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밀회]를 보고(약스포)1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1949년 작 <밀회>는 가정이 있는 두 중년의 남녀의 멜로드라마이자 제1회 깐느영화제의 그랑프리 수상작입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주부인 로라는 매주 목요일 마다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가 쇼핑 등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 대합실에서 대기를 하던 그녀는 눈 속에 먼지가 들어가게 되고 이 먼지의 제거를 옆에서 다른 기차를 기다리던 의사인 알렉이 도와줍니다. 둘은 우연히 몇 번 마주치게 되지만 간단한 인사만 나누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우연한 마주침이 여러 번 되고 식당에서 합석을 하고 대화를 나눈 둘은 서로에게 깊은 관심이 생깁니다. 이 관심은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지만 각자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매주 목요일 알렉의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만 로라의 지인들과 마주침과 동시에 거짓말로 남편을 속이는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 그리고 알렉 또한 밀애를 즐기려던 모습을 친구에게 발각되는 순간 로라와 알렉은 자신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밀회>는 <콰이강의 다리><올리버 트위스트><닥터 지바고> 그리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연출했던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린의 초기작입니다. 필모의 전성기와 후반기엔 대서사시와 스펙터클이 강조된 작품을 만들었던 데이비드 린이었지만 초기작인 <밀회>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이야기 자체도 아주 고전적이고 어찌 보면 너무나 익숙한 신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회>는 여전히 훌륭한 멜로드라마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역 대합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정서와 함께 '사랑'이라는 찰나적이고 강한 임팩트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조연 캐릭터들의 코믹 연기가 흥미롭습니다. 가장 유머스러운 장면은 역시나 로라의 수다쟁이 친구 캐릭터와 로라의 대화였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로라가 우연히 만난 수다쟁이 친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장면에서 로라는 독백을 그녀를 진정 죽이고 싶다고 합니다.

영화의 구성은 두 주인공의 이별 직전의 상황에서 시작해 엔딩 장면에서 또 다시 프롤로그 장면의 모습을 다른 앵글과 연출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로라의 독백(내레이션)으로 마치 액자식 구성으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이는 난로 앞에 앉아 남편을 마주보고 읊어대는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모습으로 연출됩니다.

두 배우의 애틋한 감성이 잘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야되는 철로길 위해서의 두 배우의 모습은 정말 애틋합니다. 그것이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되던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은 그야말로 충실하고 진실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를 연기한 셀리아 존슨과 트레버 하워드의 연기 앙상블은 정말 훌륭하고 두 배우의 대표작이기 되기도 합니다.

<아리비아의 로렌스>로 처음 알게 되었던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20여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멋진 멜로드라마였고 익숙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어떻게 매력 있게 연출해내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