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해결을 할 수 있다.61

지금 여러 곳에서 집으로도 잘 안치려고 하는 이른바 반지하 빌라도

일단 평지에 있거나, 언덕이라도 최소 버스정류장 도보 10분 이내라면 중산층이나 서민층 중 상위 서민층의 주거형태였습니다.

서민들은 말 그대로 달동네 언덕 꼭대기에, 무질서하게 지어진, 옥외 화장실을 사용하던 10평대 주택에 살았었고

그보다 더 아래 계층은 그런 집의 방 한칸에 온가족이 세들어 살던가, 10평도 안되던 무허가 주택에 사는게 다반사였죠.

서울에서 198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살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설령 자기 집은 저렇지 않더라도 저런 동네 한번쯤은 가봤을 것입니다.

보일러 켜면 일단 겨울에 추워서 못참을만 하지 않고, 샤워기 호스를 이용 겨울에 더운물에 샤워할수만 있는 구조면 일단 중산층 주택이였죠.

서민주택에서 샤워? 여름에나 가능하고 겨울에는 연탄불에 물 데워서 세수나 더운물에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지금과는 달리 시내 골목 골목마다 공중목욕탕이 발달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반지하 빌라는 하위 서민층들이 살고 있지요. 중산층들은 아파트 살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절로 된 것일까요?

바로 1990년대 초반에 엄청난 양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기 신도시 및 재개발, 재건축 등.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는데 서민주거에도 영향이 있는가?

상위 주거형태의 대량공급이 있는 경우, 시차를 두고 하위 주거형태까지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20억짜리 아파트를 대량 공급한다, 서민들은 그거 매수하지 못하겠지만 15억짜리 아파트 있는 분들이 돈 좀 보태서 주거의 업그레이드를 할 것입니다.

물론 대량 공급 때문에 가격도 안정될 것이고, A급 주택의 가격이 안정되면 B급 주택의 가격이 그걸을 넘을 수 없는 관계로 B급 주택도 안정되지요.

이게 나중에는 하위 수준 주거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달동네 무허가주택에 살던 사람들이 반지하 빌라로 옮기고, 반지하 빌라에 살던 사람들이 지상층 빌라로 옮기게 되지요.

그런 현상이 수십년동안 지속되다 보니 지금의 주거형태별 선호도가 만들어진 것이고요.

과거와 비슷한 주거비용으로 더 좋은, 더 발전된 주택에 거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상위 주거형태의 대량 공급이 전체적인 주거의 업그레이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위 주거형태를 대량 공급해 봐야 해당 주거형태나 바로 윗단계의 주거형태 정도에 영향을 끼칠뿐 전체적인 영향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위 주거형태 가격하락으로 상위 주거형태는 일종의 명품화, 차별화되어 실질주거의 업그레이드는 없으면서도 가격만 올라갑니다.

다만, 상위 주거형태의 공급이 최하위까지 미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고

성질 급한 한국인들 취향과, 그런 사고방식의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비싼 주택만 공급한다는 불만이나 털어놓고, 여론도 그런 담론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처럼 대중의 아우성에 좌지우지되는 분위기에서, 과연 제대로 된 공급정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경제야말로 살아있는 생물이고, 한치앞만 보다가는 결국 말썽은 일어나게 마련이죠.

댓글들을 보면 저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찰은 없고 단편적인 사실에서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이말 저말들 하는데

결국 그런식의 분위기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허가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위험을 무습쓰고 개조해서 임대하는데에는 그만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수요가 없던가, 임대료가 무허가 공간 개조비용 및 벌과금을 대지 못할 정도로 낮게 형성된다면, 저런것 만들라고 강요해도 알아서 안만듭니다.

최소 주거환경을 강제한다? 그러면 그만한 비용을 치뤄야 하고 그런 비용을 치르지 못하는 계층들은 더 음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관계 관청 관료들이 생각이 없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게 아니지요.

ps. 지하철공사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공사기간 동안은 도로는 더 막히고 교통체증은 심해지죠. 그렇다고 도로 막히니 지하철공사 하지 말아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완공 후에 어떻게 될지 다들 아니까 참고 기다리지요. 그런데 왜 주택공급에서만은 당장의 고통을 참지 못할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큰것이, 재개발 초창기인 40여년 전부터 개발에 대한 반대 담론을 생산하고 대중들에게 전파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돌아다니는 담론들을 보면 몇개의 진부한 레파토리들이 수십년간 계속 돌아다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