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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에서 조선국이 중국의 명나라를 능가하는 만방의 우두머리라고 언급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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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副使, 유구국 사신단 부사)가 후원(後苑)에서 인견(引見)하던 날에 말하기를, ‘내가 중국(中國)과 외국(外國)에 두루 가보지 않는 데가 없는데, 지금 귀국(貴國, 조선국)에 이르니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이 중화(中華)와 같습니다. 모든 조신(朝臣)들의 거동(擧動)이 복건(福建)의 장락현(長樂縣)의 풍속과 비슷한데 다른 외국(外國)이 미칠 바가 못되며, 임금의 활쏘는 능력도 또한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못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조실록 27권, 세조 8년(1462년) 2월 28일 계사 4번째기사

유구 국왕(琉球國王) 상덕(尙德) 경종(敬宗)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다. 그 서계(書啓)에 이르기를,

"요(堯)임금 뜰의 정화(政化)와 기자(箕子) 홍범(洪範)의 덕음(德音)으로 내 백성을 인수(仁壽)의 지역에 올려놓고 외국을 순치(唇齒)의 이웃으로 통하게 하시니, 만복(萬福) 만복하소서. 이에 성화(成化) 12년(1476)에 누방(陋邦)이 우연히 상국(上國)에 빙문(聘問)을 통하였는데 많은 은혜를 입었고, 더구나 광비(筐篚)의 진황(珍貺) 여러 가지를 회개(回介)에게 부쳐 보내셨으니, 이것은 비상한 혜택입니다. 총답(寵答)하여 존무(存撫)하신 것을 밤낮으로 잊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전하께 받들어 문주(聞奏)한 뜻은 누방(陋邦)에 칙사(勅賜)한 명신 선사(明信禪師)의 모연(募緣)으로 창건(創建)하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일찍이 시사(施捨)하는 마음을 열지 않으시어서 소원(素願)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년에 거듭 단개(單价)를 보내어 빙례(聘禮)를 닦고 전하께 고합니다. 대저 절을 짓는 까닭은 묘담(妙湛) 유희(遊戲)의 장소이고 오로지 대왕(大王)의 복리(福履)를 빌어서 영원히 만세의 기초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높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온정한 공사를 마치지 못하여 비용이 오히려 거만(鉅萬)에 미쳐야 성공을 볼 수 있겠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깨뜨리시고 전시(專施)하는 문을 열어서 동전(銅錢)·면주(綿紬)·목면(木綿) 등을 싸주시어 인덕(人德)의 은혜가 멀리 미치면, 지역은 다르나 부응(符應)이 같아서 널리 조연(助緣)을 펼 것입니다. 다시 고합니다. 인각(印刻)의 좌권(左券)을 받들어 전하(殿下)에게 두시어 부신(符信)에 합하는 것은 금후에 인원을 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래에 인호(隣好)를 닦으려면 어떻게 부신을 삼아야 할 것인지, 청컨대 회개(回介)에게 물으시어 시유(示諭)하시면 대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상국(上國) 백성 두세 사람이 타두풍(打頭風) 때문에 노를 잃고 중류(中流)에서 표류하여 누방(陋邦)의 바닷가에 표착(漂着)하였는데 빈연(賓讌)의 예로 호궤(犒饋)하여 옷을 주고 먹이고 하여 부상(扶桑)에 길을 빌리어 상국에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만일 다시 이 뒤로 바다에서 표류하는 자가 있으면 보호하여 구제할 것이니, 어찌 어복(魚腹)에 장사할 근심이 있겠습니까? 누방이 상국에 대하여 찬앙(鑽仰)의 정성을 다하여 마치 중화(中華)를 우러러보는 것 같아서 구구한 하정(下情)으로 조금 보좌할 뿐입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土宜]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춥니다."

하였고, 그 별폭에는, 호초(胡椒) 5백 근(斤), 화(畫) 3폭(幅), 절탁자(折卓子) 1개(介), 향로(香爐) 1개, 침향(沈香) 5백 근, 청자주해(靑磁酒海) 1개(箇), 사탕(沙糖) 1백 근, 야자(椰子) 10개, 감초(甘草) 1백 근, 흑시(黑柿) 2백 50근, 대랑피(大浪皮) 50매(枚), 청자발(靑磁鈸) 2매이었다.

그 사자[使] 경종(敬宗) 등이 대궐에 나오니,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김승경(金升卿)에게 명하여 인정전(仁政殿) 남랑(南廊)에서 대접하였다.

경종(敬宗) 김승경에게 준 시(詩)에 이르기를,

"구름이 봉래(蓬萊)에 둘리어 기운이 성한데,

새벽에 예관(禮官)의 인도로 중동(重瞳)을 배알(拜謁)하였네.

문장은 반고(班固) 사마천(司馬遷) 같아 당대에는 이 분이고,

양필(良弼) 기(夔)와 용(龍) 같아 중국과 동일하네.

자맥(紫陌)에서 서늘한 기운을 보내니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푸르고,

단심(丹心)이 해를 따라 기우니, 이슬에 젖은 아욱이 붉도다.

훼상(卉裳) 추계(椎髻)로 와서 조근(朝覲)하니,

함께 황천의 성대한 은혜 가운데 있도다."

하였다. 김승경이 아뢰니, 여러 승지에게 명하여 화답하게 하였다.

