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마다 다소의 연도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이 시기는 소빙하기로서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기근을 겪었던 때로 여겨지고 있다.
한랭한 기후에 따른 기근과 식량 결핍에 의해 동아시아3국은 예전에는 교역할 필요가 없던 곡물의 유통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곡물의 유통이 시급했던 쪽은 임진왜란 직후 대기근을 겪은 조선이었다. 조선은 소위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대기근을 겪게 되고 급히 명에 식량을 요청한다. 그러나 명 역시도 기근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은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음에도 성과를 보지 못한다. 인상식(人相食)의 기근은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 군량을 보급하던 산동과 요동마저 극심한 기근이 덮친 상황에서 명은 조선을 원조할 곡물이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기근을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그 결과 1593년 말에 압록강 하구인 중강에서 공식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명이 곡물을 공급하고 조선이 곡물을 받는 관계는 만주족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든다. 후금 건국을 선언함에 따라 명과의 무역이 차단되고 명에 우호적인 몽골·조선에 둘러싸인 만주족은 식량 부족이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었다. 17세기 초는 어느 국가이던 흉작을 경험하고 있었으나, 그 정도는 농경의 관습이 빈약하던 만주족이 더 심각했다. 만주족은 기존의 무역 차익과 약탈 등으로 재물은 적지 않았으나 식량이 부족하여 만주 사회에 곡물가격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식량 부족은 치안에도 영향을 주는 등 크나큰 사회 문제로 부상하였다. 이 때문에 명과 조선 사이에서 급격하게 군사력이 강대해진 만주족은 조선에게 곡물을 요구하며 국경지대에서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누르하치가 1616년 후금을 건국하고 1621년 요동을 점령한 이후 만주족은 명과의 무역이 완전히 막히게 되었으며, 중강에서의 교역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은 만주족이 부족한 곡물과 물자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만주족의 절박한 심정과는 별개로, 조선은 만주족에게 교역을 통해 식량을 공급할 형편이 아니었다. 1622년 모문룡이 철산 앞바다의 가도를 근거지로 삼으면서 조선에 곡물공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명에게 식량 원조를 받았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모문룡에 대한 곡식의 지원은 해마다 7~9만 석을 넘었고 1626년 7월에는 14만 석 이상이었다. 조선 역시 한랭한 기후와 기근으로 인해 곡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으나 명의 ‘재조지은’을 생각하면 모문룡에 대한 곡물 지원을 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은 임진년 12월 곡물 8만석을 명으로부터 원조 받았고 그 이듬해에는 산동의 양곡 10만 석을 원조 받았다. 유입된 곡물은 모두 구황에 쓰이기보다는 군대에 공급하는 군량으로 쓰인 것이 대다수이나, 조선은 그나마의 곡물이라도 받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이후에도 수십만 석의 곡물이 조선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문룡의 군대에 지원한 곡물의 양은 선조 때 명의 곡물원조를 훨씬 상회하는 양이었다. 모문룡 군대로의 막대한 곡물 유출로 인해 만주족의 곡물 수입량이 극히 적었을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만주족은 재물이 없어 곡물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곡물이 없어 기근에 시달리는 형편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만주족이 조선에 중강개시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묘호란 이후 사신으로 간 박난영은 조선 정부에 홍타이지의 전언을 전한다.
조선과 강화를 맺은 것은 정성과 믿음으로 상대하면서 유무(有無)를 교환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모병(毛兵:모문룡을 가리킨다)은 돈도 안 주고 양식을 요구한다고 들었으나, 나는 이런 기근을 당하여 돈을 주고 매매하려는 것이다. 만일 서로 구원하지 않으면 유감이 없을 수 없다. 양서(兩西) 한 편이 보전되고 6도(道)도 역시 완전하니 서로 구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르면, 홍타이지는 조선과 강화를 맺은 이유를 교역을 통해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당시 조선은 심각한 기근을 겪고 있었지만, 3천석의 곡물을 제공하고 중강개시를 허가했다. 만주족은 중강 개시가 열리자 곧바로 회령 개시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중강 개시의 시기를 춘·하·추의 세 계절로 정하되 사정이 허락될 경우 기한에 구애됨이 없이 수시로 왕래 교역할 것까지도 제의하였다. 이처럼 만주족은 조선과의 전쟁을 식량 문제를 해결할 탈출구로 여기고 있었고,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곡물을 수입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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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하였다시피, 당시 만주족은 정치적으로는 명이라는 초거대 제국을 상대로 운명을 건 대립상태에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중앙집권화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대기근으로 인해 곡물이 부족하였고, 이를 자가생산으로는 충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주요 논문들의 내용도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빛을 발하여 만주족의 침략을 저지하였다는 주장이 아니라, 당시 국제정치상의 역학관계에 주목하는 한명기 교수의 이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인조와 서인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해서는 차치해 두고, 광해군이 1627년까지 집권했다 하더라도 정묘호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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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둘기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