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점거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에 따라 부정선거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그제 계엄군의 선관위 투입과 관련해 “많은 국민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향후 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스템과 시설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뜻이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4·10총선의 개표조작을 주장하는 일부 극우단체와 유튜버의 음모론에 매몰돼 계엄군을 움직였다는 얘기다. 도무지 믿기 힘들다. 계엄군은 놀랍게도 계엄령 선포후 불과 3분 만에 선관위로 들이닥쳤다. 과천 중앙선관위와 수원 선거연수원, 서울 관악청사에 투입된 계엄군은 300여명으로 국회에 들어온 280명보다 많았다. 계엄군은 선관위에 도착하자마자 선거정보 등의 데이터와 서버를 관리하는 정보관리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어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출입통제 등 경계작전을 펼치며 3시간 20분 동안 과천 청사를 점거했다.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을 주도했던 여인형 국군방첩 사령관은 경찰청장에게 경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릴 수 있으니 수사단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통해 4·10총선의 부정선거의혹을 강제수사하려 했다는 것 빼곤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4·10총선 부정선거 의혹은 근거 없는 허위로 결론 난 지 오래다. 지난 6월 말 육사 출신인 장재언 전 국방대 교수는 4월 총선의 전산조작의혹을 제기하며 중앙선관위 정보관리국 직원 등 5명을 고발했다. 검경은 수개월의 수사 끝에 아무 혐의가 없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극우정치인과 유튜버들은 지금까지도 사전투표조작의혹을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계엄군이 과천 선관위 건물에서 들고나온 커다란 박스가 무언인지 기대된다”고 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이 이런 음모론에 빠져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사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주장세력에 물들어 있다”며 “(선관위를 점거해) 데이터 등을 어설프게 조작해놓고 ‘부정선거’라고 역공작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이런 비상식적인 인식으로 국정 운영을 해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선관위는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처럼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계엄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선관위는 어제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라며 법적 조치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계엄군의 강제수사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내 야당 의원들을 처벌하고 여소야대의 입법부를 무력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 중대범죄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은 왜 계엄령을 선포했는지 소상히 밝히고 사과하는 게 국민을 대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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