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을 보고(스포)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연출한 1961년 작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오즈 야스지로 세계의 핵심 키워드인 '가족'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고하야가와 만베이는 두 딸과 혼자가 된 며느리가 있습니다. 장녀인 후미코 부부와 교토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만베이. 둘째 노리코와 며느리 아키코는 인근 대도시인 오사카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베이는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근 들어 일에 소홀히 하며 잦은 외출을 하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큰 딸은 예전에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외도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라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추궁합니다.

한편 노리코는 같은 직장에서 짝사랑한 남자가 삿뽀르로 떠나게 되어 원치 않은 맞선을 보게 되고 아키코의 작은 시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그녀에게 자신의 지인은 철공소 사장을 소개하려 하지만 아키코는 이를 원치 않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베이의 몸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아 모든 가족이 쿄토로 모이게 됩니다.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무더운 늦여름으로 시작으로 해서 초가을에 끝을 맺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버지는 류 치슈로 대표되는 오즈의 다른 영화의 아버지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야말로 한량입니다. 젊었을 때 바람의 상대를 우연히 만나 다시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딸인지도 모르는 그녀의 딸에게 아버지라고 불리며 선물을 요구받기까지 합니다. 딸들 특히 큰 딸 후미코가 질색하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만베이의 캐릭터가 그다지 미워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오즈 영화중에 가장 유머가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는 양조장 직원과 만베이의 미행 장면인데요. 미행을 눈치 챈 만베이가 직원을 불러 팥빙수를 먹고 헤어진 뒤 각자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장면이 굉장히 유머러스합니다.

오즈 영화답게 큰 사건 없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과 가족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선 만베이의 형제들 중 몇 명은 꽤나 냉정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의외로 울컥하는 순간은 만베이의 여동생이 흐느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이전엔 정이 안 가는 인물로 보였는데 그 장면에선 울컥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이런 인물도 우리 주변에 많아서 그런지 확 공감이 가더라고요.

너무 세상을 일찍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의 작품 중 보지 않은 작품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슬픔정도로 이 작품 또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p.s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 류 치슈가 엔딩 부분에 카메오로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