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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추상화에 자연을 담다

붉은색 나무줄기에서 뻗어 올라간 가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땅과 하늘과 나무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고, 어떤 질서나 실체감도 찾아볼 수 없다.
온통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유동성만이 두드러지며, 붉은색, 파란색의 리듬으로 황홀한 느낌과 분위기도 암시하고 있다.

상징주의, 표현주의 경향을 보이는 피터르 몬드리안 작품인데, 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추상 미술과도, 색의 수나 표현을 절제한 그의 방법과도 많이 다르다.
이 그림은 몬드리안이 추상 미술로 이르기 전의 초기 작품이다.
그는 평생 물질을 정신의 최대의 적으로 보고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이루려 했다.
여기서는 나무의 형태보다 이면에 있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힘을 뒤엉킨 선과 황홀한 색으로 나타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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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몬드리안 ‘붉은 나무’(1909년)
당시 유럽에는 신지학이라는 유사 종교가 유행했고, 예술가가 직관의 능력을 통해서 신과 하나가 되면 자연 안에 담긴 신의 섭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몬드리안의 이 그림은 신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후 몬드리안의 그림은 입체파의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에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를 보였다.
황홀하고 유동적인 분위기가 침착하게 가라앉았고, 상징적이고 표현적인 의미로 채웠던 공간은 계획적으로 분석된 공간으로 변했다.

몬드리안은 이런 공간 안에도 역시 자연의 법칙성을 담으려 했고, 그만의 특징적 방법인 십자 무늬를 만들어냈다.
십자 무늬를 화면 구성의 원리로 삼았으며, 자연과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질서와 비례, 변화 속 리듬의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
십자 무늬의 가로와 세로 길이나 색의 농담을 조절하여 자연 속의 물질과 공허, 차 있음과 비어 있음,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의 관계를 상징하려 했다.

따라서 몬드리안 그림의 십자 무늬는 화면을 분할하는 형식적 기초이면서 자연 속의 성질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법칙성의 표현이란 점에서 몬드리안 그림의 수학적인 아름다움과 추상은 또 다른 하나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자연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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