(神筆)이 지금까지 아직 젖어 있으니, 보옥(寶玉)을 백숙(伯叔)의 나라에 나눠줌을 일찍이 들었으나, 은구(銀鉤)를 이적(夷狄)의 시골에 하사하심은 예전에는 보지 못한 바이었나이다. 그 조지(詔旨)에 이르기를, “경(卿)을 노위(魯衛)에 비(比)하노니 어찌 번복(蕃服)과 같으랴.” 하셨나이다. 또 대력(大曆) 연간에는 천어(天語)를 내리사 이르기를, “구주(九州) 밖에 있으면서도 제후(諸侯)에 비할 만하며 만국 중에 진실로 군자(君子)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사랑으로 허물을 잊으심이요, 칭찬이 지나치심이라, 소국(小國)이 감당하지 못할 바이로소이다.



-동문선 제33권/표전(表箋) 조서 두 함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詔書兩函表]


그리고 가령 개원황제(開元皇帝)가 제위에 올라 바다에 물결이 일지 않을〔海不揚波〕당시에는 왕언(王言)을 곧잘 베풀어 문덕을 크게 펼치셨습니다. 또 이와 함께 신의 선조인 흥광(興光)과 헌영(憲英) 부자가 그저 선(善)을 사모할 줄 안다고 하여, 여러 차례나 팔분(八分) 서체(書體)의 어찰(御札, 팔분체의 어찰 곧 팔분어찰. 임금이 직접 쓴 서찰)을 하사하셨는데, 용이 뛰어오르고 봉이 날개를 치듯 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채색이 어린 전지(牋紙)가 이로 인하여 더욱 빛이 나는 가운데 신운(神韻)이 감도는 필적이 지금까지도 광택을 발하고 있습니다. 보옥을 백숙(伯叔)의 나라에 나누어 주었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은구(銀鉤)를 이적(夷狄)의 지방에 하사한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바입니다. 그 조지(詔旨)의 내용을 보면 경(卿)의 나라는 거의 노위(魯衛)에 비교된다고 할 것이니, 어찌 또 번복(蕃服)과 똑같이 대우하겠는가.” 라고 하였으며, 또 대력(大曆) 연간에 이르러 내린 조칙의 내용을 보더라도 “구주(九州)의 밖에 있지만 중국의 제후에 비길 만하고, 모든 나라 가운데에서 바로 군자의 나라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소방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지나치게 칭찬하신 것으로서, 소방의 입장에서는 감히 감당하지 못할 말씀이라고 할 것입니다.


-고운집 제1권/표(表) 조서 두 함을 내린 것을 사례한 표문〔謝賜詔書兩函表〕


이 기록들을 잘 보시다시피, 중국 당나라 조정에서는 자국의 조정(중국의 당나라 조정)에 입조해와서 자국을 섬겨오는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여기에는 구당서 외국열전, 신당서 외국열전, 책부원귀 세 기록들을 보시다시피, 돌궐국[후돌궐국 곧 돌궐 제 2왕조], 회흘국[회골국, 위구르 왕조], 토번국[티베트 왕조]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서역[서양]의 대표적인 국가들인 천축국[현 인도를 위시한 남아시아권의 모든 국가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오천축[오천축국]' 이라고도 불려왔었죠.], 파사국[페르시아, 현 이란. 당시엔 이미 이슬람 왕조 곧 우마이야 왕조에게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멸망당해 직접적으로 통치, 지배당하고 있었는데, 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잔여 세력이 중국의 당나라 조정에 입조해와 중국의 당나라 조정을 섬겨오게 된 것이죠.], 대식국[백의대식국, 흑의대식국, 이슬람 왕조 곧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그리고 불름국[불림국, 대진국, 로마-동로마]까지 모두 포함되지요.)을 신라국과 그 외 나머지 이렇게 간주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신라국은 중국의 당나라와 한 몸과도 같은 또다른 중화이며,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 중에서 단연 군자국으로써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중국 당나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시인해준 거라고 볼 수 있지요(더군다나, 중국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고 전성기로 칭송받아온 왕조이기도 하지요. 중국 역사상 통일왕조인 것은 덤이구요.). 신라국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남북국(남북조) 시대를 구성한 발해국도 신라국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포함되어왔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발해국도 중국 당나라 조정에게 해동성국으로 칭송받아올 정도로 번성했지만, 신라의 국제적 위상에는 초지일관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되요. 또, 신라, 발해 이 둘 중에서도 신라가 중국의 당나라 조정이 개최하는 빈공과의 급제자(합격자)를 독점해왔던 게 괜한 것이 아니였음을 알 수 있겠죠. 흥미로우니만큼, 유익한 참조가 되어드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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