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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목민 관련 이세계물이 알고 보면 과한 설정이 아닌 이유. 부제:현실은 만화, 영화 등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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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본에서 근래 들어 성행하고 있는 이세계물들 중 하나인데요. 보시다시피, 일본에서 평범한 학생이였던 주인공이 굉장히 낙후된 이세계의 유목민 집단에게 넘어가서 이들을 교화시키는 내용이지요. 어찌 보면, 일본의 이세계물의 보편적인 내용들 중 하나인데, 이 만화는 그걸 가장 강하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두고서 아무리 이세계라고 해도 설정이 과하다는 비판들이 많던데, 사실 실제 역사에선 이보다 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아래의 관련 기록들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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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이다. 고려에서 처음 올 때 나이가 이미 60여 세에 이르렀다. 형 아고내(阿古迺)는 불교를 신봉했으며, 고려에 남아 따라오지 않았다. 아고내는 말하기를 “후세 자손이 유능하다면 반드시 서로 만날 것이다. 나는 떠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오직 아우 보활리(保活里)만이 시조와 행동을 함께 하였다. 시조는 완안부의 복간수 물가에 거주했고, 보활리는 야라에 거주했다. 그 뒤 호십문이 갈소관을 태조에게 바치며 귀부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조상 세 분 형제가 서로 헤어져 떠나갔는데, 자신은 아고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중략)


始祖居完顏部僕幹水之涯,保活里居耶懶。
其後胡十門以曷蘇館歸太祖,自言其祖兄弟三人相別而去,蓋自謂阿古乃之後。
石土門、迪古乃,保活里之裔也。
及太祖敗遼兵於境上,獲耶律謝十,乃使梁福、斡荅刺招諭渤海人曰:
「女直、渤海本同一家。」
蓋其初皆勿吉之七部也。
始祖至完顏部,居久之,其部人嘗殺它族之人,由是兩族交惡,哄鬥不能解。
完顏部人謂始祖曰:
「若能爲部人解此怨,使兩族不相殺,部有賢女,年六十而未嫁,當以相配,仍爲同部。」
始祖曰:
「諾。」
乃自往諭之曰:
「殺一人而鬥不解,損傷益多。
曷若止誅首亂者一人,部內以物納償汝,可以無鬥,而且獲利焉。」
怨家從之。
乃爲約曰:
「凡有殺傷人者,征其家人口一、馬十偶、牸牛十、黃金六兩,
與所殺傷之家,即兩解,不得私鬥。」
曰:
「謹如約。」
女直之俗,殺人償馬牛三十,自此始。
既備償如約,部衆信服之,謝以青牛一,並許歸六十之婦。
始祖乃以青牛爲聘禮而納之,並得其貲產。
後生二男,長曰烏魯,次曰斡魯,一女曰注思板,遂爲完顏部人。