-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1480년) 6월 7일 병진 3번째기사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 사승(使僧) 천장(天章) 등이 내빙(來聘)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는 조선국(朝鮮國) 예조 대인 족하(禮曹大人足下)에게 받들어 올립니다. 대체로 삼한(三韓)은 만방(萬邦)의 우두머리이니, 많은 백성들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덕택(德澤)은 사이(四夷)에게 두루 미치며, 인풍(仁風)은 이의(二儀)와 같으니, 크도다 만복(萬福)이 진중(珍重)함이여!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내려오면서 음문(音問)은 통하지 못했지만 함께 맹세한 의리는 소홀하거나 간략하지 않고 온전했으며, 바다를 건너는 길이 너무 멀어서 찾아뵙는 것을 겨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마주(對馬州) 사람 평피고삼보라(平皮古三甫羅)가 지난해부터 이 섬에 내려왔습니다. 들으니 저들 일족(一族)은 대대로 귀국(貴國)에 귀부(歸付)하여 신하로 벼슬자리에 끼었는데 이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며, 폐하(陛下)와 곤의(袞衣)의 안부(安否)를 받들어 물은 다음에 말하기를, ‘근년(近年)에 이 나라의 사자(使者)라고 부르는 자가 공선(貢船)을 타고 건너와서 장사를 한다.’ 하니, 이것은 모서(謀書)입니다. 그것이 어느 곳에서 나왔는가는 모르지만 전해 듣고서 놀랍고 두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인해서 삼가 사승(使僧)을 보내어 빙문(聘問)하는 예(禮)를 이루도록 하였는데, 그에 이르기를 계약(契約)에 들어맞는 별부(別符)를 새로 내려주셔서 뒷날 사선(使船)의 성신(誠信)을 삼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우리 나라에 오는 글 중에도 역시 이 인(印)이 아니면 감히 신임하지 않겠습니다. 예물로 바치는 방물(方物)의 수는 별지(別紙)에 갖추어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방(孔方) 1만 민(緡)과 면주(緜紬)·목면(木綿)을 내려 주소서. 대국(大國)의 우로(雨露) 같은 은혜를 우러러 입어 소도(小島)의 물자가 떨어진 어려운 상황을 윤택하게 하시면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은혜에 보답하고 사례하는 것은 뒷날 음문(音問)에 기약하게 되니,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립니다."


하였는데, 별폭(別幅)에는 목향묘 소통(木香苗小桶) 1개, 야자묘(椰子苗) 2본(本), 등묘 소통(藤苗小桶) 1개, 호초 사당 부 소호(胡椒砂糖付小壺) 1개, 호초(胡椒) 30근(斤), 백단(白檀) 50근, 정자(丁子) 20근, 등석 대소(藤席大小) 2매(枚), 광엽석(桄葉席) 2매, 과자분(菓子盆) 10매, 남만 유리(南蠻琉璃) 1개, 청색 백쌍(靑色白雙) 1지(地), 화문 일쌍(華紋一雙) 염부 일쌍(染付一雙) 합(合) 7개, 배옥 유리(盃玉琉璃) 1개, 염부 일쌍(染付一雙) 백색중 유문 일쌍(白色中有紋一雙) 합(合) 5개, 만년 보수(萬年寶數) 1백 15과(顆), 향(香) 1본(本) 14근(斤), 장 8척(長八尺) 청자 수기(靑瓷嗽器) 1개, 부수 다완(付嗽茶椀) 1개, 이상 16종(種)이었다.


-성종실록 290권, 성종 25년(1494년) 5월 11일 무술 1번째기사


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이 조선에 조공품과 함께 진상한 국서(서계)에 조선국이 중화(중국)과 문물, 예의의 선진화 수준이 동급이라는 언급은 물론, '삼한(조선)은 만방(만국, 열국, 제국.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의미합니다.)의 우두머리 운운' 문구가 있는데요. 이는 조선국이 지닌 국세를 명나라가 지닌 국세보다도 높게 간주한 언급으로써, 굉장히 특이하지 않을 수 없는 언급인데요. 이것이 단순히 상국, 대국인 조선국(폐하라는 문구를 보듯이, 조선국을 황제국으로 섬겨오기도 하였죠.)에 대해 잘 보이기 위한 띄워주기식 언급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기록이 유구국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아래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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琉球國者南海勝地而鍾三韓之秀
以大明爲輔車以日域爲脣齒  

在此二中間湧出之蓬萊島也   

 

以舟楫爲萬國之津梁異産至寶充滿

“유구(琉球)라는 나라는 남해의 아름다운 경승지로 삼한(三韓, 조선)의 우수함(빼어남)을 모두 갖추었고, 대명(大明, 중국)과는 보차(輔車 아래턱뼈와 잇몸)의 관계이고, 일역(日域, 일본)과는 순치(脣齒 입술과 치아)의 관계로 두 나라 사이에서 솟아난 봉래도(蓬萊島 신선이 사는 낙원)이다. 배(舟)와 노(楫)로서 만국의 가교(津梁)가 되어 각종 물산과 보물이 가득하다.”


-유구국의 만국진량의 종(기원후 1458년경에 주조되었습니다.) 문구.


이는 여러분들께서도 잘 보시다시피, 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이 기원후 1458년경에 주조한 종인 만국진량의 종입니다. 만국진량의 종에는 중국의 명나라와 일본국(왜국)은 그저 보차(아래턱뼈와 잇몸), 순치(입술과 치아)의 긴밀한 관계라고만 적어놓았을 뿐인데, 오직 조선국(삼한)만 조선의 우수함을 모두 갖추었다고 말해, 조선국을 천하 제일의 선진국(문명국)으로 묘사해, 오히려 명나라를 뛰어넘는 선진국으로 묘사한 게 가장 주목됩니다. 유구국이 조선에 조공품과 함께 진상한 국서(서계)의 '삼한(조선)은 만방의 우두머리 운운' 이라는 문구가 단순히 띄워주기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칭송해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였음은 물론,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에 저술한 유구의 대조선(조선에 대한) 조공 기록을 자료 대질, 교차검증하게 해줘서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의 공신력을 더더욱 높여준 이른바 '조선판 칠지도' 내지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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