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할아버지는 중국동포다. 20년 넘게 구로구에 살고 있다. 한국 국적의 어머니는 몇 해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이제는 일가를 이룬 두 아들네 가족이 인근에서 살고 있다. 이웃에게도 신망이 있어서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 사이에 중재 역할을 도맡아 한다. 감기 기운이 있어 며칠 바깥출입이 뜸하면 국이나 반찬을 챙겨주며 걱정하는 한국 이웃들도 있다. 국적을 취득하고 손자들 크는 거 보면서 이대로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도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 4대가 대를 이어 한국살이를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한국에 뼈를 묻을 것 같지만 더 늙기 전에 중국으로 돌아갈까? 생각 중이란다. 중국에 친구들이 살아있고 더 결정적으로 참전 유공자로 연금을 받을 수 있어서란다. 여생에 대한 설계야 개인의 선택이니 관여할 바 아니다. 그러나 묘하게 서운했다. 할아버지에게 ‘귀화해서 노령연금이나 생계급여를 받아 보시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았다. 돈 앞에 사리 판단이 냉정해지는 습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고도 서운할 자격이 있나? 영혼은 한국인이면 좋겠고 노후를 중국에 의탁하는 건 나쁘지 않고, 그래도 자신을 맡길 조국이 한국이 아니라니 그건 또 서운하고 뭐 그런 심정이다. 정리해보니 논리가 없고 부끄럽다. 이씨 할아버지 속내를 모르지 않는다. 한국에 불러들인 아들, 손자, 며느리 남겨놓고, 20년 넘게 살던 마을을 떠나 ‘돌아가 볼까?’ 혼자 궁리하는 할아버지의 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할아버지는 영주권, 아들들은 동포비자, 식솔들은 동거비자. 거주는 가능하나 외국인 신분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형편은 어렵고 웃을 일은 없다. 갈수록 희망은 멀다. 짐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중국에 얼마나 각별했던 친구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받을 수 있다는 그 연금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거기에 기대볼까 궁리한다니 든든한 보루였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정체성이나 민족의식을 따져보는 건 염치 없는 일이었다. 그럴 거면 그와 가족들의 생존을 살폈어야 옳았다. 일제강점기, 그의 부모는 살기 위해 경상도에서 길림성으로 이주했다. 유구한 세월이 지나 이제 그의 후손까지 다시 돌아왔다. 역시 살기 위해서다. 3세대가 지나도록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들의 귀환은 이제 귀국이 아니라 ‘이주’가 되었다. 이 가족들의 고단한 서사 어디쯤에선가 내로라하게 살 만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디가 됐든 이주를 멈추고 정착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가고 또 오는 이주의 서사엔 생존이란 과제만 남았다. |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 외국인 가정 자녀인데 형편이 어렵다며 손자들이 우리에게 의뢰되었을 때 미처 몰랐다. 한국인과 진배없는 할아버지가 그래서 돌아갈까 고민한다는 것을. 책임감 없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노후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들의 이주가 여기서 멈추면 좋겠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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