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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칼럼] 공인의 위선과 언론의 책임

인도주의자로 알려진 유명 배우
사생활 논란에 팬들 상실감 커
비혼 출생 ‘서구식 잣대’ 거부감
어정쩡한 사과 아닌 이해 구하길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며 답답함을 넘어 황당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인도주의자로 알려졌던 공인의 도덕성이 추락하고, 여기에 당사자는 침묵하는데, 곧장 ‘비혼 출생’ 이슈가 전개된다.
모종의 의도는 없었노라 항변해도 보는 사람은 안다.
상식에 어긋난 보도가 어떤 사회적 기능을 낳는지를. 결국 본질 흐리기이다.
공인의 비도덕과 위선에 눈감는 언론의 행태는 본질과 상관없이 내 할 말만 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하고 싶은 말만 거창하게 늘어놓으면 공감하기 힘들다.

비혼 출생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꼭 필요한 화두이다.
다만, 언론 보도에는 순서와 상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 유력 일간지는 댓글 창도 꼭꼭 걸어 잠근다.
악플로 고통받다 삶을 마감한 20대 여성 배우 보호하듯, 50대를 훌쩍 넘긴 중년 남성 배우 보호에 사력을 다한다.
이게 과연 언론의 바람직한 자세일까? ‘바보야 본질은 위선이야’라는 국민의 댓글은 솜털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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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정우성은 9년간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 활동했다.
자신의 난민 옹호 활동을 담은 에세이도 출간했다.
각종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민 지원과 인권 보호에 신념을 다했다.
본업에는 더욱 철저해, 지난해 데뷔 29년 만에 ‘서울의 봄’으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다.
‘좌빨’이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자. 모델 문가비의 임신 당시 다른 여성과 교제 중이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임신 사실이 본인이 아닌 문가비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 팬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허탈함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공인의 지위를 스스로 내던진 셈이다.

일부 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호날두 봐라, 한국도 개방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는 맥락 없는 비유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출생 전부터 자녀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자신이 아버지임을 당당히 밝힌 호날두와 ‘꼭꼭 숨기도록’ 만든 정우성을 어떻게 비교하나. 정우성이 진즉 호날두와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팬들 앞에 나섰다면, 상황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비혼 출생은 세계적 추세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복지지원을 늘리자’, 모두 맞는 말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포용적 정책,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며, 정치권도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진단과 잘못된 처방이 되레 문제를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
비혼 출산 비율이 70%인 멕시코, 62%인 프랑스를 들여다본들 해결책이 나올까? 이들을 모범으로 삼아 비혼 출생을 장려하고, 그래서 출산율 전 세계 꼴찌라는 불명예에서 탈출하자는 황당한 논리를 펴는 것은 결코 아니길 바란다.

왜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다문화 사회로 발전해 온, 가족 개념이 우리와 확연히 다른 서구 사회와 끊임없이 우리를 비교할까? 왜 기혼 출산보다 비혼 출산이 오히려 높은 멕시코는 언급하면서, 비혼 출산율이 2.4%에 불과한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우리가 일본과 비슷한 4.7%에 불과하다는 것은, 서구와 다른 문화와 도덕 가치가 우리 안에 수백 년 동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역사와 규범, 도덕 체계를 무시한 처방은 필시 실패에 이를 것이다.

부모 된 도리를 저버리고 숨어 버린 이들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기는커녕, 국민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손쉬운 선택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아니다.
열악한 처지에서 아빠 없이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를 포용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미혼모, 미혼부 가정 92%가 실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하지만 순서가 있다.
친부모에 대한 인지청구소송을 수월하게 하고, 필요하면 법원이 직권으로 친자 검사를 하게 해 천륜을 저버린 부모의 주리를 트는 게 우선이다.

태어난 가정이 어떠하든 생명은 축복받아야 하고, 우리는 모두 이런 사회를 일구어 갈 책임을 진다.
하지만. 편견과 선입견, 낙인찍기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의 엄중한 현실 속에서 비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당면하게 될 깊은 상처를 떠올린다면, ‘나의 자유’를 결혼과 맞바꾸는 선택은 매우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중이 오해하고 있는 사정이 있다면, 또 그동안 성원해 준 팬들의 상실감을 떠올린다면, 청룡영화제에 나와 어정쩡하게 사과할 게 아니라, 합당한 자리를 만들어 대중의 이해를 구하는 게 도리이다.
대중은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니다, 담담한 설명을 듣고 싶다.
정우성이란 천만 배우가 가진 최소한의 도덕성을 여전히 굳게 믿는 대중의 바람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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