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타 마티네즈 페레다 감독이 연출한 <피기>는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이 납치되는 모습을 방관한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10대 소녀 사라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눈에 띠는 외모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수영을 하러 다닙니다. 어느 날, 수영장에 도착한 사라는 한 남자를 보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민하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일당 3명이 사라가 입은 수영복을 보고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숨기려고 사라는 물에 뛰어들고 수영장에 있는 남자는 그 곳을 떠납니다.

그런데 사라를 괴롭히는 세 소녀는 사라가 벗어 놓은 옷과 짐을 들고 사라져버리고 사라는 어쩔 수 없이 비키니를 입은 채 집으로 울며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옆에 있던 남자와 그의 차가 보이는데 뒷좌석엔 구타를 당한 얼굴의 소녀가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자신을 괴롭히던 소녀였습니다. 사라는 구해 달라던 그 소녀의 외침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합니다.

사라는 '당해도 싸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따로 경찰에 이를 알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어떤 시신이 발견되고 이를 쫓는 과정에서 사라는 경찰에게 진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리고 살인자로 의심되는 수영장의 남자는 사라에게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을 왕따 시킨 가해자가 납치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마치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관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며 선택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큰 이야기의 줄기와 더불어 살인자의 캐릭터입니다. 그는 이름과 출신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단지 사라에게만 관용(?)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그 감정은 단순한 배려나 동정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랑의 감정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컨대 살인마 또한 사라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내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이 생긴 건 아닌가라는 예상을 해보게 됩니다.

외모에 대한 인물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이를 공격하는 인물들에 대한 일갈과 더불어 결국 어떤 선택이 옳은지 보여주는 이 작품은 꽤나 충격적인 엔딩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라는 그 결말 뒤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드는 마무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