시조(始祖)가 완안부(完顏部)에 이르러, 오래 거주(居)하였는데,
그 부인(部人/부족민)이 일찍이 타족(它族/다른 부족)의 사람을 살해(殺)하였는데,
이런 이유(由)로 양쪽(兩) 부족(族)이 교악(交惡/서로 미워함)하니,
홍투(哄鬥/떠들석하게 싸움)하여 해결(解)이 불능(不能)하였다.
완안부(完顏部) 사람이 시조(始祖)에게 일컬어 말하길
「만약(若) 능히(能) 부인(部人/부족민)을 위하여 이 원한(怨)을 해결(解)하여,
양족(兩族/양 부족)으로 하여금 상살(相殺/서로 죽임)하지 않게 된다면,
부족(部)에 현녀(賢女)가 있는데, 연령(年)이 60이고 미가(未嫁/시집가지 않음)하였으니,
당연히(當) 상배(相配/서로 짝 지음)함으로써, 이에 동부(同部/같은 부족)로 삼겠다.」
시조(始祖)가 말하길
「허락(諾)한다.」
곧 스스로 왕유(往諭/가서 회유함)하여 말하길
「1인(人)을 죽이고 싸움이 해결(解)되지 못하니, 손상(損傷)이 익다(益多/많아서 넘침)한다.
어찌 曷若止誅 수란자(首亂者/난을 일으킨 우두머리) 1인(人)을 주살(誅)함과 같이 지(止/그침, 멈춤)하지 않는가? ,
부내(部內)가 물건(物)으로 너에게 납상(納償/배상)하면,
무투(無鬥/싸우지 않음)할 수 있으며, 게다가 획리(獲利/이득을 얻음)도다.」
원가(怨家/원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종(從/따름)하였다.
곧 약조(約)하여 말하길
「무릇 사람을 살상(殺傷)한 자(者)가 있으면,
그 가인(家人) 한 사람과 말 10 우(偶/짝, 쌍) 및 자우(牸牛/암소) 10마리와 황금(黃金) 6 냥(兩)을 징(征/취함)하여,
더불어 살상(殺傷)의 집에 소속(所)되게 하면,
곧 양(兩)쪽이 해결(解)하여, 사투(私鬥/사적인 싸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말하길
「근여약(謹如約)」이라 한다.
여직(女直)의 풍속(俗)은, 살인(殺人)은 마우(馬牛/말과 소) 30 마리로 배상(償)하는데, 이로부터 시작(始)되었다.
이윽고 배상(償)을 약조(約)와 같이 준비(備)하고는,
부중(部衆/부족 무리)가 신복(信服/믿고 복종함)하였고,
청우(青牛/흑소) 1마리로써 사례(謝)하였으며,
나란히 60세의 부(婦/아내)의 귀(歸/시집감)를 허락(許)하였다.
시조(始祖/함보)는 곧 청우(青牛/흑소)로써 빙례(聘禮/신랑이 신부측에 주는 혼례 예물)로 삼아 납(納/보냄)하였고,
나란히 그 자산(貲產)을 득(得)하였다.
후(後)에 2남(男)이 태어났는데, 장자(長)는 말하길 오로(烏魯)이며, 차자(次)는 말하길 알로(斡魯)이며,
1녀(女)는 말하길 주사판(注思板)이며, 마침내 완안부(完顏部) 사람이 되었다.

-금사 시조 본기 기록 중.

金國主阿骨打殂於軍前。
금국(金國)의 주인(主) 아골타(阿骨打)가 군전(軍前)에서 조(殂/죽음)하였다.

神麓記曰:
女真始祖掯浦出自新羅奔至阿觸胡無所歸
遂依完顏因而氏焉
六十未娶是時酋豪以強陵弱無所制度
掯浦劈木為克如文契約
教人舉債生息勤於耕種子者遂致巨富。
若遇盜竊雞豚狗馬者以桎梏拘械用柳條笞撻外賠償七倍法令嚴峻果斷不私
由是達近皆伏號為神明
有鄰寨鼻察異酋長姓結徒姑丹小名聖貨者有室女年四十餘尚未婚
遂以牛馬財用農作之具嫁之於掯浦
後女真眾酋結盟推為首領
生訛辣魯繼其父業訛辣魯生佯海佯海生隨闊自幼習射
采生長而善騎射獵

