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익숙해질수록 더 열심히 일하라."
산업가스업계의 최고수(最高手) 편운기 삼정특수가스 전무는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그런데 일이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면 요령을 피우려 한다. 그럴수록 '조금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일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삼정특수가스는 산업용 특수가스 제조·충전 분야에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1위 기업이다. 가스를 사용하는 모든 공장과 병원에 필요한 특수가스를 용도에 맞게 혼합해 공급하며 전국에 8개의 공장과 계열사가 있다.
21세 때 LPG 판매점 첫 취직…최루가스 뚫고 배달
그의 첫 직장은 스물한 살 때인 1984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액화석유가스(LPG) 판매점이었다. 편모 슬하 5남 1녀 중 넷째인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서울북공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친누나의 도움으로 학원에 다니면서 '공조기계 냉동기능사', '가스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외항선을 타고 해외로 다니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그의 꿈이었지만, 자격증만으로 외항선 선원으로 받아주는 곳이 없자 가스안전관리자로 취업한 것이다.
당시 LPG 판매점의 '안전관리자'는 잡부와 다를 바 없었다. 대여섯명의 선배들도 모두 자격증이 있었고, 막내인 그의 주 업무는 배달이었다. 그나마 고참들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지만,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음식점 등으로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해야 했다.
가장 가벼운 가스통이 10㎏짜리였는데, 두 통을 실으면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군사정권 때라 주변의 경희대와 한국외대에서 수시로 시위·집회가 벌어졌고, 뿌연 최루탄 연기 속을 헤치며 배달했다. 한번 다녀오면 땀과 눈물이 범벅이되 며칠 동안 빨간 눈으로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그렇게 9년을 일하고 "다시는 가스업계서 일 안 한다"고 다짐을 하고 벽지 판매점에 취업했다. 그러나 적성이 맞지 않았다.
교차로신문에 난 채용공고를 보고 인천에 있는 삼정특수가스의 본사인 삼정가스공업에 입사하면서, 가스업계로 복귀했다. 서른인 1993년 1월에 입사해 예순둘인 지금은 삼정특수가스를 업계 1위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힘도 곧잘 썼다. 차량에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았던 그때는 순전히 힘과 요령으로 150~200㎏에 달하는 가스통 수백 개를 실어다 날라야 했다. 1998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인천공항 공사장까지 여객선을 타고 매일 한두 트럭 분량의 가스를 배달했다. 궂은날에는 배멀미를 해가며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배달했다. 2005년 6월 인천대교 착공 후에는 해상으로 매일 가스를 공급했다.
일이 힘들다 보니 퇴사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그 또한 힘들었고, 사고도 많이 쳤다.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질하다 파출소나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심승일 회장은 자정이건, 새벽이건 직접 와서 그를 풀려나게 벌금도 내주고, 해장국도 사 먹이면서 살뜰하게 챙겨줬다. 그는 "요즘도 가끔 회장님과 술자리가 있으면 '말썽꾸러기였다'고 놀린다"면서 "내가 생각해도 말썽을 많이 부렸는데 단 한 번도 '자른다'는 식의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편 전무는 "멀리 있는 친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큰형 같은 회장님께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막내인 회장님도 친동생처럼 챙겨주셨다"면서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 한 번도 이 회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일머리가 없던 것도 아닌데다 회사에 애정도 있으니 일도 빨리 배웠다. "회장님이 학원도 다니면서 더 공부하라"고 지원해주시기도 했다. 나름 깨달은 바가 컸다. 그 후로 수년간 저녁마다 특수가스 관련 책을 사서 공부했고, 가스 혼합 과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 온라인 강의도 들었으며, 지방으로 연수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지금도 특수가스 관련 온라인 강의가 있으면 찾아가 듣는다.
