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혜영, 혜영씨]를 보고(스포)

김용삼 감독이 연출한 <혜영, 혜영씨>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의 끝과 시작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혜영과 성우 커플은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성우는 대구를 사고 혜영이 타 지역에서 주말마다 내려와 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은 3년 이상 사귄 커플로 더 이상의 설레는 감정은 없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서로가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도가 살짝 넘어 보이는 혜영의 주먹질(?)과 매를 부르는 성우의 태도가 둘의 관계를 살짝 위태롭게 만듭니다.

현재에서 이야기는 둘이 처음 만나 소개팅 그러니까 2011년 12월 이승엽 선수의 한국 복귀 기사가 난 날로 돌아갑니다. 둘은 하루 종일 술을 먹고 당시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혜영의 집으로 함께 갑니다. 성우는 욕구(?)를 꾹 참고 혜영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그만 오해를 불러일으켜 얻어터집니다. 하지만 이내 혜영은 성우의 세심한 배려에 호감을 갖고 둘은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500일의 썸머>처럼 복잡한 시간의 흐름을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가진 로맨틱코미디입니다. 일반적인 로코와는 달리 리얼함이 중심이 되는 작품입니다. 과거엔 혜영의 집이 현재는 성우의 집으로 바껴져 있는데 이 공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성우가 혜영 몰래 전여친을 만나는 것 말고는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혜영과 성우의 대화가 영화의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삼성 라이온즈의 성적, 집 앞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그리고 사랑에 대한 둘의 의견을 나눕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원성'입니다. 둘은 처음 사귈 때부터 첨예하게 의견이 나뉩니다. 그리고 결국 이 영원성에 대한 답은 오프닝과 엔딩을 연결시키는 둘 인물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영화 초반부에서 여성 캐릭터의 폭력성과 남성 캐릭터의 태만함이 솔직히 보기 싫을 정도였는데 이 모든 게 연애의 과정 속에서 오는 반응이었고 가장 중요한 서로에게 사과를 하고 반성을 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영화가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상했던 것 보다 유머코드가 많이 있는 작품이고 타율도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취향을 어느 정도는 탈 것 같고 특히나 대구 지역의 건축물 혹은 삼성 라이온즈의 전성기 시절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혜영의 오빠인 성준이 동생 집에 방문하는데 동생은 없고 연인은 성우와 단 둘이 밤새며 술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랩퍼인 성준의 취중 래핑과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연출되어있습니다.

가벼운 톤을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작품이지만 '영원'이라는 키워드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 지진(아마도 동경 대지진)의 뉴스가 여러 번 등장하고 성우의 상상에서 대구에 실제 있는 건축물(서양화 전공인 혜영이 취미삼아 그린 그림이기도 한)이 쓰러지는 모습이 둘의 사랑에 대한 영원성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엔딩을 보면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로컬무비로서도 '대구'라는 도시를 적극적으로 영화 속 이야기에 녹여낸 것은 아니지만 대구의 문화를 투영시켜 두 인물이 고민하는 것을 잘 녹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