신록기(神麓記)에서 말하길
여진(女真)의 시조(始祖) 긍포(掯浦)는 신라(新羅)로부터 도망쳐 나와 아촉호(阿觸胡)에 이르렀는데 돌아갈 곳이 없었다.
마침내 완안부(完顏)에 의지(依)하니 이로 인(因)하여 씨족(氏)으로 삼았다.
60이 되도록 미취(未娶/장가들지 못함)하였는데,
이때 추호(酋豪/추장, 부족)는 강자(強)가 약자(弱)를 능멸(陵)하여 제도(制度)가 있는 곳이 없었다.
긍포(掯浦)가 벽목(劈木/나무를 쪼갬)하여 문서(文)와 같이 계약(契約/약속을 맺음)을 이루워냈다.
사람들로 하여금 거채(舉債/빚을 냄)하고 생식(生息/이자가 늘어남)하게 하였으며,
근면(勤)하게 경(耕/밭)에 종자(種子)를 뿌려 마침내 거부(巨富/큰 부)를 이루웠다.
만약(若) 도적(盜)이 계(雞/닭), 돈(豚/돼지), 구(狗/개), 마(馬/말)를 절(竊/훔침)함을 우(遇/만남)하면,
질곡(桎梏/쇠고랑과 차꼬)으로써 구계(拘械/형틀에 묶음)하고 유조(柳條/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하여
태달(笞撻/채찍질)하며,
그 외(外)에 7배(倍)로 배상(賠償)하는 법령(法令)을 엄준(嚴峻/매우 엄함)하고 과단(果斷/일을 딱 잘라서 결정함)하였고 사사(私)롭지 않았다.
이런 이유(由)로 근방(近)이 모두 이르러 복종(伏)하여 신명(神明)이라 호칭(號)하였다.
인근(鄰) 채(寨)인 비찰이(鼻察異) 추장(酋長)인 성(姓)이 결도고단(結徒姑丹)이고
소명(小名/어릴 적 이름)은 성화(聖貨)라는 자(者)에게
나이가 40여 세인 실녀(室女/처녀)가 있어 아직 미혼(未婚)이었다.
마침내 우마(牛馬)로써 농작(農作/농사를 지음)의 기구(具)를 재용(財用/재물로 사용)하여 긍포(掯浦)에게 가(嫁/시집감)하였다.
후(後)에 여진(女真)의 중추(眾酋/추장 무리)가 결맹(結盟)하여 추대(推)하여 수령(首領)으로 삼았다.
와랄로(訛辣魯)를 낳았으며, 그 부친(父)의 업(業)을 계승(繼)하였다.
와랄로(訛辣魯)는 양해(佯海)를 낳았고,
양해(佯海)는 수활(隨闊)를 낳았는데, 어릴 적부터 습사(習射/활 쏘는 것을 배워서 익힘)하였다.
풍채(采)가 성장하여서는 장대(長)하였고 기사(騎射/말을 타고 활을 쏨)하고 사냥을 잘하였다.

-삼조북맹회편 기록 중.
 
금(金)나라는 본래 우리 나라의 평주(平州) 사람이 세웠으므로 우리 나라를 부모의 나라라 하였고, 윤관(尹灌)이 9성(九城)을 쌓은 선춘령(先春嶺)으로 경계를 삼아 금나라가 망할 때까지 군사력을 더하지 않았습니다.

-성종실록 134권, 성종 12년(1481년) 10월 17일 무오 1번째기사
 
이는 여진족 더 정확힌 여진족이 강성할 때 세운 금나라 그 이후에도 자신들의 시조를 신라-고려인으로 여겨온 기록들입니다. 여진족이 본시 대단히 미개했으나, 신라가 크게 분열되어 후삼국 시대가 열릴 때 한 신라인 집단이 여진족들의 거주지인 만주대륙에 넘어왔고, 이 신라인 집단으로 인해 문명의 개념을 익히어 금나라를 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기록들입니다. 이 신라-고려인 집단이 이를 기반으로 여진족 더 정확힌 여진족의 금나라 황실의 시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신라에서 후삼국을 거져 고려로 왕조가 바뀌던 시점 당시에 유의미한 세력이 아니였거나 세력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이 여진족들이 거주하는 만주대륙으로 넘어갔던 것으로 보이구요. 이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고조선~조선)들이 동방(해동. 만주대륙-한반도-일본[왜]열도-유구[류큐, 현 오키나와]열도)의 최강대국인 것과 동시에 기원후 1800년대 중반(근현대사가 시작되는 시점 곧 영국에 의해 시작된 산업혁명이 만개한 시점이지요.) 이전의 시대 동안 전세계의 최강대국, 최선진국인 중국의 역대 조정들로부터 전세계의 압도적인 일등국으로써 대접받아왔음은 물론, 규모가 중국의 역대 왕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을 뿐, 종합적인 선진화 수준은 중국의 역대 왕조들과 동급이고, 전세계의 모든 타국들과는 비할 수 없다고 칭송을 받아온 나라답게 동방 곧 해동에 확고한 영향력을 끼쳐온 사례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 과한 설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일본의 유목민 관련 이세계물이 알고 보면 실제 역사에선 더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과한 설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울 따름이지요. 현실이 만화, 영화 등보다 더하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이 된다고나 할까요? 물론, 이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 주체가 된 실제 역사였긴 했지만요. 유익한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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