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약스포)

마틴 맥도나 감독이 연출한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작은 섬에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이 차이는 꽤나 나지만 둘도 없는 친구인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하루사이에 남남처럼 지내는 관계가 됩니다. 파우릭 언제나처럼 점심 식사 이후 콜름의 집에 방문해 펍에서 맥주 한 잔을 권합니다. 그런데 콜름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홀로 문답을 하던 파우릭은 혼자 펍으로 가 기네스를 한 잔 하는데 콜름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파우릭에게 다시는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합니다. 파우릭은 그저 황당할 뿐이죠.

찜찜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파우릭은 평소에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도미닉(배리 키오간)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도착해선 여동생인 시오반(켈리 콘돈)에게 콜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콜름에게 다시 대화를 시도하지만 콜름은 다시 한 번 말을 걸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문 앞에 던지겠다고 합니다. 콜름은 바이올린을 취미로 연주하는 사람이라 그에게 손가락은 너무나 중요한 신체 부위이기도 합니다.

이젠 파우릭 입장에서도 화가 나기 마련이라 그도 대화를 피하는 이유를 직접 듣기로 합니다. 그 이유는 어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생을 더 이상 낭비하기 싫다는 콜름 입장에선 꽤나 중요한 결심이 되기도 합니다.

훌륭한 연출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스토리텔러인 마틴 맥도나의 신작 <이니셰린의 밴시>는 평범한 관계의 두 남자가 서서히 멀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니셰린이라는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정확한 시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일랜드 전쟁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시기로 추측됩니다. 영화 속에서도 서너 번 섬 건너 육지에서의 폭탄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아마 두 남자의 관계가 아일랜드 전쟁을 은유하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상을 두 인물에 투영한 것 보다 사소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악의 없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우릭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해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파우릭으 펍에서 아무 의미 없는 예를 들면 자신이 키우는 당나귀가 똥 싸는 이야기를 두 시간씩 한다든지 여동생의 앞길을 막고 있는 상황 등이 영화 속에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진정한 대화 상대이기도 한 도미닉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야기 측면에서도 흥미롭지만 유니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네 배우의 연기 아니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미 마틴 맥도나의 전작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콜린 패럴과 브렌던 글리슨은 <킬러들의 도시> 이후 재회를 했는데 그 때 이상의 앙상블 연기를 이 작품에서 보여줍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발견한 켈리 콘돈은 오빠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닌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베리 키오간은 이번 작품에서 동네 바보(?)로 등장하는데 어떤 역을 하던 이 작품에서도 캐릭터를 완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더라고요.

코미디가 기반인 작품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톤은 아닙니다. 아일랜드 역사와 '밴시'라는 일종의 유령의 개념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