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번 칸]을 보고(약스포)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이 연출한 <6번 칸>은 고대 암각화를 보러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여성과 그녀와 같은 기치 칸에서 만난 남성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핀란드에서 온 라우라(세이디 하를라)는 연인이자 교수인 이리나를 함께 약속했던 여행이 취소되고 홀로 고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 무르만스크 행 열차에 오릅니다. 러시아 횡단기차에 올라 탄 라우라는 같은 칸에 탄 남성을 보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들어 승무원에게 다른 자리를 알아보지만 실패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료하(유리 보리소프). 그는 광부로 일하고 있는데 라우라가 기차에 오를 때 이미 보드카에 만취되어 있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입니다.

하룻밤을 어렵게 보내지만 연인이 없고 료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라우라는 중간 정착역에 내려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통화 속 이리나의 목소리를 듣곤 다시 무르만스크 행 기차에 오릅니다. 다행히 술에서 깬 료하는 최악의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 라우라. 하지만 하룻밤 정차해야하는 기차에서 밤을 보내기 힘든 라우라는 료하의 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되고 그와 좀 더 친근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같은 핀란드에서 온 남자 여행객을 자신의 칸으로 들인 라우라를 보고 낙담한 료하는 삐친 채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행객이 라우라의 소중한 물건을 훔치고 달아난 뒤 둘의 관계는 오히려 다시 좋아지지만 결정적인 순간 료하는 자취를 감춥니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을 만든 유호 쿠오스마넨의 작품은 <6번 칸>은 전작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격정적인 멜로드라마라기 보다는 슴슴하지만 굉장히 리얼한 정서를 안겨주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라우라의 캐릭터를 보면 이리나의 관계에서 오는 분노를 굳이 표출하지 않습니다. 또한 료하도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라우라에게 응하지 않고요.

러시아의 다양한 도시에 정차하지만 북극에 가까운 도시들을 방문해서 그런지 도시의 특징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데 90년대 중후반, 그러니까 휴대폰이 나오기 직전의 시대 배경인 이 작품은 아날로그적인 정서가 가득 담겨져 있는 작품입니다. 소니 워크맨, 홈비디오카메라 등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합니다.

러시아의 한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기차 안에서의 촬영은 대부분 핸드헬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핸드헬드이긴한데 기차 안 좁은 공간에서 이 촬영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두 배우의 케미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료하 역의 유리 보리소프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당시에 러시아 청년을 잘 소화해냈고 라우라 역의 세이디 하를라 또한 주인공으로서 영화 전체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공고히 하고 있는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이 과연 차기작엔 어떤 소재와 배경을 가지고 돌아올지 벌써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