산소와 수소, 아르곤, 헬륨 등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 주요 수요처에서 필요로 하는 산업용 가스를 제조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통달해 가장 우수한 품질을 발휘할 수 있는 배합비를 찾아 이를 공식화해 매뉴얼로 만들었다. 용도와 수요에 따라 적합한 용량을 담을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의 새 가스통 제조에도 나름 역할을 했다. 생산과 관리, 영업 등 모든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면서 핵심 인재로 거듭났다.
"큰형 같은 회장님"…'말썽꾸러기' 직원이 백조로
말썽꾸러기였던 직원은 이렇게 20년쯤 경력을 쌓고 회사의 믿음직한 중견간부로, 가스업계의 핵심 인재로 거듭났다. 파주와 화성 등 새로운 곳에 공장을 세울 때마다 편 전무는 선봉장으로 나섰고, 대단한 성과를 보여줬다. 2002년 설립된 포천공장이 자리 잡도록 했고, 2009년 매출 20억원에 불과하던 화성공장에 부임해 지금 11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공장으로 키웠다.
2017년 의료용 가스 생산을 위해서는 공장의 설비에 투자해야 한다고 건의해 '유럽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기준(GMP)'을 인증받았다. 이는 삼정특수가스에서 공급한 가스로 만든 의약품은 유럽으로도 수출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21년부터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가스기술기준위원회 고압가스제조·충전 분야 위원으로 활약했다. 편 전무는 가스 관계 법령에서 시설·기술·검사 등 기술적인 사항을 상세기준으로 정해 코드화한 'KGS 코드' 재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수가스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도 정비했다. 사고위험이 높은 무허가 업소에서 특수가스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강화했지만, 의료기관의 특수가스 사용기준은 보다 완화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용할 액체산소 용기 2개를 동시에 두고 사용할 수 없었다.
용기 하나의 무게가 165㎏인데,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 특정고압가스 사용신고 대상 기준이 250㎏ 이상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산소 용기 하나를 사용하다 산소가 떨어지면 다시 공급받아야 했다. 그 사이에 환자의 목숨은 경각에 달리는 것이다.
편 전무는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조합) 회장을 맡은 심 회장과 함께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250㎏에서 500㎏으로 올렸다"면서 "고압가스와 특수가스 분야는 LPG나 도시가스 분야에 비해 종류가 다양해 법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험 요소는 더 강하게, 보다 안전한 규제는 더 완화해주는 방향으로 법률이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 전무는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조합) 회장을 맡은 심 회장과 함께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250㎏에서 500㎏으로 올렸다"면서 "고압가스와 특수가스 분야는 LPG나 도시가스 분야에 비해 종류가 다양해 법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험 요소는 더 강하게, 보다 안전한 규제는 더 완화해주는 방향으로 법률이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의' 중요…고객 공장 가동을 위해 손해 보며 가스 공급하기도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올해는 조합에서 산업가스 충전업계 회원사의 경영환경 개선과 분쟁조정 및 중재를 통한 시장 안정화를 위해 발족시킨 중재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의'를 중시한다. 2020년 탄산가스 파동 때 용접 등에 필요한 탄산가스를 구하지 못해 공장이 멈출 위기에 처한 고객사들을 위해 중국에서 시세의 두배에 가까운 1㎏당 1000원에 다급하게 들여온 탄산가스를 700원에 공급해 주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의무는 가스를 공급하는 것이었다"면서 "손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산업용 특수가스 분야는 3D 업종으로 알려져 인재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지금 대부분의 기술자가 50대 이상이고, 70대도 일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영입이 절실하다. 편 전무는 "특수가스 분야는 가스 관련 자격증이 필요하고, 전문적인 화학 지식도 갖춰야 해서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을 통한 성취도 클 것이다. 인생의 승부를 걸고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고수의 한마디 지켜야 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가스를 다루는 현장은 그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고는 사소한 실수와 익숙함으로 인한 방심에서 비롯된다. 일이 익숙해지면 가스 혼합·충전작업을 하다 잠시 한눈을 팔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작업 과정이 대부분 자동화되면서 현장이 안전해졌지만, 현장에서는 절대로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